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우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과 전 학부장
정용우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과 전 학부장

[한국농어촌방송/경남=정용우 서울디지털대학교 부동산학과 객원교수(전 학부장)] 시골의 아침은 일찍 시작된다. 요즘은 여름철이라 더욱 그렇다. 침대에 좀 더 누워있고 싶어도 아침 햇살이 창으로 비쳐드니 바로 일어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는 거실에 앉아 시골에서만 맛볼 수 있는 아침 고요를 즐긴다. 어제 비가 내린 탓인지 잔디밭 위로 비스듬히 비쳐드는 햇살이 맑고 상큼하다. 그 햇살 속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는 한 무리의 하루살이 떼를 본다. 하루살이 떼는 온갖 생명이 왕성하게 활동하는 여름철이면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지만 지금처럼 햇살이 맑고 상큼할 때는 유별나게 뚜렷이 눈에 들어온다. 떼를 지어 움직이면서 이리저리 잘도 논다. 이들 하루살이 떼는 이렇게 열심히 놀다가 해가 솟아올라 세상이 훤해질 때쯤이면 어디론가 사라지고 무리를 놓친 몇 마리만 거실에 설치된 그물망 위에서 서성인다. 마치 나를 만나고 싶다는 듯이... 이 하루살이들은 내가 만나지 않으면 그뿐, 나에게 직접적인 피해나 괴로움을 주지는 않는다. 그런데 이와 반대로 나를 아주 괴롭히는 하루살이 떼도 있다. 해거름 산책길에서 만나는 하루살이 떼다.

여름이 코앞까지 다가 온 지금, 대낮에 산책길에 나서다보면 금세 콧잔등에 땀이 맺힐 만큼 기온이 올라간다. 그래서 얼마 전까지 낮에 하던 산책을 해거름께로 늦춘다. 이때 만나는 하루살이 떼는 아침에 보는 하루살이 떼와는 달리 나를 아주 괴롭힌다. 강둑길 옆으로 농수로가 있어 그런지 하루살이들이 떼 지어 몰려다니면서 나를 귀찮게 한다. 손을 이리저리 휘둘러가며 산책을 해야 하고 심할 때는 강둑길 산책을 포기하고 다른 길을 걸어야 할 정도이다. 이렇게 나를 귀찮게 하고 괴롭히는 하루살이 떼를 처음에는 아주 못마땅하게 대했으나 앞으로는 이들에 대한 내 생각을 바꾸어나가기로 했다. 안도현 시인의 시 한 수를 떠올리고 나서부터이다.

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라는 시... 불과 세 행으로 된 짧은 시인데, 마치 폐부를 찌르는 선사(禪師)의 일갈(一喝)같은 날카로움에 가슴이 섬뜩해지기도 한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너는/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냐-

지금은 차갑게 식어 볼 품 없이 뒹굴고 있지만 그래도 한 때는 뜨거운 불덩어리였던 연탄재... 나는 과연 언제 남을 위해 뜨겁게 불타 본 적이 있었던가. 그렇게 치열하게 살아보지 못한 내가 감히 화풀이로 연탄재를 발로 찰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웠던 적이 있었던가를 반성하면서 조용히 이 시를 되뇌어 읊던 기억... 불태우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어 자신의 몸뚱어리를 소진시킨 연탄 하나... 이 연탄이 하루살이로 변해 나에게 새로운 의미를 전달해주었기 때문이다.

여러 해(보통 1년에서 3년) 동안 물속에 있다가 겨우 알에서 깨어나 맑은 세상을 날 수 있게 된 하루살이... 이 하루살이의 일생은 하루다. 정말 하루살이가 꼭 하루만 사는 것은 아니다. 한 사나흘 살기도 한다는 이야기도 어디선가 들은 것 같고, 수명이 짧은 놈은 단 4시간 안팎밖에 살지 못한다고 듣기도 했다. 아무튼 그 생명이 지극히 짧은 것은 사실이다. 우리 인간에게는 짧디짧은 하루지만 하루살이에게는 평생의 시간이다. 이런 생의 운명을 타고난 하루살이가 강둑길을 무대로 마음껏 생의 향연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일생이 딱 하루이지만 ‘이게 어디야!’ 하고 생각하는 듯... 하루가 생의 첫날이자 마지막 날이지만 잘 살아 거리낄 게 없다는 듯... 그 살아가는 그 모습이 당당하다. 나라면 이렇게 하루밖에 살지 못하는 운명을 타고난 것을 원망하고 한탄하면서 분노와 절망의 시간을 보낼 것 같은데 하루살이들에게서는 그런 감정은 전혀 느낄 수 없을 만큼 그 움직임이 활발하다. 오히려 주어진 운명을 즐기는 듯한, 하루지만 이렇게 주어진 삶에 감사하는 듯한 느낌... 전 생애를 단 하루에 응축시키는 하루살이가 새로운 메시지를 안고 나에게 다가온다. 나의 한 생애도 영원의 관점에서 본다면 하루살이 삶과 다를 바 무엇이 있겠는가. 문득 '하루를 살아도 행복할 수 있다면 그 길을 택하고 싶다'는 노래가사가 떠오른다.

하루하루가 쌓여 일생이 되는 우리네 삶의 여정... 하루하루가 행복하면 일생이 행복하다. 그래서 이 하루하루의 삶을 허투루 보내서는 안 된다. 코로나19로 인해 하루하루의 삶이 역겹고 힘든 요즘, 분노와 절망 속에서만 보낼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강둑길 높은 곳, 시원한 바람이 한 차례 불어 닥친다. 이에 맞서는 하루살이 떼, 그 움직임이 더욱 활발하다. 어떻게든 있는 힘을 다해 오늘 하루 더 잘 엮어내라고 격려라도 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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