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재성 칼럼니스트
권재성 칼럼니스트

[한국농어촌방송/경남=권재성 칼럼니스트] “우리나라에는 서울대 출신과 아닌 것들밖에 없다. 너는 열심히 공부해서 아버지가 이루지 못한 꿈을 꼭 이뤄다오” 내가 큰딸에게 늘 했던 말입니다. 그래서 저희 큰딸은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대기업 전략기획실 같은 곳에서 일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하지만 늦게 꿈을 꾼 탓인지 재수를 하고, 대학편입학시험에 1년을 또 투자해도 끝내 서울대를 가지 못했습니다. 큰딸을 볼 때마다 늘 미안한 마음을 가지는 부분입니다.

나는 대학입학 학력고사(1982~1993) 세대입니다. 학력고사와 고교내신을 더한 점수로 대학을 갔습니다. 그때는 지금처럼 대학 가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 않았습니다. 당시 내가 다녔던 진주고등학교의 서울대 진학률은 10%가 넘었고, 서울 유학을 보낼 집안 사정만 된다면 중위권 학생들도 서울에 있는 대학에 어렵지 않게 갔습니다. 물론 당시에도 연세대나 고려대가 상위권 대학이었지만 SKY라는 말이 붙을 정도는 아니었지요. 전남 구례 촌구석에서도, 경남 고성 산골에서도 서울대는 실현 가능한 꿈이었던 시절이었습니다. 또 지금처럼 의과대학도 경쟁률이 그렇게 높지 않았습니다. 그냥 학교에서 중상 정도 하는 학생들이 갔습니다. 당시 전교 10등 안에 든 친구들 보면 경제학과, 법학과, 경영학과, 정치외교학과 등에 진학했고, 의과대학은 한참 뒤떨어지는 학생들이나 가는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흐름을 바꾼 두 변곡점이 있었으니 바로 ‘국가부도의 날’ 1997년 외환위기와 이명박정부였습니다. 현대사에서 한국인의 정체성에 가장 큰 충격을 준 것이 외환위기였습니다. 이 외환위기로 인해 우리나라는 본격적으로 세계경제에 편입되었고, 미국의 악마적인 금융자본에 의해 양털깎이 당했습니다. ‘파리의 연인’ 속 신데렐라 김정은이 BC카드 광고에 나와서 “부자되세요”라며 하트를 그리던 장면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바로 이 외환위기가 돈이면 다 된다는 물신주의를 사람들 뼛속에 새겨넣었습니다.

또 하나의 변곡점이 이명박정부의 교육정책입니다. 그전까지 전국민적 저항에 부딪혀 한 발짝도 나가지 못했던 ‘기여입학제’를 ‘입학사정관제’로 교묘히 포장하여 본격적으로 확대합니다.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좋은 대학의 학위를 살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변형이 ‘학생부종합전형’입니다. 똑같은 실력을 갖춘 학생일지라도 어떤 학생은 합격하고, 어떤 학생은 떨어집니다. 조부모의 경제력과 부모의 정보력이 앙상블(Ensemble)을 이루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딸 둘을 대학에 보냈지만 퍼즐같은 그 복잡한 대학입시제도를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내가 10여 년 서울생활을 하면서 느낀 것이 있습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우리나라에는 서울대 출신과 아닌 것들, 강남 사는 사람과 아닌 것들이 있으며, 여의도에는 의원님과 아닌 것들이, 세계적으로는 영어를 쓰는 백인과 아닌 것들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자본주의가 발전한다는 것은 자본력에 따라 사람도 국가도 계급화되고, 고착되며, 양극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계층 간 이동이 어려워지고, 사다리는 좁고 가늘어집니다. 나는 이 사다리를 굵고, 넓게 만들 수 있는 교육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부모가 생계 때문에 자식들 공부를 제대로 챙기지 못하더라도 자신의 노력만으로 좋은 대학을 갈 수 있는 입시제도였으면 좋겠습니다. 가난하고, 못난 부모를 만나도 내가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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