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현감 권경유의 상소를 계속 읽어보자

“신은 궁벽한 고을에 묻혀 있으나 떠도는 소문을 들으니, 성균관 유생이 소(疏)를 올려 재(齋)지내는 것에 대한 그름을 극구 논쟁하였다 하니, 신은 성균관에 사람이 있음을 기뻐하였으며, 성종 임금의 인재 교육이 거룩했다는 것을 다시금 인식하고, 하늘을 우러러 외치며 부르짖으매, 간담이 찢어지는 듯하였습니다. 이윽고 들으니, 유생들이 언어가 자못 불순하여 국가의 기휘에 범하였다 하여 생원 조유형등 20여 명이 과거 응시를 정지당하고 혹은 먼 지방으로 귀양 갔다 하기에, 신은 처음 들을 적에는 그럴 리가 있으랴 하고 의심하지 아니하다가, 두세 번을 듣게 되니 그 말을 믿으면서도 의심이 생깁니다.

유생의 말이 혹시 정도에 지나치다 하더라도 불도(佛道)를 배척하는 것은 유자(儒者)의 직분 안에 있는 일 이옵고, 언어가 정도에 지나친 것은 유생의 우직한 탓이오니, 말이 채택할 만한 것이면 채택하는 것이 옳고, 만약 불가한 것이라면 그대로 두면 그만인데, 어찌 조정에 간언을 하는 것으로 문책을 당하는 일이 있으리까.

유생들이 반드시 과격한 논의를 하였지만 어찌 딴 생각이 있었겠습니까. 어찌 성명(聖明)의 조정에서 언사(言事)로 문책을 입는 일이 있을 것을 생각이나 하였겠습니까. 신이 성종의 조정에서 오래 경연을 모시면서 익히 보았습니다만, 대간·시종이 알고서는 말하지 않는 일이 없어 정도에 지나치는 논쟁을 마구 벌이며 위로 국가의 기휘에 저촉되는 일이라도 피하지 아니하고 기탄없이 말하되, 위에서는 죄를 가하지 아니하고 아래서도 숨지지 아니하였습니다.

대간·시종뿐만 아니라, 유생이 소를 올려 항쟁한 일도 역시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 그 당시에 어찌 정도에 지나친 논이 위로 선조(先朝)에 저촉되고 아래로 천위(天威)에 범하는 일이 없었겠습니까마는, 대행 대왕께서는 말을 들으시면 곧 기뻐하시고 간언을 지체 없이 따르시며, 화평한 안색으로 대하시고 관대한 모습으로 받아들이셨습니다.

그러나 녹(祿)에 연연하고 자기 몸만 보전하려는 사람들은 역린(逆鱗)하기가 어려워서 진언하지 못하는 일이 간혹 있었으므로 신은 일찍이 그 경우를 보고서 그 사람을 비루하게 여겼습니다.

역린(逆鱗)은 『한비자(韓非子)』에 나오는 글이다. "무릇 용(龍)이란 것은 목구멍 아래 한 자 길이의 역린(逆鱗)이 있는데 만약 사람이 건드리는 일이 있으면 반드시 살인한다. 임금도 역시 역린(逆鱗)이 있으니, 유세(遊說)하는 자가 임금의 역린을 건드리지 아니하면 거의 화가 없다." 하였다.

권경유의 상소는 이어진다.

“전하께서 만약 언사가 기휘에 저촉되었다 하여 이 유생들을 죄주신다면, 다만 녹에 연연하고 자기 몸만 보전하려는 사람들만이 대궐 뜰 아래 나와 과감히 말을 못할 뿐 아니라, 직사(直士)의 기풍도 역시 반드시 꺾이어 할 말을 다 못할 것이니, 전하께서는 어느 곳에서 그 과실을 들으시겠습니까.

전하께서는 사방의 문을 열어 놓으시고 사방의 눈을 밝게 하시어 사방의 시청(視聽)을 통달할 수 있게 하셔야 할 것인데, 맨 먼저 일을 논하는 사람을 죄주어 말하는 자의 입을 막아버리시니, 신은 마음이 쓰라려서 견디지 못하겠습니다.

신은 언로(言路)를 위하여 애석히 여기는 것입니다. 신은 선릉의 길러주신 은혜를 너무도 후하게 받았으니, 어찌 감히 이 이름을 회피하기 위하여 드릴 말씀을 아니 드리겠습니까.

임금은 뇌정(雷霆) 같은 위엄과 만근 같은 무게가 있어서, 부러뜨리면 꺾이지 않는 것이 없고 누르면 부서지지 않는 것이 없으니, 비록 상을 주면서 말을 하게 하여도 오히려 그 말을 다하게 할 수 없는데, 하물며 위엄으로 으름장 놓고 무거운 힘으로 눌러댐에리까. 전하께서 어찌 이것을 생각 아니하시고 저 일을 두고 따지는 사람들을 죄주십니까. 옛날에 정(鄭)나라 자산(子産)이 향교(鄕校)를 헐지 아니하여 정나라가 다스려졌으니, 바라옵건대, 전하께서는 빨리 재(齋)를 파하시고, 또 유생의 죄를 사면하시어 말하는 사람들의 길을 열어 주시면 국가로 보아 다행이겠습니다. "

소를 읽은 연산군은 이 소를 승정원으로 내려 보내면서 전교하였다.

"말을 아뢰려면 요(堯)·순(舜)과 삼왕(三王)의 도와 백성의 폐단을 아뢰어야 할 터인데, 소에 ‘삼전(三殿)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 하니, 이것이 바로 위에 저촉되는 말이다. 그 말이 어떠한지 원상(院相)들에게 물어 보라."

연산군은 권경유의 상소가 불쾌했다.

이러자 윤필상·신승선 등이 의논드렸다.

"권경유가 한 결 같이 재를 지내는 것을 그르다 하여 되풀이 말하다가 드디어 불공(不恭)에 범하였으니, 진실로 죄는 있습니다. 그러나 다만 언사의 잘못이요 딴 마음은 없는 듯합니다."

노사신이 의논드렸다.

"권경유의 상서(上書)한 사연이 위에 저촉된다 할지라도 곧 함부로 생각하고 말한 것이니, 어찌 딴 생각이 있었겠습니까."

이윽고 윤호가 의논드렸다.

"상소에 비록 이치에 맞지 않은 말이 있을지라도 일단 말을 구한다는 교서가 있은 뒤에 견책을 가하는 것은 부당합니다."

원상들은 권경유를 감쌌다.

자계서원(경북 청도군 이서면) 안내판 (사진=김세곤)
자계서원(경북 청도군 이서면) 안내판 (사진=김세곤)
자계서원 전경 (사진=김세곤)
자계서원 전경 (사진=김세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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