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과 객원교수(전 학부장)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과 객원교수(전 학부장)

[한국농어촌방송/경남=정용우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과 객원교수(전 학부장)] 기부란 남을 위하는 마음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 마음은 연습과 습관을 통해 길러질 수 있다. 그래서 선진국에서는 자녀의 생일 축하를 기부로 대신하는 ‘생일 기부’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고 한다. 생일을 나눔의 행복을 배우는 기회로 활용하는 것이다.

우리 부부도 이를 흉내 내 보기로 했다. 약 30년 전의 일이다. 아내 생일을 기념하는 차원에서 어떤 기부를 하기로 결정하고 지금까지 매달 2곳(SOS 어린이마을과 카톨릭 원주교구)에 소액기부를 하고 있다. 그야말로 소액 기부다. 20여 년 전, 내가 병이 들어 근 3년간 경제생활을 제대로 못할 때에도 이 소액기부만은 빠지지 않고 해 왔으니 나름 꾸준히 해 온 셈이다. 하지만 그 액수가 얼마 되지 않아 항상 부끄럽다는 생각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몇 년 전에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의 기부 소식을 접한 바 있다. 페이스북 주식가치의 99%에 해당하는 52조원을 자선사업을 위해 기부하겠다고 한 것이다. 사상 최대의 ‘통 큰 기부’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기부를 “인간의 잠재력을 향상시키고, 평등을 추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기부를 통해 영혼을 구제할 수 있다’고 말한 짐멜의 모범생이다.

그보다 더 나를 감동시킨 기부도 있다. 어느 할머니의 기부다. 지난달 22일 기초생활보장 대상자인 김 모(80세) 할머니가 서울 동대문구의 한 주민센터를 찾았다. 전 재산 2400만원이 든 흰 봉투를 품에 안은 채였다. 홀로 사는 김 할머니는 월 50만원 남짓의 생계급여에서 반지하 셋방 월세, 생활비를 뺀 금액을 10여년 넘게 모은 돈이었다. 간간히 폐지를 주워 판 돈도 더했다. 김 할머니는 이 돈을 “좋은 곳에 써달라”며 건넸다. 평소 할머니의 어려운 사정을 잘 알고 있던 주민센터 직원이 말렸지만 뜻을 꺾지 못했다. 할머니는 기부자 이름은 절대 밝히지 말아 달라고 했다. 셰익스피어가 ‘베니스의 상인’에서 말한 "자선은 주는 자와 받는 자를 두루 축복하는 것이니 미덕 중에서도 최고의 미덕"이라고 했는데 이 할머니를 두고 한 말이 아닌가 싶다. 동서를 막론하고 예나 지금이나 ‘나누면 기쁨 두 배’가 된다고 가르쳐 왔으니 이 할머니는 우리에게 더없이 훌륭한 가르침을 열어 주신 큰 스승인 셈이다.

그런데 세간에는 이런 기부의 선의를 왜곡시킬 수 있는 기부활동이 종종 이루어져 우리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때가 있다. 이런 일들은 기부의 선의를 포장해 이익을 누리려는 시도가 있을 때 일어난다. 근래 부동산 가격 급등이 사회적 이슈로 등장하자 ‘부동산 투기 논란’으로 사퇴한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이 최근 문제의 집을 팔았는데 그는 “차액은 전액 기부하겠다”고 알렸다. 1년 반 전 25억7000만원에 산 집은 그새 8억8000만원이 뛰었다. 양도세 등을 빼면 절반 정도가 남는다. 10억원 넘게 대출을 얻어 과감하게 투자한 만큼 시세차익은 컸다. 그는 “시세차익을 노렸다는 공격을 받을 거라 기부한다”고 한 것이다. 차익을 노리지 않고 월 500만원(금리 2.5%로 10억원 20년 대출 시) 넘는 이자를 감당하면서 재개발 지역의 오래된 집을 산다는 건 이해하기 힘든 일이지만 그렇다 치자. 하지만 기부를 면죄부로 여기는 듯한 그의 태도는 씁쓸함을 안겨 준다. 총선 출마설에 자신의 ‘쓰임새’를 얘기하니 더욱 그랬다.

작년 우리나라 기부 실적은 저조했다. 세계기부지수에서 우리나라는 146개국 중 60위에 그쳤다. 우리나라 경제규모에 비해 매우 낮은 수치다. GDP 대비 0.77% 수준으로 2.08%인 미국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서 기부를 놓고 선의냐 악의냐를 따지지 않고 ‘어쨌든 고마운 것’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이해가 되기는 한다. 그런데도 내 마음 한구석이 여전히 씁쓸해지며 자꾸 헛웃음이 나오는 건 왜인지 모르겠다.

과연 며칠 후 이 분은 총선 출마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히면서 총선이 끝나면 바로 실행하겠다고 했다. 이 기부가 실행이 되면 군산시민이든 아니든 많은 사람들이 그 혜택을 입는 것만은 확실하다. 남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은 남에게 향수를 뿌리는 것과 같다고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이 분의 기부는 ‘통 큰 기부’다. 하여 그 향수의 내음이 더 진하게, 더 멀리 퍼져나갈 것이니 우리 같은 소액기부자로서는 부러울 따름이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이런 능력을 갖추지 못한 나로서는, 자신을 세상의 기준에 맞추어나가기보다는 그저 내 나름 기준을 세워 세상을 모실 일이다. 이 길만이 내 삶의 평정을 유지할 수 있을 터이니. 그런 마음 상태에서 지금까지 해 오던 방식대로 소액기부나 착실히 해 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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