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4년 12월 12일(양력 1895년 1월 7일)에 고종은 종묘에 나아가 홍범 14조를 신령 앞에 고했다. 12월 13일에 고종은 모든 관리와 백성들에게 자주독립을 고취시키는 윤음(綸音)을 내렸다.

12월 17일에 총리대신 김홍집, 내무 대신 박영효, 학무 대신 박정양, 외무 대신 김윤식, 탁지 대신 어윤중, 법무 대신 서광범 등이 왕실에 관한 존칭을 높일 것을 주청했다. 그리하여 주상 전하를 대군주 폐하로 왕비 전하를 왕후 폐하로 칭하였다.

한편 청일전쟁에서 일본은 청국의 북양함대를 함락시켰고 요동반도를 완전 장악하였다. 일본군이 베이징 근처까지 밀고 들어가 수도를 위협하자 청나라 조정은 급히 이홍장을 시모노세키로 파견하였다. 양국대표는 요리 집 춘범루(春帆樓)에서 교섭에 들어갔다. 청국 측은 이홍장 · 이경방이 참석하였고 일본 측에서는 이토 총리와 무쓰 외상이 참석하였다.

이홍장은 피격당하는 수모까지 겪어가면서 강화회담을 하여 양력 4월 17일(음력 3월 23일)에 시모노세키조약(下關條約)을 체결했다. 전문 11조로 된 시모노세키 조약의 주요 골자는 다음과 같다.

1. 조선이 완전한 독립국임을 승인한다.

2. 요동 반도 · 대만 · 팽호 열도를 할양한다.

3. 배상금으로 2억 냥(일화 3억 엔)을 7년 분할로 지불한다.

4. 사시(沙市) · 중경 · 소주 · 항주를 개시(開市) · 개항(開港)한다.

5. 본 조약 비준 후 3개월 이내에 일본군은 철수하며 조약을 성실히 이행하는 담보로 위해위를 점령한다.

이 조약은 일본에겐 승리의 열매였고 청국은 굴욕이었다.

그런데 동북아 남하정책을 추진 중인 러시아가 반발하고 나섰다. 러시아는 독일 · 프랑스를 부추겨 양력 4월 23일에 일본의 요동 반도 점유를 반대하고 나섰다. 삼국간섭이었다. 결국 4월 29일에 일본은 3천 만냥의 배상금을 받고 요동 반도를 청국에 반환하기로 결정하였다. 일본은 와신상담하면서 후일을 기약했는데, 1904년에 일어난 러일전쟁에서 일본은 예상을 뒤엎고 설욕했다.

한편 러시아의 기침 한 번에 일본이 독감에 걸린 것을 본 영악한 민왕후는 열강의 역학관계의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러시아 공사 베베르는 수시로 왕실을 들락거렸고, 고종 부부는 인아거일(引俄拒日 러시아에 접근하고 일본을 멀리하는)을 추진했다.

음력 5월 5일(이하 음력이다.)에 총리대신 김홍집이 사직하자 고종은 학부대신 박정양을 총리대신에 임용하였다. 박정양은 초대 주미 전권공사를 한 친미파였다.

윤5월 14일에 박영효의 역모 사건이 터졌다. 고종의 체포 명령이 떨어지자 박영효는 일본으로 도망쳤고, 내부 협판 유길준이 내부대신 서리를 하였다.

6월 6일에 고종은 러시아 공사 베베르(Waeber)를 접견하였다.

베베르는 고종 부부에게 일본을 견제하는 나라가 러시아임을 부각시켰고, 민왕후는 러시아를 이용하여 권력을 회복하려고 하였다.

우선 고종은 유배 중인 민씨 척족들을 사면했다. 7월 3일에 고종은 민영준, 민영주, 민형식, 민병석, 민응식, 민영순 등 271명을 대 사면하였다.

이어서 고종은 7월 5일에 김홍집을 다시 총리대신에, 박정양을 내부 대신에 임용했다. 궁내부 협판 이범진에게 대신의 사무를 서리(署理)하라고 명하였다. 이러자 친일파는 줄어들고 친러파와 친미파 등 소위 정동그룹이 기용되었다.

이에 위협을 느낀 일본은 돌격형 육군 중장 출신 미우라 고로를 일본공사로 임명하였다. 7월 13일에 조선에 온 미우라 고로는 전(前) 공사 이노우에 가오루와 함께 7월 15일에 고종을 알현했다.

이후 이노우에는 7월 29일까지 17일간 미우라와 함께 민왕후를 시해하는 ‘여우 사냥’ 작전을 꾸미다가 일본으로 돌아갔고, 미우라는 공관에 머물면서 참선에 몰두하는 척했다.

8월 16일에 내부 협판(차관) 유길준은 의주부 관찰사로 밀려났고, 8월 17일에 궁내부 협판 이범진이 농상공부 대신에 임용되었다. 바야흐로 친일파는 숙청되고 친러파가 등용된 것이다.

이러자 미우라 공사는 민왕후 시해 준비에 박차를 가했고 8월 20일(양력 10월 8일)에 을미사변이 일어났다.

시모노세키  춘범루 (사진=김세곤)
시모노세키 춘범루 (사진=김세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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