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손의 치헌기(癡軒記)는 계속된다.

“유종원(柳宗元)도 오히려 유주(柳州)의 시내 이름을 우(愚)라 하였거늘, 지금 어찌 제천의 헌을 치(癡)라 이르지 못하겠는가?1)

대체로 치(癡)는 우(愚)의 옮긴 뜻이요, 또 옮기면 졸(拙)이 된다.”

김일손은 치(癡)는 우(愚)이고 또 졸(拙)이라 했다.

한자(漢字)사전에서 치와 우 그리고 졸의 뜻을 찾았다. 치(癡)는 ‘어리석다, 미련하다’이고, 우(愚)는 ‘어리석다. 옳고 그름을 분별하지 못하다’이다. 졸(拙)은 ‘서투르다, 재주없다, 쓸모없다, 어리석다’는 뜻이다.

세 글자 모두 ‘어리석다’는 뜻이 들어있다.

문득 『노자 도덕경』의 대교약졸(大巧若拙)이 생각한다.

『노자 도덕경』 45장에 나오는 말이다.

“완전한 것은 모자란 듯하나

그 쓰임은 닳지 않고,

가득 찬 것은 비어있는 듯하나

아무리 써도 끝이 없다.

아주 곧은 것은 굽은 듯 하고,

뛰어난 솜씨는 서툰 듯하며,

뛰어난 웅변은 더듬는 듯하다.

몸을 움직여서 추위를 이기지만

조용히 있는 것이 더위를 이기는 방법이니,

맑고 고요함으로 천하를 바르게 한다.

大成若缺, 其用不弊. 대성약결, 기용불폐.

大盈若沖, 其用不窮. 대영약충, 기용불궁.

大直若屈, 대직약굴,

大巧若拙, 대교약졸,

大辯若訥. 대변약눌.

躁勝寒, 靜勝熱, 淸靜爲天下正. 조승한, 청승열, 청정위천하정.

대교약졸(大巧若拙), 뛰어날 솜씨는 서툰 듯하다. 대표적인 것이 추사 김정희(1786∽1856)가 1856년에 쓴 글씨 ‘판전(版殿)’이다. 서울시 강남구에 있는 봉은사 판전(불교 경전의 목판을 모아놓은 곳)의 간판 글씨인데 거기에는 ‘칠십일과병중작(七十一果病中作)’이라고 적혀 있다. ‘나이 71세에 과천에서 병들어 있을 때 지었다.’는 뜻이다. 일설에는 추사가 죽기 3일전에 썼다고 한다.

봉은사 판전 (사진=김세곤)
봉은사 판전 글씨 (사진=김세곤)

 

봉은사 판전 (사진=김세곤)
봉은사 판전 (사진=김세곤)

판전 글씨를 보면 마치 초등학생이 쓴 글씨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필로 평가되고 있는 것을 보면 ‘대교약졸’이 분명하다.

한편 다산 정약용(1762-1836)도 큰 아들 정학연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적었다.

“근본으로 돌아가라. 공손과 성실로 경전을 정밀히 연구하고, 근면과 검소로 원포(園圃 채소밭)를 힘껏 가꾸도록 해라. 졸렬함으로 도를 지키고, 일을 줄여 경비를 아껴라. 그리하여 집안을 보존하는 어진 자손이 되기 바란다.”

그러면 김일손의 글을 계속 읽어보자

“옛날 안회의 우(愚)와 고시의 우(愚)와 영무자의 우(愚)는 모두 공문(孔門)에서 일컫던 것이고, 주무숙의 졸(拙)은 형벌이 맑아지고 민폐가 끊어졌으니, 그렇다면 치(癡)로써 이 헌(軒)의 이름을 삼음은 결코 헌(軒)에 욕됨이 아니라 영광일 것이며, 어리석은 현감을 얻은 조물자(造物者) 역시 이 헌에서 행복할 것이다. 세상에 슬기와 교묘함으로 이름난 자는 비록 이 헌을 가지고 싶어도 이루지 못할 것이다.”

안회와 고시와 영무자의 우(愚)라. 세 사람은 모두 공자(BC 551-479)의 제자이다. 안회(顔回 BC 514-483)는 공자가 가장 총애하던 제자였고,

고시(高柴)는 공자로부터 우직하다는 평을 들었으며, 영무자(甯武子)는 어리석은 체 했다.

공자는 안회를 배우기를 가장 좋아하는 제자로 꼽았다. 『논어』 ‘술이’ 편에 나온다.

애공(哀公)이 물었다. “제자들 가운데 누가 배우기를 좋아합니까?”

공자가 대답하였다.

“안회라는 자가 있어 배우기를 좋아하고, 노여움을 남에게 옮기지 않고 같은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았습니다. 불행하게도 단명(短命)하여 일찍 죽었습니다. 지금은 그런 자가 없으니 아직 배움을 좋아한다는 자를 듣지 못하였습니다.”

애공은 노나라의 제후이다. 그리고 안회는 몸이 허약하여 31세인 BC 483년에 죽었다. 그러므로 애공과 공자의 대화는 BC 483년과 479년 사이에 있었다. 참고로 공자는 역사책 『춘추』를 지었는데 노나라 은공 원년(BC 722)부터 애공 14년(BC 481년)에 이르는 춘추시대의 역사가 실려 있다.

위나라 대부인 영무자(甯武子)도 어리석었다. 공자는 “영무자는 나라에 도가 행해 질 때는 지혜롭게 행동했고, 나라에 도가 행해지지 않을 때에는 어리석은 듯이 행동했다. 그 지혜는 누구나 따를 수 있으나, 그의 어리석음은 아무나 따를 수가 없다." 하였다. 『논어』 공야장(公冶長)에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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