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산군은 여러 신하들 앞에서 김종직이 지은 「조의제문」을 한 줄 한 줄 읽었다. (연산군일기 1498년 7월 17일 2번째 기사)

“정축 10월 어느 날(丁丑十月日), 나는 밀성(密城)으로부터 경산(京山)으로 향하여 답계역(踏溪驛)에서 자는데, 꿈에 신(神)이 칠장(七章)의 의복을 입고 헌칠한 모양으로 와서 스스로 말하기를 「나는 초(楚)나라 회왕(懷王)의 손자 심(心 의제를 말함)인데, 서초패왕(西楚霸王 항우를 말함)에게 살해되어 침강(郴江)에 잠겼다.」 하고 문득 보이지 아니하였다."

정축 10월 어느 날, 김종직은 답계역에서 자면서 꿈을 꾸었다. 초나라 의제가 꿈에 나타나 항우에게 살해되어 침강(郴江)에 잠겼다고 말한 꿈이었다.

‘정축 10월’은 1457년 10월이다. 이 당시 김종직은 부친 김숙자의 상(喪)을 당하여 밀양에서 시묘살이 중이었다.

먼저 한국고전번역원 홈페이지에 있는 <한국고전종합DB> 「점필재집」의 ‘점필재 선생 연보’를 읽어보자

먼저 1456년 연보이다.

3월 모일에 부친의 상(喪)을 당하여 전죽(饘粥)만 마시며 곡읍(哭泣)하였는데, 기절하였다가 다시 깨어났다. 밀양부(密陽府)의 서쪽으로 6리쯤에 있는 고암산(高巖山) 분저곡(粉底谷)에 장례를 거행하였으니,

부친의 뜻을 따른 것이다. 선생은 큰 형, 둘째 형과 함께 여묘살이를 하면서 효성이 지극하여 향려(鄕閭)가 모두 감화(感化)되었다. (후략)

이어서 1457년 연보이다.

선생은 수질(首絰), 요질(腰絰)을 벗지 않고 거적자리에 누워 나무토막을 베고 자며, 거친 음식을 먹었다. 그리고 시전(侍奠)의 여가에는 여소(廬所)에서 조석으로 내려가 모부인(母夫人 모친)을 뵙고 돌아갔는데, 이러한 일을 추운 때나 더운 때나 비오는 날이라 하더라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러니 조의제문(吊義帝文)에서,

“정축년 10월 일에 내가 밀성(密城)으로부터 경산(京山)으로 가는 도중에 답계역에서 묵었다.” 고 한 말은 착오인 듯하다.

선생은 집에서 사숙(私淑)하면서 유독 포은 정몽주 선생을 추앙하여, 쇠퇴한 세상에 스스로 우뚝이 서서 습속(習俗)에 휩쓸리지 않고 능히 성인(聖人)의 예제(禮制)를 따라 자진(自盡)의 정성을 다하였고 보면, 선생이 어찌 거상(居喪) 중에 출입을 했을 리가 있겠는가.

이왕이면 1458년도 읽어보자.

복(服)을 마치고는 두어 칸의 집을 지어 명발와(明發窩)라 이름하였다. 여기에 거처하면서 첫닭이 울면 의관(衣冠)을 정제하고 먼저 가묘(家廟)를 배알한 다음 모부인을 뵙고 물러 와서는 단정히 앉아서 경전(經傳)을 강구(講究)하되 부지런히 하여 마지않았다. (후략)

이렇게 ‘김종직 연보’를 살펴보니, 부친상을 당하여 시묘살이 중인 김종직이 1457년 10월에 밀양을 떠나 경산에 갔다는 것은 의심이 간다.

연보에도 착오인 듯 같다고 적혀있다.

그렇다면 조의제문은 ‘정축년(1457년) 10월’이 아닌 다른 시기에 지었을 가능성도 있다.

더구나 ‘정축년 10월’은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강원도 영월로 유배된 후에 관풍헌에서 죽은 때이다. (세조실록 1457년 10월 21일)

만약 조의제문 맨 앞에 ‘정축년 10월’이란 글이 있었다면 당시의 조정 관료나 유생들이 조의제문은 단종의 죽음과 관련이 있음을 금방 알 수 있었을 것인데, 윤필상 등은 "신 등이 김종직의 조의제문을 보니, 그 의미가 깊고 깊어 김일손의 ‘충분(忠憤)을 부쳤다.’는 말이 없었다면 진실로 해독하기 어려웠다고 말하고, 대사헌 강귀손도 “김종직의 문집은 신의 집에도 역시 있사온데, 신은 일찍이 보고도 그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또한 김종직이 ‘정축년(1457년) 10월’에 단종의 죽음과 관련하여 조의제문을 지었다면, 1457년 10월21일에 강원도 영월에서 죽은 단종의 소식을 어떻게 경상도 밀양에서 시묘살이 중인 김종직이 며칠도 안되어 알 수 있었을까?

아무튼 의문이 가는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김종직 생가 추원재(경남 밀양시) (사진=김세곤)
김종직 생가 추원재(경남 밀양시) (사진=김세곤)
김종직 묘소 안내판 (추원재 뒷산) (사진=김세곤)
김종직 묘소 안내판 (추원재 뒷산) (사진=김세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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