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 톺아보기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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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톺아보기 (20)
  • 김세곤 칼럼니스트
  • 승인 2021.05.10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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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8년 11월 4일 박정양 내각은 독립협회에 공문을 보내어 5일까지 25명의 중추원 의관을 선출하여 명단을 보내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독립협회는 11월 5일에 독립관에서 중추원 민선의관 선거를 실시한다고 공고하였다.

그런데 11월 4일 밤에 ‘익명서(匿名書)’가 서울 광화문과 시내 곳곳에 게시되었다. ‘익명서’에는 ‘독립협회의 의회설립 목적은 황제를 몰아낸 후, 대통령 박정양 · 부통령 윤치호 · 내부대신 이상재 등을 내세워 공화제 국가를 만들려는 것’이라고 적혀있었다. 이는 의정부 찬정 조병식, 군부대신 서리 유기환, 법부협판 이기동 등이 꾸민 ‘익명서 조작’ 내지 ‘가짜뉴스’였다.

그런데 조병식 등은 고종에게 ‘익명서’를 보이면서, 독립협회가 황권을 폐하고 공화제 국가를 만들려고 한다고 무고했다. ‘익명서’를 읽은 고종은 즉각 독립협회를 해산시킴과 동시에 독립협회 간부 20명의 체포령을 내렸다. 아울러 고종은 ‘헌의 6조’에 서명한 박정양 등을 파면시키는 동시에 친러수구파인 조병식을 의정부 참정 겸 법부대신 임시서리로, 민종묵을 외부대신 겸 내부대신 임시서리로, 박제순을 농상공부대신으로, 김정근을 경무사로 임명했다.

조병식과 김정근은 11월 4일 밤중부터 11월 5일 새벽에 이르기까지 이상재(독립협회 부회장), 정교, 남궁억, 이건호 등 독립협회 간부 17명을 체포했다. 다행히 독립협회 회장 윤치호와 최정덕, 안영수는 체포당하기 직전에 도피하였다.

아펜젤러 집으로 피신한 윤치호는 자신의 일기에 고종 황제에 대한 배신감과 러시아·일본의 배후세력 흉계를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오늘의 관보는 독립협회의 해산과 헌의 6조에 서명한 대신들을 해임시킨 칙령을 공포했다. 이것이 국왕이라니! 거짓말을 능사로 하는 배신적인 어떤 비겁자라도 대한의 대황제보다 더 천박한 일을 하지 못할 것이다. 이제 정부는 친일 노예 유기환과 친러 노비 조병식의 수중에 있다. 러시아인들과 일본인들이 이 사건에 개입해서 의심할 여지 없이 모종의 알짜 이권을 위하여 그들의 노예를 지원하고 있다.

저주받을 왜놈들! 그들이 대한의 마지막 희망인 독립협회를 분쇄시키는 데 러시아인들을 돕고 있는 이유를 알게 될 것을 나는 참으로 희망한다” (윤치호, 윤치호 일기, 1898년 11월 5일)

실제로 일본공사 대리는 ‘대한제국 황제가 독립협회 해산에 사전 동의했다’고 일본 외무성에 보고하였다.

청천벽력처럼 서울 시민들은 독립협회 지도자들이 경무청에 체포되었고, 독립협회가 강제 해산되었으며, 박정양 내각이 붕괴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서울 시민들과 독립협회 회원들은 동요했고, 맨 먼저 배재학당 학생들이 경무청 문 앞에 도착하여 항의 시위를 하였다. 이어서 영어학교와 일어학교 학생들도 경무청 앞으로 밀려왔고, 뒤이어 독립협회의 회원과 시민들 그리고 황국중앙총상회 회원들과 한국 최초의 여성단체인 찬양회(贊襄會) 회원들도 합류하였다.

11월 5일 오전, 경무청 문 앞에는 삽시간에 수천 명의 시민이 운집하였고 자연스럽게 만민공동회가 개최되었다.

만민공동회에서 시민들은 임병길 등 5명을 총대 위원으로 선출하여 경무사 김정근에게 독립협회 지도자 체포를 항의하고 사건 경위의 해명을 요구하였다. 시민들은 분개해서 다투어 연설을 한 다음 ‘체포와 투옥을 자원’하기로 결의하고, 체포당한 독립협회 지도자들과 함께 자기들도 체포해 달라고 다투어 요구하였다. 경무사는 당황하여 시민들은 체포대상자 명단에 없으므로 체포할 수 없으니 해산해 줄 것을 종용하였다.

그러나 군중들은 해산하지 않았고, 오후에는 그 수가 더욱 증가하였다. 종로의 시전상인들도 철시하여 황제와 수구파 내각의 처사에 항의하였다.

수구파 내각은 경찰 무력으로 시민을 해산시키고자, 순검을 내보내어 칼을 뽑아서 시민을 위협했다. 그런데 시민들이 일제히 달려들었으므로 순검들이 놀래서 경무청 안으로 도망하여 들어왔다.

경무청 문 앞에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자, 수구파 내각은 다급하여 시민들을 설득시켜 해산시키고자 하였다. 그러나 시민들은 완강히 해산을 거절하고 모닥불을 피워 놓고 철야농성을 시작하였다.

밤은 깊어 가는데 곳곳에 핀 모닥불의 화광이 일대를 대낮같이 밝힌속에서, 만민공동회를 연 서울 시민들은 ‘독립협회 회원 석방’ 아니면 ‘자원취수’해 줄 것을 소리 맞춰 외쳤다.

서울의 외국인들도 낮부터 나와서 이 광경을 지켜보면서 국민들의 애국적 의기에 감탄을 금치 못하였다.

이날 밤 만민공동회에는 각 곳에서 의연금과 의연물이 답지하였다. 예컨대, 이름을 밝히지 않은 어떤 사람은 장국밥 3백 그릇을 보냈고, 시민과 상인들이 은화를 보내어 온 것은 다 셀 수 없으며, 외국인들까지도 성원을 보내어 왔다.

만민공동회에 참가한 시민들은 이 날 밤 일치단결하여 경무청 문 앞에서 밤을 세웠다.

< 참고문헌 >

o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41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탐구당, 2003, p 387-393

덕수궁 대한문 (사진=김세곤)
덕수궁 대한문 (사진=김세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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