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우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과 전 학부장
정용우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과 전 학부장

[한국농어촌방송/경남=정용우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과 객원교수(전 학부장)] 우리 집에는 키가 큰 감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적에 아버지께서 심어놓으신 것이니 벌써 50년도 더 된 나무이다. 옛날에는 감도 참 많이 열렸다. 그런데 요사이는 감을 수확하기가 쉽지 않다. 언제부턴가 감나무에 농약을 치지 않으면 감이 열렸다가 어느 정도 커지면 바로 떨어져버리기 때문이다. 이제는 감나무 키가 커서 웬만한 농약살포장치 없이는 농약을 칠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대로 방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데도 이 감나무는 요즘 같은 시절이 되면 꽃은 계속 피워낸다.

지난 토요일, 우리 집 둘레를 장식하고 있는 담벼락 외곽을 따라 풀을 제거하는 작업을 했다. 우리 집 마당만 깨끗이 정리해 놓고는 마당 밖은 그대로 두었을 경우, 꼭 똥 누고 뒤처리 안 한 것과 같은 기분이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담벼락 외곽 정리 작업을 해 나가고 있는데, 어느 지점에 이르렀더니 감꽃이 무더기로 떨어져 있었다. 위로 쳐다보았더니 감나무에 감꽃이 한창이었다.

이제는 감은 수확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지만 나무 잎은 여전히 무성했고, 그런 덕분에 그늘은 꽤나 넓게 형성되어 있었다. 어느 날인가 그 그늘 밑에서 어머니 손톱을 깎아 드리던 기억이 불현듯 떠올랐다. 어머니께서는 아버님 돌아가시고 우리 5남매 키우시느라 얼마나 열심히 일을 하셨든지 병이 나서 쓰러지기 전에는 손톱을 깎아 본 적이 없었다.

항상 흙을 만지시고 작물을 만지시는 등 끊임없는 노동으로 손톱이 닳아, 깎지 않아도 되었던 것... 그런데 병이 나서 드러눕게 되어, 말하자면 일을 하지 않으니까 손톱이 자라나고 이를 깎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던 것이다. 병이 나서 손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게 되었으니 스스로 손톱을 깎을 수가 없게 되었고... 그래서 내가 가끔 어머니 손톱을 깎아주게 되었던 것이다. 감나무 그늘 밑에서 어머니 손톱을 깎아드리고 있는 중에 감꽃 하나가 어머니 머리 위에 떨어졌다.

어머니께서는 그 감꽃을 손수 집으시면서 “옛날에는 감꽃 필 때는 딸애 집에 안 간다는 말이 있었지. 지금은 참 좋은 세상이야.” 하고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무슨 말씀인지 여쭈어 보았더니, 옛적에는 감꽃이 필적엔 먹을 것이 없어 (즉 보리고개) 시집 간 딸이 보고 싶어 한 번 가보고 싶어도 하도 궁한 시절이라 먹어야 살아가는 입 때문에 딸애 집에 갈 수가 없었다는 말씀.... 그 때에 비하면 요새는 참 좋은 세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 좋은 세상, 더 살지 못하고 일찍 떠나버린 어머니가 새삼 그리워진다.

불재가중(佛在家中 - 부처는 집안에 있다)이라는 말이 있다. 당나라 때 양보(楊補)란 사람이 남긴 유명한 말이다. 이 양보라는 사람이 불교에 심취해서 멀리 무제보살(無際菩薩)이라는 사람을 만나 불법을 배우러 길을 떠났다가 노인 한 사람을 만났다. 노인이 물었다. “어디를 가는가?” 양보가 말했다. “무제보살을 만나서 제자가 되려고 합니다.” 그랬더니 대뜸 “그래? 기왕 만나려면 보살보다도 부처를 만나야지.” 하는 게 아닌가. 그래서 다시 물었다. “어딜 가면 부처를 만날 수 있나요?” 이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지금 곧바로 집으로 돌아가면 신발도 안 신고 담요 뒤집어쓰고 나오는 사람이 있을 거야. 그 사람이 부처야.” 그래서 양보가 집에 가 봤더니, 정말로 담요 뒤집어쓰고 신발도 안 신고 뛰쳐나오는 사람이 있었다.

길 떠난 아들 생각에 잠 못 이루고 있다가, 아들 기척이 나니까 옷도 안 입고 대충 담요 둘둘 두르고 맨발로 뛰어 나온 것이었다.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가없는 사랑의 표출이며 진실된 삶의 모습이다. 양보의 어머니뿐만 아니라 우리 모든 어머니들의 모습이다. 그래서 위 노인이 양보의 어머니를 부처라고 했듯이 우리의 모든 어머니는 역시 살아 있는 부처가 된다. 살아 있는 부처가 되어 우리 자식들에게 영원한 생명의 길을 기꺼이 열어주신다.

이처럼 어머니가 우리에게 베풀어준 사랑은 영원까지 이어지는 끝없는 사랑이다. 우리가 태어나서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사랑, 우리 자신에게 온갖 정성을 다하고 무한대로 신뢰하고 이해하는 사랑... 그래서 어떤 사람은 “어머니보다 더 훌륭한, 하늘로부터 받은 선물은 없다.”고 했고, 또 어떤 사람은 “신이 모든 사람을 보살펴 줄 수 없어 어머니를 만들었다.”고도 했는지도 모르겠다. 꽃 피고 지는 이 5월, 감나무에서 떨어지는 감꽃을 바라보며 어머니와 함께한 잠깐의 추억을 더없이 귀하게 되돌아본다. 그러면서 내 존재와 생명의 원천이신 어머니를 나는 과연 얼마만큼 이해하고 공경하고 사랑했는가를 생각해 본다. 그 후회(後悔) 막심함에 거저 무릎만 꿇게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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