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영춘 진주상공회의소 회장

진주에 기부문화를 활성화시키고 싶다
내가 먼저 실천해 기부 솔선수범 하겠다
조규일 진주시장 기업마인드 긍정적
상의 건의내용들 즉각 정책반영 해

1997년 삼성항공 퇴직하고 장생도라지 맡아
매출 4천만 원을 100억 원 까지 성장시켜
장생도라지, 동건환경 등 4개 기업 거느려

주변에서 정계 진출 권유 많이 받아
정치는 맞지 않아 상의회장이 마지막 직책

[한국농어촌방송/경남=황인태 대기자] 이영춘(62) 진주상공회의소 회장은 회사원에서 성공적으로 가업을 승계한 사례에 속한다. 학교마치고 회사 직원 생활 20년, 가업승계 해 회사경영 23년을 했다. 그리고는 서부경남을 경제계를 대표하는 제24대 진주상공회의소 회장직에 올랐다.

이번 진주상공회의소 회장 선거는 치열했다. 이같이 치열한 선거전의 여운이 채 가시지도 않았는데도 이 회장은 바쁘다. 연일 회원사들의 고충사항을 들으러 다닌다. 직업이 기업경영인지, 상의회장인지 모를 정도로 상의 일에 몰두하고 있다.

이 회장은 요즈음 진주시와 대화가 잘 된다고 싱글벙글했다. “조규일 시장이 외부에서 보는 것과는 다릅니다. 합리적인 건의는 즉각 수용을 합니다.” 그런 사례가 있냐는 질문에 이 회장은 △상평공단 주차장 문제, △기업경영지원 자금 한도 7억 원으로 상향조정, △공무원 기업담당제 등을 들었다.

공무원 기업담당제가 무어냐고 물었더니 진주시 공무원들이 기업을 5-10개 정도를 직접 담당하여 애로점을 청취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일종의 기업 돌봄 제도라고 했다. 공무원들이 기업을 잘 모르고 행정을 하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규제일변도로 흐르기 쉽다. 그래서 기업의 사정을 알아보도록 조 시장에게 돌봄 제도를 권유했더니 즉각 수용했다고 털어놓았다. 이 회장은 이런 일을 상의회장이 하는 일이라고 했다.

상의회장으로 가장 하고 싶은 일로 이 회장은 진주에 기부문화를 만들고 싶은 것이라고 했다. “진주는 기부에 인색합니다. 기업인들이 돈 벌어서 자식들에게 물려주는 게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하지 말고 사회를 위해 자신의 재산을 내놓는 기부문화를 뿌리내리게 하고 싶습니다.” 이 회장은 이를 위해 자신이 먼저 실천하겠다고 했다. 다음 달 중으로 자신이 먼저 실천하면서 동료기업인들에게 동참을 호소할 거라는 것. 이 회장의 시도가 성공한다면 진주시의 기업문화도 많이 바뀌게 될 것 같다.

이영춘 회장은 1958년 지금은 수몰된 진주시 귀곡동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에는 가난해 고등학교 진학도 사실 어려웠다고 한다. 그래도 진주기계공고를 나와서 거제의 삼성중공업에 입사했다. 삼성중공업에서 삼성항공으로 옮겨와 있던 1997년 아버지의 부름으로 가업인 장생도라지를 이어받게 된다.

“당시 장생도라지가 부채가 28억, 매출은 연 4천만 원 수준이었습니다. 참으로 황당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래도 장생도라지가 당시로는 유일무이한 건강신소재였습니다. 또 재배특허로 보호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도전해 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회장은 마치 황무지를 개간하는 심정으로 장생도라지를 맡아서 매출 100억 원까지 성장시켰다. 지금은 동건환경 등 모두 4개의 회사를 거느리는 기업인이 됐다.

이 회장은 상의회장직을 마지막으로 사회활동을 접을 것이라고 말하며 “욕먹지 않는 기업인, 욕먹지 않는 상의회장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소망을 피력했다.

이영춘(62) 진주상공회의소 제24대 회장은 상의회장으로 진주에서 기부문화를 활성화 시키고 싶다고 말했다.
이영춘(62) 진주상공회의소 제24대 회장은 상의회장으로 진주에서 기부문화를 활성화 시키고 싶다고 말했다.

다음은 이영춘 회장과의 대담내용이다.

▲상의회장을 하면 이권이 있나.

-없다. 봉사하는 자리이다.

▲그런데 왜 서로하려고 하나.

-아무래도 경제계의 대표라는 자리이다 보니 그런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기업을 해서 어느 정도 성공을 한 사람은 ‘재계의 대표가 되고 싶다’는 그런 꿈이 있다.

▲다른 곳도 그런가.

-다른 지역 상의도 2000년대 들어와 그런 편이다. 특히 세대교체 바람이 함께 불면서 신·구세대간 경쟁이 있는 편이다.

▲이 회장도 신세대를 대표하는 사람인가.

-이번에 저를 지지한 사람들이 대부분 신세대들이다. 저도 나이로 보면 신세대라고 말하기에 좀 무리가 있다. 그래도 제가 우리 지역 경제계에서는 신세대에 속한다.

