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교회(평안동) 담임목사
진주교회(평안동) 담임목사

[한국농어촌방송/경남=김기덕 진주교회(평안동) 담임목사] 한국도로공사 홈페이지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첫 고속도로인 경부고속도로의 총 연장은 416킬로미터이다. 이처럼 비록 먼 거리지만 다양한 기법을 동원하여 잴 수 있는 거리가 있다. 그런가 하면 아무리 가까워도 잴 수 없는 거리도 있다. 그것은 사람의 마음과 마음의 거리이다. 한 이불을 덮고 자는 부부라도 마음의 거리가 너무도 먼 경우가 있다. 가까운 친구인데도 마음은 먼 경우가 많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데 늘 문제가 되는 것은 마음과 마음의 거리가 멀다는데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산에서 서울까지 가는 것은 간단하다. 기차를 이용하면 불과 두 세 시간에 갈 수 있고 자가 운전을 해도 대여섯 시간이면 충분히 도착할 수 있다. 그렇다면 사람의 마음에 도착하는 데는 얼마나 걸릴까? 어떤 경우에는 몇 년이 지나도 목적한 사람의 마음에 도착하지 못한 경우가 있는 것 같다. 심지어는 임종의 순간이 되었는데도 아직 도착하지 못한 경우도 있다. 그것이 한이 되어 눈을 감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오늘날 코로나의 영향으로 거리두기는 일상화가 된 듯하다. 그냥 나 홀로 살아가는 것이 마음 편하다는 생각을 하는 문화가 자리를 잡았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더라도 마음의 거리두기는 좁히라는 공익광고는 자주 등장하지만, 벌써 많은 사람의 마음에 보이지 않는 벽들이 높이 쌓아져 있는 듯하다. 어떤 때는 서로의 마음의 거리에 차디찬 냉기가 흐르는 경우가 있고 어떤 경우는 함께 있는 것이 불편하게 여기는 때도 있다. 이러한 서늘한 마음으로 살아가다보면 많은 이들의 마음에 위로가 필요할 때가 있다. 그래서 누가 따뜻한 마음의 말로 위로를 해주면 마치 더운 여름날 시원한 냉수 같은 감동이 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마음에 닿도록 해주어야 한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 많은 표현들이 있는데, 고린도후서 1장 3절 이하에 보면 하나님은 위로의 하나님이심을 말씀하고 있다.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예수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오 자비의 아버지시오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라고 했다. 세상에는 위로 대신 마음을 할퀴고 힘들게 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하나님은 싸매시고, 어루만지시고, 격려하고, 힘을 주시는 위로의 하나님이시다. 더구나 하나님의 위로는 우리 사람들이 하는 감정적인 위로나 립 서비스로 끝나는 형식적 위로가 아니다.

하나님의 위로는 말씀으로 깊이 있게 마음에 와 닿게 하신다. 위로가 고난 중에 있는 사람들의 깊은 마음에까지 도착되도록 하라는 말씀이다. 종종 장례식을 하면서 목사의 메시지가 상중에 있는 유족들에게 위로를 한다고 하지만 얼마나 위로가 될 것인지 마음에 의문이 들 때가 있다. 특히 어린 자식을 먼저 보내고 슬피 우는 어머니를 앞에 놓고 위로가 마음에 닿도록 말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한 노 권사님이 계셨다. 그 분은 아이를 잃은 젊은 엄마를 끌어안고 함께 울면서 위로를 전했다. 그런데 그 권사님의 위로는 목사의 위로와는 차원이 달랐다. <이봐, 새댁~ 힘내. 나도 자식을 둘이나 앞세웠어...> 그 권사님의 위로는 젊은 엄마의 마음에 닿는 위로였다.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게 하시면서 위로하셨다. 결코 하나님의 위로는 빈 위로가 아니었다. 참된 위로였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로하기 위해 독생자를 보내시고 우셨다. 자신은 울지 않으면서 울고 있는 다른 사람을 위로할 수는 없다. 갈수록 세상은 사랑이 식어간다. 진짜 믿음의 사람들은 상대방의 마음에 와 닿는 말로 위로를 한다. 마음에 도달하는 진짜 사랑이 마음의 거리를 좁힐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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