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BS역사칼럼-길 위의 역사] (2부 무오사화) - 100회 윤필상 등이 권오복을 국문할 것을 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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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BS역사칼럼-길 위의 역사] (2부 무오사화) - 100회 윤필상 등이 권오복을 국문할 것을 청하다.
  • 김세곤 칼럼니스트
  • 승인 2020.07.20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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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8년(연산군 4년) 7월14일에 윤필상 등은 권오복을 국문할 것을 청했다.

윤필상 등은 권오복이 김일손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만 듣건대 그대들이 개현(改絃)하기에 급하여 만사를 일신하려고 하다가 뭇 비방을 샀다니, 통곡하고 유체(流涕)함이 마치 낙양(洛陽)의 소년과도 같은데 도리어 강후(絳侯)와 관영(灌嬰)들에게 단척(短斥)한 바 되었다.’는 등의 말이 있었다 하여 권오복을 잡아다 국문할 것을 청한 것이다. (연산군일기 1498년 7월 14일 7번째 기사)

권오복의 편지는 김일손을 잡으러 경상도로 간 의금부 경력 홍사호 등이 김일손의 집을 수색하여 찾아낸 편지였다. (연산군일기 1498년 7월12일 3번째 기사)

그러면 권오복이 김일손에게 보낸 편지부터 읽어보자.

“두 번이나 편지를 받아 사간원 헌납(獻納)하기에 빈 날이 없는가 살폈으니, 벗의 기쁨을 가히 알겠도다. 다만 듣건대 그대들이 개현(改絃) 하기에 급하여 만사를 모두 일신하려 하다가 뭇 비방을 샀다니, 통곡하고 유체(流涕)함이 저 낙양 소년과도 같은데, 도리어 강후(絳侯)와 관영(灌嬰) 등에게 단척 되는 것이 아닌가.

몸이 먼 지역에 있으나 일찍이 그대들을 위하여 위태롭게 여기지 않은 적이 없노라. 또 듣자니‘상재(祥齋 수륙재를 말함)를 간(諫)하다가 허락을 얻지 못하고 호부(戶部)로 체임(遞任)되었다.’하는데, 과연 그런가? 이 해도 거의 다 갔으니, 이별의 그리움이 더욱 괴롭구려!”

이 편지는 1495년 말에 권오복이 함창현감 (지금의 경상북도 상주시 함창읍) 시절에 쓴 것이다.

편지에는 ‘김일손이 헌납 벼슬을 하다가 호조좌랑으로 체임되었다.’는 글이 있는데, 김일손은 1495년 10월에 사간원 헌납에 임명되어 간언하다가 12월9일에 체직되었다. (연산군일기 1495년 12월 9일)

권오복은 김일손이 개현(改絃 악기의 줄을 바로 잡는다는 뜻, 개혁) 하려다 배척되었음을 아쉬워하고 있다. 즉 김일손을 중국 한나라 고조 때 낙양 소년인 가의(賈誼 BC 200~168)의 처지와 같다고 본 것이다.

가의는 18세에 수재라는 평판이 높았고 22세에 박사관(博士官)에 임명되었으며 태중대부(太中大夫)에 발탁되었다. 그는 한나라의 제도와 역법을 개정할 것을 천자에게 진언하였지만 강후(주발을 말함)과 관영등의 수구파 대신들의 반대로 개혁이 좌절되었다. 사마천의 『사기』에 나온다.

한편 윤필상 등이 권오복을 국문할 것을 청하자 영의정을 역임한 원로대신 노사신(1427∼1498)이 나섰다.

“불가하다. 옛날 송(宋)나라에서 소동파의 시(詩)에 기롱과 풍자가 있다 하여 그 죄를 파내서 마침내 폄축(貶逐)했으므로, 그것이 지금까지 청의(淸議 고결하고 공정한 언론)의 비방거리가 되었는데, 우리들이 어찌 그 실책을 다시 되풀이하겠는가.”

소동파(1037∼1101)는 송나라 시대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당송팔대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그는 곡절 많은 삶을 살았다. 유배와 좌천의 연속이었다. 동파육도 항주로 좌천된 소동파가 만들어 먹은 돼지고기 요리이다.

노사신은 소동파가 지은 풍자 시를 가지고 송나라 권신들이 소동파를 죄준 것이 두고두고 역사에 비방 거리가 된 것을 상기시킨다. 그는 권오복의 편지에 역적모의한 내용도 없고, 조정을 비방한 것도 아닌데, 김일손에게 보낸 편지라 하여 권오복을 국문하는 것에 반대한 것이다.

하지만 윤필상 · 유자광 등 좌중은 듣지 않고 마침내 권오복을 잡아 올 것을 청하였다.

이렇게 윤필상과 유자광 등은 판을 자꾸 키우고 있다. 노사신은 무오사화 처리 과정에서 공정하고 올곧은 의견을 제시한 유일한 인물이었다. 무오사화 이후인 9월6일에 노사신은 별세했는데 의로운 선비로 역사에 남았다. (연산군일기 1498년 9월 6일 선성 부원군 노사신의 졸기)

요즘 일련의 사건들을 접하면서 이런 생각을 자주 한다.

“마지막이 좋아야 모든 것이 좋다.”

창덕궁 희정당 (사진=김세곤)
창덕궁 희정당(앞면) (사진=김세곤)
창덕궁 희정당 (사진=김세곤)
창덕궁 희정당(옆면) (사진=김세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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