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사 김일손의 상소 26개 조목 중 10번째 조목은 ‘감사(監司)를 오래 유임토록 하고 가끔 어사(御史)를 보낼 것입니다.’이다. 이를 읽어보자

“대저 ‘지나는 곳마다 인심을 교화시켜서 신기한 자취를 남긴다.’는 성인으로도 ‘반드시 3년이 지나야 이룬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 지금의 감사들이 한 해 동안에 어찌 능히 업적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

자취를 남기려면 3년이 지나야 한다는 의미는 지금도 유효하다. 공공기관장 임용과 별정직 공무원 임용은 임기가 보통 3년이다. 공무원이었던 필자도 임기 3년의 공직을 맡은 적 있다. 첫 해는 업무 파악. 2년째는 적극적인 일 수행, 3년째는 시행착오를 없애고 능숙하게 일 처리를 할 수 있다.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말도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상소를 계속 읽어보자.

“신은 원하옵건대 6도의 감사를 모두 함경도와 평안도의 감사처럼 주(州)의 목사(牧使)를 겸직토록 하여 3년 임무를 마치도록 한다면, 조세 행정이 흡족할 수 있을 것이오, 이는 또한 조종의 법이기도 합니다."

김일손은 감사도 주의 목사를 겸직하여 실제 지방행정을 하도록 하는 건의를 하고 있다. 예를 들면 전라도 감사가 전주목사를 겸직하는 것이다.

상소는 어사 파견으로 이어진다.

“선왕께서는 일찍이 조정의 신하를 보내서 사방의 폐단을 물어보고 더러는 적발토록 명하였으나, 일정한 제도는 없었습니다. 신은 원하옵건대, 해마다 봄가을에 강직한 조정 신하를 뽑아 벼슬에 따라 권한를 주어 보내서 사방을 순시한 다음 간대(諫臺)에 올려 탄핵하도록 한다면, 지방 관원이 마음대로 민간에게 직권을 남용하지 못할 것입니다."

김일손은 관료들의 직원 남용을 막고자 하는 감찰제도를 건의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제기되고 있는 사항이 공무원의 직권남용이다.

직권을 이용하여 공권력을 자의적으로 행사한 것은 형사상 처벌 대상이다. 김일손은 이를 간파한 것이다.

상소는 이어진다.

“의견을 말하는 자는 더러 간사한 아전의 횡포를 미워해서 중국 조정에서 시행하던 분사어사(分司御史)를 두어서 단속하던 제도를 모방하려고 하나 나라는 적은데 관원이 많은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한편 김일손이 상소한 11번째 조목은 ‘검찰(檢察)을 가려 뽑고 무역을 정지하고 관문을 설치하여 관서 백성들의 영역을 보전해야 합니다.’이다.

신이 이문등록(吏文謄錄)을 상고하여 보니, 태종 때에 검찰관으로 사인(舍人)도 쓰고, 더러는 정언(正言)도 써서 일정한 정원이 없었습니다. 요즘 속된 말로 감찰을 업신여겨 말하기를 ‘꼴 베는 자도 가고 꿩·토끼 잡는 사냥꾼도 간다.’라고 하니, 이것은 사람을 골라 보내지 않아 천시 하는 것입니다.

검찰의 맡은 임무는 매우 중요해서 중국 조정의 사람들은 검찰을 가리켜 어사(御使)라고 합니다. 적임자가 아니면 한갓 웃음과 멸시를 살 뿐이니, 이제부터는 이름 있는 사람을 뽑아서 직위에 따라 사헌부의 직책을 겸임시켜 파견하소서.

신이 일찍이 명나라의 조훈(祖訓)을 얻어 보았더니, 우리나라를 안남(安南 : 베트남) · 유구(琉球 : 오끼나와)보다 아래의 오랑캐로 대우하고, ‘매양 사신이 다닐 때에 장사붙이를 끼고 거짓 술책을 많이 쓴다.’고 하였으니, 매우 부끄러운 일입니다.

신이 생각하여 보니 이는 전혀 허황된 말이 아닙니다. 사사로이 저지르는 탈법 행위는 책임이 검찰이 처리하겠지만, 국가에서는 공적인 무역은 장복(章服)이나 약재 이외에는 반드시 절제하고 감축하며, 먼 외국의 물건을 보물로 여기지 않는 것이 옳습니다.

역내 백성을 국경 안에 봉쇄할 수는 없으나 관문에 의한 제한은 역대로 엄하게 단속하여 왔습니다. 우리나라는 국경이 매우 소홀하니, 마땅히 압록강 연안을 따라 장성(長城)을 쌓고 관문을 설치하여 관서 백성을 보호하고, 매번 사신이 북경에 갈 때마다 대관(臺官)을 보내서 관문을 지키면서 함부로 출입하는 것을 살피도록 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중국에서 변란이 없으면 그만이지만, 변란이 있다면 관서 지방이 반드시 먼저 공격을 받을 것이니, 위만(衛滿)·금국(金國)·납합돌(納哈突)·동단(東丹)·사태왕(沙太王)·유태왕(柳太王) 등의 반란을 거울삼아야 할 것입니다. 이제 천하가 태평한 지도 이미 백 년이 지났으니, 마땅히 깊이 생각해 볼 일입니다.

김일손은 국경문제까지도 살피고 있다. 두루 해박하다. 혜안이 놀랍다.

창덕궁 희정당(1498년 7월12일에  연산군이 김일손을 친국한 곳이다) (사진=김세곤)
창덕궁 희정당(1498년 7월12일에 연산군이 김일손을 친국한 곳이다) (사진=김세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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