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사 김일손의 상소 26개 조목 중 18번째 조목은 “지방관이 추천하는 인재를 섞어 써서 훈도(訓導)로 삼으소서”이다.

신이 본도(本道 충청도)에 이르러 주현(州縣)의 훈도를 두루 시험하여 보니, 간혹 향교의 생도는 여러 경전(經傳)에 능통한 자가 있는데, 훈도는 한 경전에도 통하지 못하므로 스승이 생도를 가르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생도가 도리어 스승을 가르칠 형편이니 진실로 탄식할 일입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뇌물 청탁으로 말미암아 훈도의 직을 얻어서 구차하게 군역(軍役)이나 면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마땅히 각도 감사에게 명하여 여러 교생을 고시하여 경술(經術)에 능통한 자를 논계(論啓)하여, 회강(會講), 취재(取才)에 능통한 자를 병용하여, 교육에 공이 있는 자를 감사가 보고하고 현(縣)에서 군(郡)으로, 군(郡)에서 주(州)와 부로(府)로, 점차 옮기면서 가르치게 함으로써 사표(師表)를 장려하소서.

19번째 조목은 “사전(寺田)을 혁파하여 학전(學田)에 충당하고, 중대(重臺)를 없애서 피폐한 고을을 번성하게 하소서.”이다.

선왕(先王 성종)께서 학교를 일으키고자 하여 일찍이 학전(學田)을 주부군현(州府郡縣)에 주었는데, 다 정한 면적이 있으나 충당할 토지가 없다보니 한갓 빈 문서가 되고 말았습니다. 태종께서 사사(寺社)의 토지를 단번에 없애 버렸지만 그 뒤에 다시 차차 늘어났습니다.

신은 원하옵건대, 전하께서는 선왕의 뜻을 본받고 태종의 과단성을 본받아 사전(寺田)을 모두 혁파하여 학전(學田)으로 충당하소서. 그리고 풍수지리설에 의한 도움을 받는다는 말(비보설 裨補說)은 사실 도선(道詵)에서 시작된 것으로 진실로 황당합니다. 신은 원하옵건대, 재목벌채를 금하는 구역 안에 있거나, 수해를 막기 위한 곳이 아닌 사전(寺田)은 일체 학전(學田)에 충당하여 경작하게 하소서.

옛날 사람이 종의 종을 중대(重臺)라 일컬었습니다. 이제 공천(公賤)·사천(私賤)의 노비(奴婢) 송사가 있으니, 모두 읍교(邑校)의 쇄잔한 자의 소속인데, 중대(重臺)를 일체 금한다는 의논이 나왔으니 원망과 비방이 반드시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나 원래 백성은 전하의 처분에 달려 있으니, 어찌 그들 고조(高祖)나 증조(曾祖)에 관계되겠습니까. 중[僧]의 도(道)는 세상과 인연을 끊고 출가(出家)하였으면 마땅히 마음을 깨끗이 하여야 하는데, 행실을 따져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주지(住持) 노릇하는 자는 가만히 앉아서 관청의 조세를 받아먹기도 하고 임금의 성수(聖壽)를 축원한다고 핑계하지만 아무런 도움이 없으며, 여느 요망하고 교활한 중들은 노비(奴婢)를 차지하고 토지를 경작하는 등 비행이 한 둘이 아닙니다. 나라에 큰 근심이 생겨 백성은 고달프고 관리들은 녹초가 되어도 중들은 못 들은 척하니, 마땅히 그들의 토지를 몰수하여 공유재산으로 귀속시키고, 중의 노비 소유를 금지하소서.

이어서 20번째 조목은 “문관을 등용하여 왜노(倭奴)를 진압하소서”이다.

“사람들은 다 북쪽 오랑캐를 근심하나 신은 홀로 남쪽 왜적을 걱정합니다. 신이 왜적의 실정을 살펴보니, 날이 가고 달이 갈수록 더욱 교만하여 이미 어전[魚箭]을 쟁탈하고 또 웅천(熊川)을 위협한 바 있으며, 요사이 충주(忠州)를 지나면서 연회를 마련하라고 재촉하며 ‘너희 나라는 국상이 났지만 우리 임금은 무사하다’라고 하였다 합니다. 신은 이 말을 듣고 통분을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이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은 애초에 변장(邊將)을 잘못 기용한데서 연유합니다. 그들은 이루 말 할 수 없이 탐욕을 부리고, 간혹 뇌물을 받아서 변방(邊方)의 위엄이 서지 못하여, 통역하는 자는 특히 믿을 수 없는 무뢰배인 배부리는 군졸[般軍]로서 오랑캐와 내통하고 연도(沿道)에서 왜노를 꼬드깁니다. 왜노(倭奴)가 불만이 있으면 반드시 예조(禮曹)에 호소하는데, 예조에서는 그 말을 믿고 아뢰어 주관(州官)을 추궁하도록 보고하니, 주관(州官)은 접대하는데 더욱 애쓰게 되고 왜노의 교만은 더욱 심합니다.

신은 원하옵건대, 이제부터 왜노가 호소하는 일이 있으면 예관(禮官)이 좋은 말로 응대하여 다시는 주관을 추궁하도록 아뢰지 말게 하고, 통역자를 엄중히 문초하여 심한자는 목을 베소서. 이보다 먼저 내신(內臣)을 보내어 공손치 못한 오랑캐를 타이르게 해야 합니다. 만약 듣지 않는다면, 우리가 무엇을 꺼려 유독 그들의 호소만 믿고 우리 신하들을 치죄한다는 말입니까.

제포(薺浦)·부산(釜山)·염포(鹽浦)·울산(蔚山)·동래(東萊)·웅천(熊川)이 육진(六鎭)은 가장 적당한 사람을 선택해야 됩니다. 선왕께서 활 잘 쏘는 문관을 선택하여 장래 장수 재목이라고 지명하신 자가 무려 20여 인이었으며, 가만히 앉아서 늙어 가는 젊은 관료를 장차 어디에 쓸 것입니까.

신이 원하옵건대, 자격에 구애됨이 없이 이런 사람을 두루 시험하여 보아서 능히 오랑캐를 진압시킨 자에게는 서열을 따지지 말고 상을 주소서. 우리 광릉(光陵 세조)께서 이극균을 만포 첨사로 삼았는데, 마침내 크게 써서 이제 중신이 되었으니, 이것이 곧 조종(祖宗)의 고사(故事)입니다. 사람의 혈기가 쇠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공자도 내가 쇠하였다는 탄식이 있었는데, 더구나 궁마(弓馬)의 기예(技藝)는 젊을 때를 지나면 소용이 없습니다.

김일손은 1495년 5월28일의 상소에서 남쪽을 왜노를 경계하라고 간언했다. 그런데 조선 조정은 이를 무시했다. 그리고 100여년 후인 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자계서원(경북 청도군) (사진=김세곤)
자계서원(경북 청도군) (사진=김세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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