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년간 문산 영천강 뚝방에서 작은음악회 열어

매주 토요일 오후 7시, 지역의 무명가수, 연주자 출연
‘뚝방 다슬기추어탕’ 수익금으로 음악회 경비 충당해
성공한 예술인 초청해 후배들 격려무대 만드는 게 꿈
첫 번째 행사로 탈렌트 정혜선 초청해 대담 무대 가져

지난해 진주노래만으로 ‘1회 내고향 진주 가요제’ 개최
진주 관련 노래만 ‘나훈아의 진주처녀’ 등 240곡 돼
서울예고 중퇴 후 앙드레 김 선생과 모델 활동도 해
우연히 빈민구제 활동 접한 후 30년 동안 봉사활동 해

김영삼(57) 경남예술인총연합회 회장은 매주 토요일 오후 7시 진주시 문산읍 영천강 뚝방에서 ‘뚝방 작은음악회’를 열고 있다.
김영삼(57) 경남예술인총연합회 회장은 매주 토요일 오후 7시 진주시 문산읍 영천강 뚝방에서 ‘뚝방 작은음악회’를 열고 있다.

[한국농어촌방송/경남=황인태 대기자] 김영삼(57) 경남예술인총연합회 회장은 2017년부터 3년 동안 진주시 문산읍에 있는 영천강 뚝방에서 ‘뚝방 작은음악회’를 자신의 사비를 들여 개최하고 있다. 이 음악회는 주로 진주인근에서 활동하는 가수들과 연주자들이 출연을 한다. 김 회장은 지역의 음악인들이 설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 준다는 의미에서 음악회를 열고 있다고 했다. 음악회가 끝나면 공연실황을 녹화해 유투브에 올려 전국적으로 홍보가 되도록 하는 게 김 회장이 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 김 회장은 ‘발길이 머무는 곳에’라는 유투브 채널을 가지고 있다.

3년 동안 매주 토요일 개최하는 ‘작은 음악회’의 경비는 모두 김 회장 아내가 운영하는 ‘뚝방 다슬기추어탕’에서 나오는 수익금으로 충당하고 있다. ‘뚝방 다슬기 추어탕’은 매일 170그릇을 한정해 판매하는 마케팅으로 유명한 곳이다. 추어탕 맛이 좋다고 소문이 나서 코로나19상황에서도 영업이 잘되고 있은 진주의 유명 맛 집 중 한곳이다.

아내가 번 돈으로 음악회를 여는 데 반대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김 회장은 “아내도 평생 봉사활동을 해 온 사람이라 남을 돕는 DNA가 있어서 흔쾌히 기부를 한다.”고 밝혔다.

김 회장은 앞으로 ‘뚝방 작은음악회’를 확대해 중앙에서 활동하는 유명한 탈렌트, 배우, 음악인들을 초빙해 지역음악인들을 격려하고 후배 음악인들이 성공할 수 있는 멘토역할을 하도록 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혁신도시에 입주해 있는 LH와 한국승강기안전공단 등과 협의하고 있다.

실제로 국민배우 탈렌트 정혜선 선생이 지난 2일, 1박2일 일정으로 진주를 방문해 ‘뚝방 작은음악회’에서 자신의 인생과 연기에 대한 대담을 하기도 했다. 김 회장은 이런 형식의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열 생각이라고 말했다.

김영삼(57)회장은 1963년 진주시 문산읍에서 태어나서 문산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예고에 진학하면서 고향을 떠났다. 예술인을 꿈꾸며 서울예고에 다니던 김 회장은 무대설치 실습을 하다가 추락해 중상을 입는 사고를 당했다. 이 사고로 여러 달 동안 병원에 입원하게 되면서 학업을 중단하게 되는 청천벽력 같은 불행을 입게 됐다.

자신의 불행을 극복하고 모델로 활동하는 등 나름대로 재기를 모색하던 김 회장은 우연한 기회에 빈민구제운동을 접하게 됐다. 운명처럼 봉사활동에 매료된 김 회장은 빈민활동을 하는 공동체에 정식으로 소속돼 본격적으로 봉사활동을 하게 됐다. 하루에 2000~3000그릇에 해당하는 급식봉사활동을 하면서도 전혀 힘든 줄 몰랐다. 그렇게 해서 김 회장의 봉사활동은 30년을 이어지게 됐다.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한 급식봉사는 식전 공연이 중요하다. 그러나 출연료를 지급할 수 없는 봉사단체의 성격상 지역에서 활동하는 무명가수들을 활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활동으로 인해 지역의 무명가수들과의 네트워크가 생기게 됐다. 김 회장이 평생 무명가수와 봉사활동을 연계 짓는 활동을 하게 된 이유이다.

김 회장은 2017년 고향인 문산으로 귀향을 했다. 귀향을 하면서 고향의 어르신들을 위한 봉사활동을 하고자 아내와 상의하여 ‘뚝방 다슬기추어탕’을 열었다. 이 수익금으로 지역의 무명가수들을 위한 무대를 만들고 또 추어탕으로 어르신들에게 급식봉사를 하기 위해서였다.