▲상의회장이 주로 하는 일은 뭔가.

-경제계의 여론을 수렴해 지자체나 중앙정부에 건의하는 일을 한다. 저도 회장 당선 후 지금까지 매일 회원사들을 방문하고 있다. 회원사들의 어려움을 파악해 진주시 등 관련기관에 전달하기 위해서이다.

▲그럼, 진주시와의 관계가 중요할 것 같다.

-그렇다.

▲진주시와는 대화가 잘 되는 편인가.

-대화가 잘 되는 편이다.

▲조규일 시장이 기업마인드가 없다는 시중의 평들도 있는데.

-그렇지 않다. 전임 시장 시절에 상공회의소회원들과 전문가들이 전국 228개 지자체별로 평가하는 기업환경평가에서 전국최하위를 기록했다. 그런데 현 시장이 오고 나서 100위권 안으로 상승했다. 실제로 기업의 애로사항을 전달하는 제 입장에서 보면 조 시장의 기업마인드가 강하다. 하지만 기업인의 입장에서는 아직도 규제개선 등 할 일이 많다.

▲조 시장이 오고 나서 완화된 규제가 있나.

-공무원들이 현장에 나오지 않고 탁상에서만 정책을 수립하면 현실과 괴리되는 면이 많다. 그래서 조 시장한테 진주시 공무원들이 관내 기업을 담당하는 공무원담당제를 해보라고 권유했다. 공무원 1명당 5~10개의 기업을 담당해 돌보는 제도를 권유한 것이다. 공무원들이 기업을 실제로 담당해 돌보다 보면 기업의 애로점이 얼마나 많은지 알게 된다. 그러면 공무원들이 업무를 하면서 기업마인드를 가질 수 있다. 일종의 기업 돌봄 제도이다. 그랬더니 당장에 시행하라고 지시했다. 현재 구체안이 마련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또 다른 사례도 있나.

-진주시에서 지원하는 경영지원자금이 20년 넘게 5억 원으로 묶여 있었다. 이웃 창원은 15억이다. 그래서 이를 늘려달라고 건의했다. 그랬더니 현재 7억 원으로 상향조정됐다.

▲이게 전부인가.

-아니다. 상평공단에 주차장도 기업들의 건의로 진행되고 있는 거다.

▲상평공단 주차장은 무슨 내용인가.

-상평공단에 주차장이 태부족하다. 입주기업 직원들이 길가에 주차를 해서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그래서 주차시설을 늘려달라고 시에 건의했다. 현재 계획을 입안해 실행단계에 있다. 이처럼 조규일 시장이 합리적인 건의에 대해서는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상의회장 하면서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나.

-기업하기 좋은 도시를 만드는 것은 어느 회장이나 하는 일이다. 저도 진주시가 기업하기 좋은 도시로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런데 저는 이런 상의회장의 통상적인 일 외에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다.

▲그게 뭔가.

-진주기업인들이 기부에 인색하다. 그래서 기부문화를 바꾸고 싶다.

▲그게 돈이 관련되는 것이라서 쉬울 것 같지 않은데.

-제가 먼저 실천하려고 한다. 다음 달 중 제가 먼저 실천하고 동료기업인들에게 호소하려고 한다.

▲잘 먹힐까.

-쉽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도 상의회장인 제가 먼저 솔선수범하고 나서면 조금은 호응이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평소에 기부는 좀 했나.

-제가 장생도라지를 맡은 지 20년 됐다. 잘 알다시피 장생도라지는 큰 기업은 아니다. 그래도 제가 기업을 한 20년 동안 현금과 현물을 합쳐 30억 원 정도는 기부했다고 생각한다. 큰돈은 아니지만 장생도라지 만한 기업규모에서는 작지 않은 금액이다. 그런데 이 정도로는 안 된다. 기부를 통해 진주의 기업 문화를 바꾸고 싶다. 지속 가능한 기부문화를 정착시키고 싶다.

▲왜 기부문화가 중요한가.

-다들 기업을 해서 돈을 벌면 자식들에게 물려주기 바쁘다. 특히 진주의 경우 더욱 그렇다. 그렇게 자식들에게 물려줘도 진주부자 2대 못 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지금 진주에서 기업을 잘 하고 있는 사람들도 다 자수성가한 사람들이다. 이제 상의회장이 됐으니 발언할 위치가 됐다. 그래서 진주에 기부문화를 만들고 싶다.

▲진주에 기부문화가 없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지금까지 진주에 기부와 관련해 솔선수범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저는 삼성에 있을 때 기부문화를 배웠다. 기부라는 게 한번 해 보면 계속하게 된다. 기부의 맛을 알게 된다. 기부에 맛을 들이면 이 역시 중독성이 강하다. 그래서 계속 기부를 하게 된다. 그런데 진주에서는 기부를 배울 기회가 없다보니 아직 기부문화가 활성화 되지 않은 것 같다. 원래 진주 사람들이 인색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제가 솔선수범해서 진주의 기업들이 기부의 맛을 알도록 하고 싶다.

