권재성 칼럼니스트
권재성 칼럼니스트

[한국농어촌방송/경남=권재성 칼럼니스트] 일본에서는 대를 이어 가업을 잇는 가게나 기업을 ‘시니세(老鋪·노포)’라고 합니다. 지난해 11월 기준 100년이 넘는 일본의 전통기업 수는 3만3,259개에 이른다고 합니다. 심지어 1,0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시니세도 즐비합니다. 지금은 문을 닫았지만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여관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된 야마나시현 니시야마 온천에 있는 ‘게이운칸 료칸’(705년 창업)은 여행 관련 프로그램에 종종 소개되기도 했지요. 이러한 시니세 이야기는 일본인의 ‘業’과 ‘匠人정신’으로 연결되곤 합니다. 대를 이어 가업을 이어가는 일본인의 정신을 칭송하고, 우리나라 기업가와 젊은이를 나무라는 교훈적인 잔소리를 칼럼에서 자주 보았을 것입니다. 나도 한때 이러한 달짝지근한 칼럼에 혹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시니세’는 무엇일까요? 바로 1300여 년 동안 ‘萬世一界’의 가업을 이어가는 일본 황실입니다. 일본은 철저한 계층제도 사회입니다. 황실, 귀족, 사(武士), 농·공·상, 천민이 ‘각자가 알맞은 위치를 갖는’ 계층제도를 통해 사회의 질서를 유지했던 것입니다. 가정이나 개인 간의 관계에서는 연령, 세대, 성별, 계급 등이 알맞은 행동을 지정합니다. 정치, 종교, 군대, 산업에서는 각각의 영역이 신중하게 계층으로 나뉘어 있어, 윗사람이든 아랫사람이든 자신들의 특권적 범위를 넘어서면 반드시 처벌받습니다. ‘알맞은 위치’가 보장되어있는 동안 일본인은 불만 없이 살아가며, 안전하다고 생각합니다. 1868년 메이지유신을 통해 계층구조는 천황과 신민의 관계로 단순화됩니다. 귀족과 사무라이계급을 해체하고 산업·금융자본가로 변신하도록 도움으로써 그들의 불만을 잠재웁니다.

이러한 ‘각자가 알맞은 위치를 갖는’ 계층제도를 대외적으로 강요한 것이 바로 조선 침략이었고, 2차 세계대전이었습니다. 일본의 침략 논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각국이 절대적 주권을 가지고 있는 동안 세계는 무정부 상태가 계속된다. 일본은 계층제도를 수립하기 위해 싸워야 한다. 이 질서의 지도자는 물론 일본인이다. 일본은 위로부터 아래까지 계층적으로 조직된 유일한 나라이며, 따라서 ‘저마다의 알맞은 위치’를 가져야 할 필요성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국내의 통일과 평화를 달성했고, 폭도를 진압했으며, 도로·전력·철강 산업 등을 건설했고, 공립학교에서 청소년의 99.5%가 교육을 받았다. 그러므로 계층제도에 대한 일본인의 전제를 바탕으로 뒤처진 동생인 중국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은 대동아 여러 나라와 동일한 인종이므로 이 지역에서 먼저 미국을, 다음엔 영국과 소련을 쫒아내 ‘저마다의 알맞은 위치’를 차지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세계 모든 나라는 국제적 계층 조직 속에 제각기 알맞은 위치를 주고 하나의 세계로 통일해야 하는 것이다.”(루스 베네딕트, 《국화와 칼》)

일본의 핵심 부품·소재에 대한 수출규제는 ‘각자가 알맞은 위치를 갖도록’ 버르장머리를 고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삼국시대부터 조공을 바쳤던(일본사기), 한때 자신들의 식민지였던 나라가 돈 좀 벌었다고 건방지게 구는 꼴을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메모리 반도체업계 세계 1위라고 까불지만 일본에서 핵심소재를 주지 않으면 너희들은 망하니 분수를 알고 알아서 기라는 야쿠자식 협박입니다. 지금은 평화헌법에 묶여 어쩔 수 없이 두고 보지만 ‘전쟁가능국가’로 개헌만 하고 나면 독도도 무력으로 되찾겠다고 협박합니다. (마루야마 중의원의원, 8월 31일) 일본은 호시탐탐 한반도 재침략을 노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한시도 이를 잊어선 안 됩니다. 지금 우리가 하는 불매운동이, 부품․소재 국산화가 중요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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