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8년 7월 17일에 “김종직의 제자를 모조리 추핵(推覈)하는 것이 어떠한가?”라고 말한 연산군은 대신들이 우려를 표명하자, "김종직의 제자를 끝까지 추궁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내가 그 사람됨을 알고자 하니, 모조리 써서 아뢰라."고 전교하였다.

이에 윤필상 등이 아뢰었다.

"김종직의 제자는 이미 김일손의 사초에 모두 기록되어 일찍이 대내(大內 내전)로 들어갔습니다."

이러자 연산군이 전교하였다.

"그 사초에 기록된 김종직의 제자 신종호 등 약간 명도 모두 김일손처럼 수업을 하였느냐, 그렇지 않는 자도 있느냐? 또 김일손의 말에 ‘나머지 사람도 오히려 많다.’ 하였는데 누군가 물어보라."

윤필상 등이 김일손에게 물으니 김일손이 대답하였다.

"신종호는 김종직이 서울에 있을 적에 수업하였고, 조위는 김종직의 처남으로서 젊어서부터 수업하였고, 채수·김전·최부·신용개·권경유·이계맹·이주·이원은 제술(製述)로 과차(科次 과거 급제자 중 성적 우수자)를 받았고, 정석견·김심·김흔·표연말·유호인·정여창도 역시 수업하였는데 어느 세월에 수업했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이창신은 홍문관 교리가 되었을 적에 종직이 홍문관 응교(應敎)로 있었는데, 이창신이 《사기(史記)》의 의심난 곳을 질문하였으며,

강백진은 김종직의 조카로서 젊었을 적부터 수업하였고, 유순정은 한유(韓愈)의 글을 배웠고, 권오복은 김종직이 동지성균(同知成均) 시절에 관에 거접하였고, 박한주는 경상도 유생으로서 수업하였고, 김굉필은 김종직이 상(喪)을 만났을 때에 수업했습니다.

그 나머지도 오히려 많다고 한것은, 이승언·곽승화·장자건 등입니다." (연산군일기 1498년 7월 17일 6번째 기사)

이윽고 연산군은 실록청(實錄廳)에서 올려온 사초(史草)를 내보이니, 바로 권경유가 기록한 것이었다.

그 사초에 이르기를,

"김종직이 일찍이 조의제문을 지었는데, 충의(忠義)가 분발(憤發)하여 보는 사람이 눈물을 흘렸다. 그 문장은 여사(餘事 그다지 꼭 필요하지 않다)였다.(文章特其餘事耳) "

연산군은 "이 무리들의 기롱과 논평이 이 지경에 이르고 있으니, 무릇 제자라 하는 자는 모조리 구금하여 국문하는 것이 어떠하냐?" 고 전교하였다.

이러자 윤필상이 연산군의 하교가 지당하다고 아뢰었다.

이어서 노사신·한치형이 아뢰었다.

"그 수업했다 이르는 자도 만약 김종직의 평소 지론(之論)을 들었다면 구금하여 국문하는 것이 또한 가하겠으나, 제술에서 과차(科次)만 받은 자는 분간하는 것이 어떠하옵니까?"

하고, 드디어 김일손이 써낸 수업하고 과차한 제자들의 명단을 올렸다.

이에 연산군이 전교하였다.

"권경유는 단지 과차인데도 그 사초가 이러하니, 비록 과차만 한 자에 있어서도 역시 국문하지 않을 수 없소. 나는 사예(邪穢 사악하고 더러움)를 깨끗이 씻을 작정이니, 경 등도 이 뜻을 알아주오."

윤필상 등이 모두 성상의 하교가 지당하다고 아뢰었다.

이러자 모두 마침내 잡아 가두었다. (연산군일기 1498년 7월 17일 7번째 기사)

권경유(?∽1498)는 1485년에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예문관검열과 홍문관 정자를 거쳐, 1490년에는 호당(湖堂)에서 사가독서(賜暇讀書)하였다. 여러 차례 천거되어 교리에 이르렀으며, 1495년(연산군 1)에는 외직을 청하여 제천현감이 되었다. 그는 성종 때 김일손과 함께 사관(史官)으로 있으면서 스승 김종직의 ‘조의제문’을 사초(史草)에 실었는데, 이것이 문제가 된 것이다.

아울러 연산군은 김종직의 제자 이주(李胄)를 문초할 것을 전교하였다.

"이주도 역시 김종직의 제자다. 그가 간관(諫官)이 되었을 적에 일찍이 ‘성종은 나의 임금이온데 장차 어떻게 성종을 지하에서 뵈오리까.’ 하였으니, 그도 아울러 문초하도록 하라." (연산군일기 1498년 7월 17일 8번째 기사)

이주(1468~1504)는 1488년(성종 19) 별시 문과에 급제한 뒤 예문관검열을 하고 1495년 8월 9일에 사간원 정언에 임명되었다. 그는 정언으로 있을 때 직언을 잘한 것으로 유명했는데, 이주는 1495년 11월 23일에 헌납 김일손·정언 한훈과 함께 수륙재 금지를 청하기도 하였다.(연산군일기 1495년 11월 23일)

연산군 묘 (사진=김세곤)
연산군 묘 (사진=김세곤)
연산군 묘 입구 (사진=김세곤)
연산군 묘 입구 (사진=김세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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