▲기부문화 만드는 것 외에 또 하고 싶은 일은.

-우리나라는 여러 가지 정부지원제도가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기업들이 이런 제도를 몰라서 못 찾아 먹는 일이 많다. 그래서 제가 상의회장으로 있는 한 회원기업들이 정부의 지원제도를 몰라서 손해를 보는 일은 없도록 하겠다. 정부의 다양한 제도들을 회원사들에게 홍보하고 구체적으로 지원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싶다.

▲개인적인 얘기를 좀 해보자. 고향이 어디인가.

-진주시 귀곡동에서 1958년에 태어났다.

▲귀곡동이 어디인가.

-지금은 수몰되었다. 남강댐 건너편이 원래 귀곡동이었다. 옛날에는 까꼬실이라 불리기도 했다.

▲거기서 언제까지 살았나.

-초등학교 2학년까지 다니다가 수몰되면서 신풍초등학교로 전학 와서 졸업했다.

▲중학교는 어딘가.

-명석중학교를 나왔다. 그리고는 진주기계공고를 졸업하고 1977년에 거제의 삼성중공업에 입사했다.

▲삼성중공업에서 직장생활을 마쳤나.

-아니다. 1987년에 삼성항공으로 옮겨서 수석인사과장을 하다가 1998년에 퇴직했다.

▲삼성이면 잘 나가는 회사인데 왜 그만뒀나.

-아버님이 하시던 장생도라지를 이어받기 위해서 그만뒀다.

▲당시 삼성을 그만두고 가업을 이을 정도로 장생도라지가 괜찮았나.

-전혀 아니다. 제가 장생도라지를 맡았을 때 연 매출이 4천만 원 수준이었다. 그런데 부채는 총 28억 원 이었다. 빚을 갚을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그런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이어받은 거다.

▲그럼, 무슨 배짱으로 이어받았나.

-그 상황에서 그래도 제가 믿은 건, 장생도라지가 당시로는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건강 신소재라는 점이었다. 특히 장생도라지가 재배특허를 받아서 보호가 되고 있었다. 그래서 도전해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쉽게 말해 금송아지 100마리를 갖고 있는데 팔지를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결단한 거다.

▲그래서 잘 됐나.

-제가 맡은 첫해에 매출 10억 원을 기록했다.

▲4천만 원 매출을 10억 원으로...대단한 성과다. 어떻게 해서 가능했나.

-언론홍보를 많이 했다. 신문과 방송사를 찾아다니며 장생도라지 홍보를 했다. 그게 주효했다. 또 사흘에 한 번씩 서울을 다니며 발품도 팔았다. 잠을 2~3시간씩 자며 영업을 하는 강행군을 계속했다. 그랬더니 매출이 올랐다. 다음해에는 20억 원으로 두 배 성장했다. 그리고는 제가 맡은 10년만인 2008년에 28억 원의 빚을 모두 갚았다.

▲장생도라지 기업규모가 어떻게 되나.

-2013년에 매출 100억 원으로 최고를 기록했다. 그리고는 여러 가지 이유로 고전을 면치 못하다가 회복을 시작해 지금은 60억 원 정도 된다.

▲장생도라지만 하나.

-아니다. 워낙 장생도라지의 이미지가 강해서 그렇지 사실 다른 기업도 있다.

▲어떤 회사들인가.

-건설폐기물을 재활용하는 동건환경(주)과 건설회사 동건종합건설이 있다. 또 가스배관설치업인 태성산업개발 등의 회사에 관여하고 있다. 모두 합치면 매출이 250억 원 정도 된다.

▲이 회장은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으로도 유명한데.

-주경야독을 했다. 사실 저는 고등학교도 가지 못할 환경에서 기계공고를 졸업했다. 그래서 배움에 대한 갈망이 늘 있었다. 1997년에 경남과기대 식품가공학과를 졸업했다. 또 2001년도에는 경상대 경영학과에서 석사학위 마쳤다. 이어 2008년도에는 국제대학에서 이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아무래도 식품관련 회사를 하다 보니 전문지식이 필요해 회사경영에 바빴지만 밤에는 공부를 위해 시간을 냈다.

▲평생 치열하게 살았는데 앞으로는 뭘 할 건가.

-상의회장이 사회에서 마지막 봉사자리다.

▲정치권에서도 스카웃 제의가 있었을 것 같은데.

-많이 있었다.

▲그런데 왜 안했나.

-저하고는 잘 맞지 않는다.

▲어떤 점이 그렇나.

-나는 좋고 싫은 것이 얼굴에 그대로 나타난다. 마음을 숨기지를 잘 못한다. 그런데 정치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그래도 권유가 많을 것 같은데.

-다음은 진주시장이네 하는 말도 주변에서 많이 듣는다.

▲진주시장에 도전할 건가.

-그런 말 하지마라. 절대 안한다.

▲이제 기업인 출신 진주시장이 필요하다는 여론도 있지 않나.

-글쎄... 저는 지금에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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