다행이 추어탕 맛이 좋아서 식당운영이 잘 됐다. 지금도 매일 영업을 하고 남는 추어탕은 근처 양로원, 요양원들에 기부하여 어르신들이 드실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김 회장은 앞으로 지역의 무명 가수들이 설수 있는 무대를 많이 만드는 게 꿈이다. 지난해 내고향 진주가요제를 시작했는데 반응이 좋아서 올해에는 더 큰 무대를 만들 계획이다.

다음은 김영삼회장과의 인터뷰이다.

▲뚝방 작은음악회는 언제 시작했나.

-2017년 가을, 제가 광주에서 살다가 고향인 진주시 문산읍으로 귀향을 했다. 이때부터 매주 토요일 오후 7시부터 9시까지 약 2시간 동안 작은음악회를 연다.

▲주로 어떤 음악인들이 출연하는가.

-노래를 부르는 가수, 악기를 연주하는 연주가 들이 주로 무대에 오른다. 진주에는 지역에서 활동하는 가수들이 많고 또 색소폰, 하모니카 동호회가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이들이 정기적으로 출연한다. 다들 출연료 없이 무료로 공연에 임해주고 있다.

▲이렇게 매주 토요일 작은음악회를 여는 이유는 뭔가.

-지역의 가수들은 아직 무명이다 보니 자신들의 노래를 알릴 무대가 부족하다. 그래서 이들이 노래를 부를 무대를 만들어 주고 싶었다. 공연을 하고 나면 공연실황을 촬영하여 유투브에 올려 홍보가 되도록 한다. 이를 위해 ‘발길 머무는 곳에’라는 유투브 채널을 가지고 있다.

▲음악회를 여는데 들어가는 경비는 어떻게 충당하나.

-제가 뚝방에서 ‘뚝방 다슬기 추어탕’이라는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이 식당을 운영해서 나오는 수익금으로 음악회 경비를 충당하고 있다.

▲다슬기 추어탕을 팔아서 음악회 경비가 되나.

-추어탕은 매일 170그릇을 한정해 팔고 있다. 그런데 보통 140~150그릇이 팔린다. 한 그릇에 8000원 하니까 하루 100만원 남짓 매출이 발생한다. 한 달 내내 쉬지 않고 식당을 운영하기 때문에 월 3000만 원 정도의 매출이 생긴다. 이 매출에서 식당운영에 들어가는 비용을 빼고 나서 남는 수익으로 음악회를 운영하고 있다.

▲식당은 누가 운영하나.

-아내가 운영하고 있다.

▲그럼, 아내가 번 돈으로 음악회를 열고 있는 건데 반대하지 않나.

-반대하지 않는다. 아내도 30년을 봉사활동을 해 온 사람이다. 그래서 봉사활동의 DNA가 있는 사람이다. 남편이 지역의 가수들이나 연주자들이 설 무대를 마련한다는 데 대해 전혀 반대하지 않고 있다.

▲하루 170 그릇으로 한정해 파는데 이유가 있나.

-그 정도 팔면 생활이 되기 때문이다.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욕심을 부리지 않는 것이다.

▲팔다가 남는 추어탕은 어떻게 하나.

-그날 저녁에 양로원이나 요양원 등에 기부해 어르신들이 드실 수 있도록 한다.

▲작은 음악회는 관객이 주로 어떤 사람들인가.

-문산읍 인근에 살고 계시는 지역민들이 주로 온다. 어르신들이 많다. 매회 약 30명 정도가 공연을 즐기는 것 같다.

▲앞으로도 계속할 건가.

-그렇다. 제가 살아있는 한 계속할 거다.

▲앞으로도 지역 음악인 위주로 운영할 건가.

-그렇지는 않다. 혁신도시에 있는 LH,승강기 안전공단 등과 협력하여 중앙의 탈렌트, 배우, 가수, 연주자들을 초청해 지역에서 활동하는 예술인들에게 들려줄 얘기를 나누는 무대도 만들고 지역에서 배우, 음악인들이 되고 싶어 하는 후진들을 위한 강연등도 구상하고 있다.

▲이들도 무료로 출연하나.

-아니다. 이들은 지역의 예술인들을 위한 재능기부 성격도 있다. 그렇지만 완전히 무료로 할 수는 없어서 LH, 승강기 안전공단 등에서 차비 정도의 출연료를 지급하도록 할 것이다.

▲지난번에 40년 만에 진주를 유람한 탈렌트 정혜선선생도 뚝방 작은음악회에서 초청한 건가.

-그렇다. 정혜선 선생을 초청해 뚝방 작은음악회에서 자신의 인생에 대한 얘기도 하고 후배들을 격려하기도 했다. 앞으로도 이런 성격의 행사를 자주 가지려고 한다.

