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 톺아보기 (9) - 중추원 의관(議官) 서상우 등 34명, 연좌(連坐)와 노륙(孥戮)법 부활을 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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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톺아보기 (9) - 중추원 의관(議官) 서상우 등 34명, 연좌(連坐)와 노륙(孥戮)법 부활을 꾀하다.
  • 김세곤 칼럼니스트
  • 승인 2021.03.19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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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륙 독다사건(毒茶事件)이 일어난 지 1주일이 지난 1898년 9월 18일에 현학표 등은 역적을 엄중히 다스리도록 연좌(連坐)와 노륙(孥戮)법을 부활하라고 상소하였다. 9월 19일에 장례원 주사 황의철도 역적들을 거리에서 공개 처형하라고 상소했다.

이러자 고종은 "새로 정한 법률을 고치고 옛날의 법률을 따르자는 말을 어쩌면 그리도 쉽게 하는가?”라고 비답하였다.

연좌제(緣坐制)는 죄인뿐만 아니라 그 아내와 아들 그리고 친족까지도 연대적으로 처벌하는 제도이고, 노륙법은 죄인의 아내와 아들도 참형을 적용시키는 법으로 이 법들은 이미 갑오개혁 때 폐지되었다. 아울러 저잣거리에서 공개 처형하던 악습도 갑오개혁 때 폐지되고 감옥에서 교형(絞刑)만 적용되고 있었다.

그런데 김홍륙 독살 사건을 계기로 이런 법들을 부활시키자는 주장이 잇따랐다.

9월 21일에 의관(議官) 조병식 등이 상소했다.

"방금 삼가 들으니, 폐하와 황태자가 동시에 몸이 편치 않았던 것이 실로 진찬(進饌)을 살피지 못한 데에서 연유한 것이라고 하니, 놀랍고 원통하여 저도 모르게 머리칼이 곤두서고 간담이 떨렸습니다. ...

난신적자라는 것을 안 이상 누구나 그를 죽일 수 있는 것쯤은 모두 알고 있습니다. 당여(黨與)는 한통속이기는 하나 자취를 드러내지 않고서 금수(禽獸)처럼 낮에 숨어 있다가 밤에 행동하기도 하고, 연줄을 맺어 서로 다니면서 서울과 지방에 두루 퍼져 있다가 기회를 타서 뜻을 실현하기도 하는데 마치 포위를 뚫고 달아나는 토끼와도 같아 사람들이 막을 수 없습니다. 그동안 발생한 각종 옥사(獄事)는 본래 형태만 바뀐 것으로, 그 근원을 캐보면 모두 을미년(1895년) 8월(민왕후 시해사건)의 남은 잔당으로 인한 것입니다. 따라서 을미년 8월의 흉도(凶徒)들에 대해 노륙(孥戮)의 형전을 행하여 재앙의 싹을 끊어 버리소서.”

고종이 비답하였다.

“대궐을 엄숙히 하는 데 대해 어찌 경들의 말을 기다리겠는가? 죄인들은 잡는 대로 응당 법대로 처형하겠다.”

(고종실록 1898년 9월 21일 1번째 기사)

이날 유학(幼學) 유치원도 형벌을 엄하게 할 것을 상소했다.

"삼가 들으니, 폐하의 체후가 갑자기 편안치 않으시고 황태자의 기후도 위험한 고비를 크게 겪었는데, 그 까닭은 실로 어공(御供)을 삼가하지 못한 데에서 말미암았다고 하니, 이 무슨 변고란 말입니까?

... 대체로 형장(刑章)이 엄하면 사람들이 범하는 것을 어렵게 여기고, 형장이 느슨하면 사람들이 범하는 것을 쉽게 여기니, 난적(亂賊)들의 화(禍)가 옛날에는 드물었는데 지금에 빈번한 것은 실로 형법을 경장(更張)할 때에 무거운 형벌을 버리고 가벼운 형벌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형벌을 잘못 적용하는 것이 한결같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어떤 변인들 나오지 않겠습니까? 지금 만약 끝까지 조사하고 엄격히 다스려서 그 근원을 뽑아 버리지 않는다면 그 흉악한 음모와 놀라운 기미가 또 조만간에 불쑥 튀어나오게 될 것이며, 갈수록 더욱 못하는 짓이 없게 될 것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엄히 밝혀내고 국문하여 다스려 그 족속들을 멸족시킴으로써 훗날의 폐단을 막고 조정의 기강을 엄숙하게 하소서."

이러자 고종이 비답하였다.

"여론이 격발한 상태이니, 마땅히 이런 논의가 있는 것은 마땅하다.“

(고종실록 1898년 9월 21일 2번째 기사)

한편 9월 23일에 의관(議官) 서상우 등이 중추원 회의에서 노륙법과 연좌법 부활을 주장하였다. 이에 법부대신겸 중추원 의장 신기선 이하 의관 34명이 동조하여 정부에 정식으로 요구했다. 9월 24일에는 서상우를 소두(疏頭)로 하여 상소까지 하였다.

"갑오경장 이후로 형법이 너무 관대해져서 사형은 교형(絞刑)에 처하는 데 그치고 노륙(孥戮)의 형전도 반역의 무리들에게 시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속히 정부에서 이 형전을 즉시 시행하도록 하소서”

(고종실록 1898년 9월 24일)

그런데 경무사 민영기는 이 사건으로 체포된 부녀자와 무고한 사람들까지 무참히 고문하였다. 고문을 받던 공홍식은 자살을 시도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러자 독립협회가 반발하고 나섰다. 비록 김홍륙 같은 역적이라도 법률에 의해 처벌되어야 하고 고문도 용납될 수 없으며, 연좌와 노륙법 부활은 절대 불가라고 주장하였다.

운현궁의 대한제국 연대표 (김홍륙 독다 사건 명시) (사진=김세곤)
운현궁의 대한제국 연대표 (김홍륙 독다 사건 명시) (사진=김세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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