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8년 10월 11일에 독립협회는 경운궁 앞에서 농성을 계속했다. 종로 시전 상인들도 모두 철시하고 농성에 가담하였다. 농성 중인 윤치호는 상소하여 심순택, 신기선, 민영기 등 일곱 대신의 파면을 거듭 촉구했다.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니, 근본이 견고해야 나라가 편안한 법입니다. 그런데 근본이 견고하지 못하며 나라가 편안하지 못하게 된 것은 첫째도 일곱 신하들의 죄이고 둘째도 일곱 신하들의 죄입니다.

폐하께서는 어째서 보잘것없는 일곱 신하들은 아끼면서 삼천리의 큰 영토와 2,000만 백성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까?

... 저 일곱 신하들은 녹을 탐내고 영화에 연연해하면서 뻔뻔스럽게도 부끄러워함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뭇사람들의 비방이 쏠리어도 못 들은 척하였고 규탄하는 글이 날마다 날아들어도 못 본 체하였습니다.

... 더구나 요즘 경장(更張)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백성들의 마음이 안정되지 못하고 외교가 미덥지 못하여 일의 틈만 찾고 있는 까닭에 나라의 위태로운 형세가 위기일발의 순간에 놓인 때이겠습니까? 어찌하여 용렬한 사공으로 하여금 망가진 삿대만을 가지고 우선 계책을 생각해 보게 하고 그 기술이 숙련되기를 천천히 기다렸다가 구원하도록 하십니까? "

이러자 고종이 비답하였다.

"이미 앞서 비답을 내렸는데 아직도 물러가지 않으니, 이 무슨 도리인가? 임금의 생각은 기다리지도 않고 단지 독촉만을 일삼으며 궁궐을 지척에 두고 제멋대로 떠들어대니, 백성들의 습속이 이 지경에 이른 것에 대해서는 차라리 말하고 싶지 않다. 잘 알았으니 물러가라."

고종은 독립협회의 집단농성에 불쾌감이 역력하다.

이러자 9월 23일에 의정부 의정(議政)에 임명된 심순택이 상소를 올려 사직할 것을 청했다.

"의정(議政)에 제수하시는 새로운 어명을 천만뜻밖에 갑자기 내리셨는데, 이때 마침 공무를 처리하는 중이어서 피할 길이 없는 상황이었기에 태연히 조칙을 받고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독립협회의 여러 사람들이 신의 죄에 대하여 여지없이 성토할 줄이야 어찌 생각이나 하였겠습니까?

신이 뻔뻔스럽게 벼슬자리를 차지한다는 것은 오늘 논할 계제가 아닙니다. ... 삼가 바라건대, 성상께서는 신의 직임을 속히 체차하심으로써 여론을 진정시키소서. "

이에 고종이 비답하였다.

"경의 오늘의 이 행동은 무슨 일이란 말인가? ... 경의 행차가 이미 멀리 가버려 따라 잡을 수 없게 되었으니 얼마나 짐의 섭섭한가? 사직한 직임에 대해서는 마지못해 수리한다. 날씨가 추워지기 전에 다시 조정에 돌아와 간절히 기다리는 짐의 기대에 부응하라."(고종실록 1898년 10월 11일 5번째 기사)

다음날인 12일에 고종은 윤치호를 중하게 견책하도록 명령했다.

“조령(詔令)을 내렸다.

‘상소문을 가지고 나와 엎드렸던 만큼 그에 대한 비답을 받았으면 마땅히 곧 물러가야 할 것인데 궁궐 문을 지척에 두고 예사로이 모임을 열다니 이 이상 더 놀라운 일은 없을 것이다. 더구나 여러 차례에 걸쳐 명령을 내렸는데도 줄곧 명령에 항거하기만 하니, 이게 무슨 사체이며 이게 무슨 도리인가? 소두(疏頭) 윤치호를 우선 중하게 견책(譴責)하고 내부(內部)에 분부하여 분명하게 타이른 다음 물리쳐 보내도록 하라.’”  (고종실록 1898년 10월 12일 1번째 기사)

하지만 이 날은 소학교(초등학교) 학생들까지 참여하여 농성 참가자는 1만 여명으로 늘어났다. 경성 백성들이 들고 일어난 것이다.

궁지에 몰린 고종은 의정부 찬정(贊政) 박정양을 의정부 의정 서리로, 조병호를 탁지부 대신으로, 민영환을 군부 대신으로 임용하였다. (고종실록 1898년 10월 12일 2번째 기사)

결국 심순택, 신기선등 일곱 대신이 파면되고 박정양, 민영환 등 개혁파 인사들이 대신으로 임명되었다. 노륙법과 연좌법 부활 기도도 사라졌다.

10월12일 저녁에 독립협회 회원들과 시민들은 만세를 부르면서 해산했다.

이 결과에 대해 주한미국공사 알렌은 ‘평화적 혁명이 이루어졌다’고 미국 국무부에 보고했다.

 

< 참고문헌 >

o 김태웅 · 김대호 지음, 한국 근대사를 꿰뚫는 질문 29, 아르테, 2019 p 237-239

o 손세일 지음, 이승만과 김구 1부 1편, 나남, 2008, p 378-382

o 국사편찬위원회 편찬, 한국사 41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탐구당, 2003

서대문 독립공원 (사진=김세곤)
서대문 독립공원 (사진=김세곤)
서대문 독립공원 내 독립관 (사진=김세곤)
서대문 독립공원 내 독립관 (사진=김세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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