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과 전 학부장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과 전 학부장

[한국농어촌방송/경남=정용우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과 객원교수(전 학부장)]  세월이 한참 흘렀지만 지금도 그 여인을 기억할 수 있다. 내가 성업공사(현 한국자산관리공사)에서 재산처분업무를 담당했을 때 만난 여인이다. 중년을 넘긴 그 여인은 키는 좀 작았지만 그 당시 유행했던 오드리 햅번의 모자를 맵시 있게 쓰고 다녔던 지라 더욱 기억에 남는다. 그 여인은 내가 근무하던 재산처분부 매각상담실에 자주 드나들곤 했는데 그곳에는 한국자산관리공사에서 법원경매 신청하여 경매절차를 밟고 있는 부동산 그리고 한국자산관리공사에서 매각중인 부동산–금융기관 비업무용부동산, 국세체납 압류재산 등-을 전시해 놓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여인은 매각상담실에 들를 때마다 조금은 특수한 부동산, 즉 보통 사람들이 그다지 관심 갖지 않는 부동산을 찾고 있었다. 예컨대 법정지상권 또는 유치권 성립 가능성이 있는 부동산, 반지하 주택이나 맹지(盲地) 등을 주로 찾고 있었던 것이다. 조금은 독특한 부동산투자방식이었다. 자주 매각상담실에 드나들었던 관계로 대화를 나눌 기회도 있었는데 이러한 부동산을 찾아 투자하는 이유를 설명해 주기도 했다. 당시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나로서는 부동산 투자 관련 실무를 학습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기도 했다. 여기서는 반지하 주택 투자 관련해서 들은 이야기를 되뇌어 본다.

이 여인이 반지하 주택에 대해 관심을 갖는 이유는 이러했다. 그 당시는 1970년대 산업화로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에 사람들이 몰리면서 발생한 주택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연립주택이나 다세대주택을 많이 지었는데 이때 세대수를 늘리기 위해 반지하도 주거공간으로 만들었다. 이들 반지하 주택이 채무자(소유자)의 부실채권 회수를 위해 법원경매에 붙여지는 경우가 특히 많았다. 요즘도 비슷한 상황이지만 법원경매에 붙여지면 이들 주택은 일반인들의 관심 밖에 있어 최저매각가격이 엄청 내려간다. 이 여인은 가격이 많이 저감된 이런 반지하 주택 중에서도 토지 지분이 넓은 것을 주로 공략했다. 그것도 요즘 말하는 소위 강남 3구나 도시 재개발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지역을 중심으로. 반지하 주택을 그렇게 사 모으는 이유는 자식들한테 하나씩 넘겨주기 위해서라고 했다. 법원경매절차를 통해 이들 주택을 매수한 후에 약간의 보수를 해서 전세를 놓고는 기다린단다. 그렇게 하면 자기 자본 거의 들이지 않고 먼 훗날 자식들을 위해 아파트 한 채씩 사놓는 셈이 되기 때문에. 전세 놓고 있다 보면 세월이 흘러 아이들도 장성하고 그 반지하 주택 주변도 재개발될 터이니 그때를 위해 기다리는 것이란다. 세상에는 어차피 가난한 사람들로 넘쳐나니 이런 반지하 주택도 그 수요가 꾸준하기 때문에 오랜 세월을 기다릴 수 있다고 하면서.

이 여인의 세상살이 보는 눈은 탁월했던 것 같다. 이 여인의 말대로 세상에는 가난한 사람도 많다. 이들 가난한 사람들도 생존을 위해 주택은 필요하다. 이들은 반지하 주택에 살고 싶어 사는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산다. 때문에 반지하 주택은 주거 빈곤의 상징으로 통한다. ‘지·옥·고’(반지하·옥탑방·고시원) 중 하나인 반지하 주택은 겨울철에는 난방비가 덜 든다는 장점이 있지만, 여름철에는 습기로 벽면에 곰팡이가 생기는 일이 다반사다. 또 길가에서 들어오는 먼지와 암막 커튼을 치지 않아도 낮잠을 잘 수 있는 어두컴컴한 방은 기본 옵션이어서 호흡기 질환과 피부과 질환에 쉽게 노출된다. 게다가 길가에 있는 반지하 주택의 경우에는 발자국 소리 때문에 밤잠을 설치기도 한다. 주거환경이 열악하기 그지없지만 이런 주거환경 하에서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은 의외로 많다. 이러한 반지하 주택에 거주하는 가구는 총 36만 3896가구로 전체 가구의 1.9% 수준이다(2015년 기준). 하지만 반지하 주택이 대도시에 집중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도시에 사는 사람들 중 반지하 주택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비율은 훨씬 높을 것으로 추산된다.

반지하 주택 문제를 다룬 영화 ‘기생충’. 이 영화가 오스카상을 휩쓸면서 다시 화제다. 한국 사회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빈부격차에서 연유하는 불평등이 그만큼 치밀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증거일까. 하기야 세상살이 빈부격차가 없을 순 없다. 하지만 그 격차가 너무 극심하면 공동체 통합에 장애가 되고, 범죄 유인 등 사회문제의 온상으로 작용하기도 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맹자(孟子)께서는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백성은 가난을 근심하는 게 아니라, 고르지 아니함을 근심한다(民不患貧 患不均)”고. 영화 ‘기생충’이 사람 살기에 부적합한 형태의 주거 문제 해결이라는 거대한 계획의 마지막 퍼즐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저작권자 © 한국농어촌방송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