▲이렇게 지역의 가수와 음악인들을 위한 음악회를 여는데 진주시나 경남도의 지원은 없나.

-아직은 진주시나 경남도에서 보조금을 받은 게 없다. 기본적으로 보조금을 받지 않고 운영하자는 게 제 소신이다. 그냥 봉사하는 마음으로 시작했으니까 끝까지 초심을 유지하자는 게 제 생각이다.

▲그래도 보조금을 받으면 조금 쉽게 운영할 수 있지 않을까.

-보조금을 받으면 그때부터 순수한 봉사의 의미가 퇴색될 수 있다.

▲이렇게 음악을 위해 봉사활동을 하는 건 어떤 계기로 시작했나.

-제가 서울에서 살 때 달동네 빈민 활동을 했다. 이때 매일 어르신들을 위한 짜장면 봉사를 했다. 그런데 봉사활동을 할 때 식전 공연을 하면 어르신들이 더 좋아한다. 그렇게 해서 봉사활동과 공연을 함께 하게 된 거다.

▲그때 지역의 무명가수를 활용한 건가.

-그렇다. 유명 가수를 활용하면 좋겠지만 봉사단체의 성격상 할 수 없는 일이어서 지역의 무명가수들에 얘기했더니 흔쾌히 응해줬다. 그게 지역의 무명가수들과 네트워크가 시작된 계기이다.

▲봉사활동은 얼마동안 했나.

-한 30년간 했다. 서울의 달동네에서 하다가 광주에서 김규옥 목사님이 함께 하자고 해서 2008년에 광주에 가서 활동했다. 그러다가 2017년 고향인 진주로 오게 된 거다. 고향에 오면서도 평생 해 온 봉사활동을 하고자 경남예술인총연합회를 만들었다.

▲봉사활동과 경남예술인 총연합회가 무슨 관계가 있나.

-경남예술인 총연합회는 지역의 가수들이 약 50명 회원이다. 이들이 봉사활동 할 때마다 무료로 공연을 한다. 봉사활동에는 꼭 공연이 필요하다. 그게 제가 하는 봉사활동 방식이다. 그래서 예술인 연합회를 만들어서 그 회원들로 공연단을 꾸린다.

▲고향이 어디인가.

-1963년 진주시 문산읍에서 태어났다.

▲진주를 떠난 것은 언제인가.

-문산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예고에 합격해 서울로 가면서 진주를 떠났다.

▲그럼, 서울예고를 졸업하고 예술계에 투신하게 됐나.

-아니다. 서울예고를 다닐 때 무대설치를 하는 실습을 하다가 추락해 크게 다쳤다. 그때 병원에 여러 달 입원을 했다. 그 사고로 인해 예고를 중퇴했다. 저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중퇴하고는 무얼 했나.

-예고를 다녔기 때문에 아무래도 예술계 쪽으로 인맥이 많았다. 그래서 모델도 하는 등 처음에는 예술계에서 활동하면서 재기를 꿈꿨다.

▲모델은 누구랑 했나.

-앙드레 김 선생님과 같이 활동했다.

▲그런데 왜 그만뒀나.

-저는 사업이 재미있었다. 당시에 시대를 앞서가는 캠핑카 사업도 하는 등 여러 가지 사업을 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빈민구제 활동을 알게 됐다. 처음 접하고는 운명처럼 빈민 활동에 빠져들게 됐고 서울의 달동네에서 활동하는 빈민구제 공동체에 소속돼 본격적인 봉사활동을 하게 된 거다.

▲그럼, 봉사활동이 일종의 직업이 된 건가.

-말하자면 그렇다. 봉사활동을 하는 공동체에 소속돼 30년 동안 움직였다.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에 일어나서 2000~3000그릇의 식사를 독거노인들을 위해서 제공했다. 서울에서 활동하다가 2008년 광주로 갔고 2017년 고향에 오게 된 것이다.

▲앞으로는 어떻게 활동할 계획인가.

-고향인 진주에 왔으니 고향의 후배 가수들을 키워주고 싶다. 그래서 이들이 편하게 출연해 노래 부를 수 있는 무대를 다양하게 만들 계획이다. 지난해 개최한 ‘내고향 진주가요제’도 그런 활동의 일환이다.

▲‘내고향 진주가요제’는 어떤 행사인가.

-진주와 관련된 노래만 가지고 가요제를 하는 것이다.

▲진주와 관련된 노래가 많은가.

-제가 조사한 바로는 진주관련 노래가 240곡이나 된다.

▲240곡이면 엄청 많은데 어떤 것들이 있나.

-남인수가 부른 내고향 진주, 진주남강 등이 있고 나훈아가 부른 진주처녀라는 노래도 있다.

▲그럼 내고향 진주가요제는 이런 노래를 불러서 경연을 하는 건가.

-그렇다. 인기가 좋아서 올해는 지난해보다 더 큰 규모로 열 계획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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