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3년 3월 중순에 2만 명의 동학교도들은 충청도 보은에서 모여 척왜양(斥倭洋)과 부패한 수령의 척결을 외쳤다. 이러자 조정에선 위기감이 고조되었다. 3월 19일에 고종은 조병식을 충청도 관찰사에서 파직하고, 후임으로 조병호를 발령냈다. 이어서 고종은 선무사로 어윤중을 파견하였다.

3월 25일에 고종은 삼정승과 보은 집회 관련 대책 회의를 하였다.

영의정 심순택 : "연이어 올라오는 전라도와 충청도 감사의 보고와, 충청감사 조병식과 병사 이용복의 장계를 보니 허망한 무리들이 날로 더욱 무리를 불러 모아 전라도와 충청도에 깃발을 세우고 서로 호응하고 있는데, 그들의 자취가 매우 헤아릴 수 없으므로 결코 타일러서 귀화시킬 수 없는 자들입니다. 다시 통지하여 며칠 이내로 해산시키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고종 : "이것은 틀림없이 어리석고 지각이 없는 백성들이 완강하여 법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아서 그런 것이니, 참으로 매우 통탄할 일이다.

같은 패거리들을 끌어들여 무리를 모으고 있으니, 그 의도가 어디에 있겠는가?

지난번에 이 무리들이 상소를 올린다고 할 때에 즉시 엄하게 징계하였으면 혹 오늘날같이 창궐하는 폐단은 없지 않았겠는가?"

심순택 : "이 무리들이 패거리를 모아 한 곳에 웅거하고 여러 날이 지나도록 흩어지지 않고 있으니, 지극히 통탄스럽습니다."

좌의정 조병세 : "지난번에 설사 엄하게 징계하였다고 하더라도 이 무리들은 반드시 오늘날처럼 패거리들을 불러 모았을 것입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관리들이 탐오한 짓을 자행하여 그 침해와 학대를 견디지 못해서 그런 것입니다."

우의정 정범조 : “소란을 일으킨 근본은 탐욕스러운 관리들에 있습니다.”

조병세 : "지금 나랏일이 날로 나빠지고 시국에 대한 걱정이 날로 심해지는데, 더구나 또 전라도와 충청도에 요망한 무리들이 모여서 흩어지지 않고 있으니, 그 행적을 헤아릴 수 없습니다. 남쪽에서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갈수록 소요가 더욱 커지고 있다고 하는데, 그럭저럭 시일을 끌어가며 아무런 계책도 세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각 수령들이 탐오하는 기풍만 성행한 데 있습니다. 수령들이 자기 한 사람의 욕심만 채우니 나라에 해독을 끼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도 해당 도의 감사는 단속도 하지 않고 나라는 나라 구실을 못하고 있으니 조정의 걱정이 태산같습니다.

또한 지금의 완급(緩急)에 대해 믿을 바는 실로 경기, 충청도, 전라도 수령들에게 있으나, 이들은 백성에게서 수모를 받고 원망을 사고 있습니다.

지금에 와서 이 수령들을 설사 깨우쳐 주고 신칙하려고 한다 하여도 마음과 뜻이 서로 통하지 않을 것이고 설사 방지하려고 하여도 호령이 시행되지 않을 것입니다. 마땅히 하루빨리 새로운 이를 파견하고 부패 관리는 법으로 다스려야 할 것입니다.”

고종 : "백성을 사랑하려면 반드시 먼저 탐오하는 자들을 징계해야 한다고 아뢴 바가 절실하니, 엄하게 신칙하는 것이 좋겠다."

정범조 : "지금 서북 지방에서 백성들의 소요가 그치지 않고 호남에서 불순한 무리들이 계속 일어나 그 세력이 서울 부근에서 멀지 않은 곳까지 와서 모였으니, 도로는 계속 소란하고 민심은 흉흉합니다.

대체로 나라에서 믿는 것은 백성인데, 민심이 한 번 동요하면 나라가 장차 무엇을 믿겠습니까? 나라의 위급한 존망(存亡)이 당장 눈앞에 닥쳤으니, 이는 바로 임금과 신하,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조심하고 걱정하며 밤낮으로 대책을 강구할 때입니다.

그 근원을 따져보면 탐오를 자행하고 거두어들이는 것에 절도가 없어, 백성들을 생업에 안착할 수 없게 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우리 왕조에서 500년 동안 가르쳐주며 키운 백성들이 하루아침에 소요를 일으켜 어찌 이 지경에 이르겠습니까?

나라가 나라 구실을 하는 것은 법과 기강에 달려 있는데, 법과 기강이 이와 같으니 나라가 어떻게 나라 구실을 하겠습니까?

법은 저절로 서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사람에 의해 시행되기 때문에 나라를 운영함에 있어서는 수령을 신중히 잘 고르는 것보다 우선하는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근래에는 관리 추천이 너무나 문란합니다. 수령을 잘 선발하되 이전의 업적이 어떤가를 조사하고 가짜 벼슬이 뒤섞이는 것을 막아서, 모든 관리와 여러 아전들로 하여금 정신을 가다듬고 명을 받들어 시행하는 데 전력을 다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고종 : “진달한 바가 이토록 간절한데 어찌 마음에 새겨두지 않겠는가? 기강을 세우는 것은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함께 힘을 써야 할 문제가 아니겠는가?” (고종실록 1893년 3월 25일 1번째 기사)

 

덕수궁 대한문 (사진=김세곤)
덕수궁 대한문 (사진=김세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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