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숙자 문학박사
정숙자 문학박사

[한국농어촌방송/경남=정숙자 문학박사]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는 뜻은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닌 것 같다. 주위를 살펴 새로운 바람의 느낌을 알아차리고 햇살의 존재를 깨닫고 더불어 그 속에 혼자 걷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진양호 호수에 갇힌 하늘과 겨울의 산을, 나의 눈높이에서 관찰할 수 있는 여유로움이 있다. 호수의 잠금 열쇠는 겨울새들의 갑작스런 방문이었다. 새들이 떼를 지어 호수에 발을 담그고 날개를 쉬게 하는 동안 호수는 품었던 하늘과 산을 놓아준다.

내 곁에 있는 자연은 이렇게 조화로운 현상으로 늘 있다. 나는 대단할 것도 없는데 늘 좋은 모습만 유지하려고 아등바등 애쓰는 모습이 안쓰럽다. 나는 한 걸음씩 나에게 맞는 보폭으로 걷고 싶었는데 누군가의 강요에 의해 뛰어다니고 감당할 수 없는 보폭으로 걷고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나의 걸음은 사라지고 체면에 걸린 듯 다른 사람과 함께 걷고 있었다. 그 걸음의 방향은 나의 것이 아니었다. 결국 나는 방향도 목적지도 잊어버리고 남들과 함께 정해진 길로 바쁘게 뛰고 있었다.

나의 방향을 찾으려면 나는 아마 처음부터 걸어온 길을 되돌아서 걸어가야 할 것이다. 남들보다 뒤쳐져서 힘들다고 울기도 하겠지만 그 길은 오직 나의 것이 될 것이다. 느리고 간혹 사람 속을 빠져나와 걷는 걸음이라 심심도 하겠지만 이 나이가 아니면 그것조차 할 수 없을 것 같다. 나는 나의 걸음을 시작하려고 한다. 두려움보다 설레임이 생기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아마 그것은 나에게 소중한 것들 속에는 언제나 내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한때 빨리 사라지고 싶었다. 나의 이십대는 삼십대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때도 지금도 나는 힘들다. 나를 힘들게 하는 대상만 바뀌었을 뿐 달라진 것은 없다. 내 성격에 문제가 있어 행복을 모르고 즐거움을 모르고 사는 것인지, 아니면 욕심이 너무 많아서 채워지지 않은 부족함으로 느끼는 불행인지 늘 자문했다.

하지만 내 결론은 욕심이 있어서도 아니고 성격도 아니었다. 나의 불행의 시작은 모든 일의 결과에 대해 내 탓을 하는 버릇 때문이었다. 너나 타인의 잘못이 아니라 오로지 나의 잘못으로 탓하면서 나를 벼랑으로 밀었다. 나의 불행도 나의 외로움도 나의 지친 그리움도 모두 나의 탓이었다. 모든 비난으로 나를 가두었다. 나의 몸으로 이겨낼 수 있는 용량은 제한되어 있는데 아직도 나는 나를 몰아세우고 있다. 나의 탓으로 생긴 버릇들은 작은 사소한 소중한 것들을 음미할 시간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이제는 나를 중심에 세우고 나를 비난하지 않을 것이다. 나의 행복을 위해 살 것이고 그것에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 계획 없이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나의 건강이 가능한대로 내 마음이 가고자 하는 길을 따라서 천천히 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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