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 톺아보기 (8) - 김홍륙 독다사건(毒茶事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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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톺아보기 (8) - 김홍륙 독다사건(毒茶事件)
  • 김세곤 칼럼니스트
  • 승인 2021.03.15 08: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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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8년 9월 11일, 「김홍륙 독다사건(金鴻陸毒茶事件)」이 터졌다. 고종과 황태자는 저녁 식사를 양식으로 먹은 뒤 커피를 마셨다. 아관파천 시절부터 커피를 좋아한 고종은 커피 냄새가 이상하다고 생각하여 한 모금 입에 넣자마자 뱉었다. 그런데 황태자(후에 순종)는 그냥 몇 모금 마셨다. 조금 있다가 황태자가 토하고 쓰러졌다. 궁중이 아수라장이 되었다.

9월 13일 자 「독립신문」은 이 날의 사건을 자세히 전했다.

“그저께 밤에 카피차를 황태자 전하께서 많이 진어하신 후 곧 피를 토하시고 정신이 혼미하사 ... 황상 폐하께서는 조금 진어하신 후 토하시고 근시 김한종, 김서태와 엄상궁이 퇴선을 맞본 후 김한종은 곧 호도하여 불성인사하매 업어내어 가고 하인 넷이 나머지를 먹고 또 병이 들었다 하니... 수라 맡은 사람들이 조심 아니한 것은 황송한 일이로다.”

(강준만 지음, 한국 근대사 산책 3, p 202)

9월 12일에 고종은 사건을 철저히 조사하도록 경무청에 지시했다.

이에 법부 대신 신기선이 9월 14일에 아뢰었다.

"방금 겸임 경무사(兼任 警務使) 민영기가 보고한 것을 보니, ‘죄인을 신문하는 즈음에 종신 유형(終身流刑) 죄인 김홍륙이 구초(口招)에서 나왔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김홍륙을 지금 잡아다 심문(審問)하여야 하는데, 특지(特旨)로 인한 유배죄인이므로 감히 제 마음대로 할 수 없기에 삼가 아룁니다."

이러자 고종은 제칙(制勅)을 내려 "잡아다 심문하라."하였다. (고종실록 1898년 9월 14일)

김홍륙은 함경도 사람으로 조실부모하고 떠돌다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어부 생활을 하면서 러시아어를 익혔다. (윤효정 지음 · 박광희 편역, 대한제국아 망해라, 다산북스, 2010, p 328)

김홍륙은 1895년에 이범진이 러시아 공사 베베르와 조로통상조약(朝露通商條約)을 체결할 때 러시아 통역관이 되어 출세의 기회를 잡았다. 그는 1896년 아관파천 시절에는 비서원 승(祕書院 丞)으로 근무하면서 고종의 전담 통역관이 되었다.

이리하여 김홍륙은 1896년 11월 15일에 학부협판(차관)으로 승진하였고, 1897년 2월 28일에 고종은 특별히 정2품으로 품계를 올려주었다. 그는 1897년 12월 18일에는 귀족원 경(貴族院 卿)에 임용되었다.

만민공동회가 종로에서 개최된 1898년 3월 10일 다음 날인 3월 11일에 고종은 김홍륙을 한성부 판윤(지금의 서울특별시장)에 임용했다. 같은 날 독립협회 회장인 이완용은 전라북도 관찰사로 발령받았다.

그런데 김홍륙은 고종의 총애와 러시아의 세력을 배경으로 권력을 남용하고 뇌물을 탐하여 비난을 받았다. 심지어 그를 규탄하는 방서(榜書)가 나붙기도 하였다.

8월 23일에 고종은 김홍륙이 탐오한 것을 추궁하여 유배하라고 명했다.

“조령(詔令)을 내렸다.

‘정2품 김홍륙은 말로써 일찍이 약간의 공로를 세웠기에 조정에서 그 벼슬을 높여주고 그 봉급을 후하게 한 것은 대체로 염치를 기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교활한 성품으로 속임수가 버릇이 되어 공무(公務)를 빙자하여 사욕을 채우는 데에 온갖 짓을 다했으니, 백성들의 마음에 울분이 오래도록 그치지 않고 있다. 이처럼 재직 중에 탐묵(貪墨)한 자는 규례대로 판결하는 것만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법부로 하여금 의율(擬律)하여 유배하게 하라.’” (고종실록 1898년 8월 23일)

8월 25일에 고종은 김홍륙을 흑산도에 귀양보냈다.

“법부대신 신기선이, ‘삼가 조칙(詔勅)을 받들고 죄인 김홍륙을 《대전회통(大典會通)》 〈금제조(禁制條)〉의 저 사람을 빙자하여 둘 사이에서 뇌물을 받아먹은 자는 사형을 감하여 정배(定配)한다는 율문에 따라 태(笞) 100대를 쳐서 종신 유형(流刑)을 보내되, 배소(配所)는 전라도 지도군(智島郡) 흑산도(黑山島)로 마련하겠습니다.’라고 상주(上奏)하니, 윤허하였다.”

그런데 김홍륙은 흑산도로 떠나는 날에 고종 독살 음모를 하였다.

“김홍륙은 유배지로 떠나는 길에 잠시 김광식의 집에 머물렀다. 그는 주머니에서 한 냥의 아편을 찾아내어 고종에게 음식을 올리는 전선사(典膳司)의 책임자 공홍식에게 주면서 수라상에 섞어서 올릴 것을 은밀히 사주하였다.

이후 공홍식이 김종화를 만나서 김홍륙에게 사주받은 내용을 자세히 말하고 이 약물(藥物)을 고종에게 올리는 차(커피)에 섞어서 올리면 은(銀)1,000원(元)을 주겠다고 말했다.

김종화는 일찍이 경운궁 보현당 고직(普賢堂 庫直 창고지기)으로서 서양 요리를 만들었는데, 요리를 잘하지 못하여 내쫓긴 자였다.

김종화는 즉시 아편을 소매 속에 넣고 주방에 들어가 커피 찻주전자에 넣어 끝내 진어(進御)하게 되었다.”  (고종실록 1898년 9월 12일 2번째 기사)

덕수궁 준명당 (고종의 편전) (사진=김세곤)
덕수궁 준명당 (고종의 편전) (사진=김세곤)
즉조당 일원 안내판 (사진=김세곤)
즉조당 일원 안내판 (사진=김세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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