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대화가 필요한 것이지
일방적인 말이 필요하지는 않다
내가 말하는 시간보다
남의 말을 듣는 시간이 많아야
대화가 가능하다

정숙자 문학박사
정숙자 문학박사

[한국농어촌방송/경남=정숙자 문학박사] 요즘은 배려와 소통이라는 말이 흘러넘친다. 그 말이 우리 사회에 간절히 필요해서 하는 것인지, 말의 의미가 좋아 보여서 누구나 하는 말인지 착각이 들 정도로 많은 사람의 말 속에 있다. 소통과 배려라는 말은 남에게 강요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타인을 위해서 지키기 위해서 하는 말이어야 한다. 하지만 소수의 사람은 그 말과 전혀 상관이 없는 데도 사용한다. 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저런 부류의 사람과 오랫동안 함께 갈 수 있을지 말이다.

분명 본인은 자기 성향대로 말한다. 그 잘난 성격으로 화와 짜증을 콤비로 가져오고는 스트레스를 풀고는 말한다. 이해하라고 하면서 그 좋은 말, 소통과 배려라는 말들을 덧붙인다. 이해하라는 말도 그럴 때 사용하는 단어가 아니듯 참고 견디고 있는 사람을 위해 이 두 말은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본다. 참아보지 않은 사람에게 참아보라고 요구하지 않는 것처럼 그들도 참고 버티고 있는 사람에게 오래도록 함께 가자고 하면 안 되는 것이다. 서로의 길을 가도록 하는 것이 배려이며 서로의 길에서 혹 만나면 참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소통이다.

길에서 만난 보통의 사람은 말이 많으면 상대를 알아보지 못한다. 우리는 대화를 필요로 하는 것이지 일방적인 말이 필요하지는 않다. 대화는 내가 말하는 시간보다 남의 말을 듣는 시간이 많아야 가능하다. 상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의 눈을 바라보면 진정성을 알 수 있고, 말하면서 하는 행동을 보면 인간됨을 헤아릴 수 있다. 그렇게 그 사람을 파악하고 난 후 관계정리를 하면 된다. 진실함이 있는 사람인지 아니면 허구로 찬 인생인지 그것도 아니면 사람의 무리에 둘 수 있는지조차 가늠이 된다. 반면 대화라고 착각하고 말만 많아지는 사람은 일단 남을 헤아리지 못한다. 그 대부분의 말에는 진실보다 가식, 헛된 말이나 버려야 할 말들이 많다. 그리고 했던 말들을 수없이 되풀이하게 된다.

몇 번 만나면 그 사람의 스토리를 파악하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만나는 사람들도 죄다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다. 척하는 사람들로 구성된 집단이 되고 만다. 이들에게 무슨 신의가 있으며 만남의 연속성을 바랄 수 있겠는가. 말이 많은 사람은 상대의 사람들에게 실망했다고 한탄을 한다. 자신이 만든 집단인 것을 잊어버린다. 말이 옳은 사람을 숨겨버린 이유를 그들은 알지 못한다. 말도 참고 견뎌서 상대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어야 좋은 사람들과 함께 오래도록 인생을 걸어간다. 외롭지 않으며 사람들 속에서 하루를 보내고 또 내일을 맞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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