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 톺아보기 (10) - 독립협회, 노륙법과 연좌법 부활을 반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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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톺아보기 (10) - 독립협회, 노륙법과 연좌법 부활을 반대하다.
  • 김세곤 칼럼니스트
  • 승인 2021.03.23 10: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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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8년 9월 25일에 독립협회는 반역사건을 규탄하고 사건의 철저한 조사를 촉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죄인에 대한 고문과 이미 폐지된 노륙법과 연좌법의 부활 반대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정하였다.

9월 26일에 독립협회는 법부대신 겸 중추원 의장 신기선에게 공한을 보내 의장과 서명한 의관의 사직을 요구하였다. 9월 27일에 신기선은 갑오개혁 이후 역적을 다루는 데 교수형만 적용시키니 역변(逆變)이 그치지 않아 노륙법을 부활시키지 않을 수 없고, 또 대신의 진퇴는 협회가 말할 바가 못 된다고 답신하였다.

10월 2일에 독립협회는 중추원 앞에서 민중대회를 열고 대표를 뽑아 신기선에게 보내 노륙법과 연좌법 부활의 부당성을 논하고 그의 사직을 권고하였다. 신기선이 불응하는 태도를 보이자 독립협회는 신기선을 고등재판소에 고발하였다.

고등재판소에서 고발장을 접수하자 협회에 대답하되 법부대신과 협판은 칙임관(勅任官)이므로 그의 구금에는 먼저 법부대신이 황제에게 상주한 후에야 구금할 수 있는데 법부대신 신기선 자신이 피고이므로 상주할 사람이 없어 기술적으로 이를 처리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10월 6일에 독립협회는 고등재판소 앞에서 다시 민중대회를 열어 황제에게 상소하기로 결의하였다.

이 날 의정부 의정 심순택이 고종에게 아뢰었다.

"범죄자를 감금하는 것은 얼마나 신중하고 엄격히 해야 하는 일입니까? 그런데 고등재판소에 구금한 사람 가운데 칼에 상처 입은 자가 1명 있다 하니 듣기에 놀랍기 그지없습니다. 법부대신 신기선을 면직(免職)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이에 고종은 제칙(制勅)을 내렸다.

"마땅히 아뢴 대로 해야 하겠지만, 옥사(獄事)가 한창 진행 중이므로 일에 서투른 사람에게 맡기기가 어렵다. 특별히 용서하고 한 달분 녹봉을 감하라." (고종실록 1898년 10월 6일)

고종은 법부 대신 신기선에게 1개월 감봉이라는 가벼운 조치만 내리자, 독립협회는 그냥 물러서지 않았다.

10월 7일에 독립협회는 경운궁 인화문 앞에서 거듭 상소를 올렸다.

이날 의관(議官) 윤치호 등이 올린 상소를 살펴보자.

"이번 선소(膳所)의 변고는 실로 만고에 없었던 일입니다. ...뜻하지 않게 갇혀 있던 공홍식이 갑자기 칼에 맞아 상해를 입었습니다. 이것은 바로 법을 맡은 신기선과 이인우가 감금(監禁)을 신중히 하지 않은 죄입니다.

의정(議政) 심순택과 참정(參政) 윤용선으로 말하면 영의정이며 좌의정인데, 신들의 질문에 대해 대답한 것을 보면 그 하나는 ‘갇혀 있는 공홍식이 칼에 상해를 입은 것이 자신이 찌른 것인지 남에게 찔린 것인지 자세하지 않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갇혀 있는 공홍식이 상해를 입은 것이 자신이 그렇게 한 것인지 다른 사람에 의하여 그렇게 된 것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하였습니다.

대체로 칼에 상해를 입은 지 이미 여러 날이 지나갔는데 어째서 일찍이 법을 맡은 관리를 꾸짖음으로써 징벌을 보이지 않는 것입니까?

처음에는 모르는 척 하다가 여론이 격렬하게 일어나자 자세하지 않다느니 구분이 가지 않다느니 핑계를 대는데, 이것은 바로 법을 맡은 신하의 죄를 비호해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궁내부 대신 이재순, 군부 대신 심상훈, 탁지부 대신 민영기로 말한다면, 그날 밤 차를 올릴 때에 환관(宦官)과 궁첩(宮妾)들은 놀라움과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여 앞을 다투어 맛을 보고 중독된 자가 10여 명이나 되었습니다. 이 세 대신은 임금을 지척에서 모시고 있었으니, 마땅히 재빨리 대처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차의 맛을 본 여부에 대해서 듣지 못하였으니, 대신이 부녀자와 환관들만 못하단 말입니까?

... 삼가 바라건대, 폐하께서는 해당 형률을 속히 시행하시어 국법을 바로잡으소서.

이어 삼가 생각건대, 개국(開國) 503년 7월 9일에 승인하여 실시한 의안(議案)과 같은 해 12월 12일에 종묘(宗廟)에 고하고 천하에 공포한 홍범(洪範) 14조(條)는 이야말로 나라를 중흥시키는 법입니다.

그런데 오늘 이 의관들은 제멋대로 상소를 올려 잔인하기 그지없는 옛 법을 회복하여 폐하로 하여금 여러 나라들에게 망신을 당하게 만들었으니 의당 크게 징벌을 내려야 할 것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모두 내쫓음으로써 조정의 기강을 엄숙하게 하소서."

이러자 고종이 비답하였다.

"죄수가 칼에 상해를 입은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러므로 법을 맡은 신하에 대해서는 이미 의정부의 보고와 관련하여 경계를 보였다. 그 밖의 여러 사람들에 대해서는 마땅히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람들이니 공연히 의심을 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고 법률은 조정에서 당시의 요구와 관련하여 알맞게 제정한 것이므로 아래에서 제멋대로 논의할 것이 아니다." (고종실록 1898년 10월 7일)

고종은 도리어 독립협회를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법부와 중추원을 두둔하였다. 이에 독립협회는 더욱 강경해졌다. 이들은 법부대신 신기선, 이재순 · 민영기 등 일곱 대신의 파면 운동을 전개하였다.

덕수궁 중화전 (사진=김세곤)
덕수궁 중화전 (사진=김세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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