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것은
오래 버티기 힘들다
물의 흐름처럼
아주 천천히 흘러가야 한다

정숙자 문학박사
정숙자 문학박사

[한국농어촌방송/경남=정숙자 문학박사] 겨울을 이겨낸 용감한 매화나무는 봄의 화려했던 꽃을 뒤로하고 열매를 많이도 달고 있다. 인간의 거칠고 메마른 손이 열매를 따기 전까지는 몸과 가지에 달린 열매는 한 식구처럼 옹기종기 모여 있을 것이다. 한참동안이나 그렇게 지내다가 어느 시간에 이별을 하게 될 것이다. 아마 매화나무는 모든 것을 알고 있을 것이며, 추운 겨울을 견뎌낸 것처럼 또 말없이 제 가족의 이별도 묵묵히 받아들일 것이다. 매화나무는 괜찮은 척하고 살아갈 것이다.

매화나무가 그렇듯 우리의 삶도 괜찮은 척하며 견디고 있는 것이다. 평온한 대지 밑에 늘 끓고 있는 용암을 우리는 알아차리지 못하고 보지도 못한다. 언제 터져 나올지 모르는 뜨거움은 불안하지만 모른 척하고 살고 있다. 알고 있다고 해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으니 그저 지내는 것일 수도 있다. 화산이 터져 검은 재를 날리고 용암이 흘러내려 생활을 위협하고 생명을 앗아간 후에 절실히 깨닫게 된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모든 것이 끝난 상태다. 돌이킬 수도 없고 돌아볼 사람도 없다.

지금 내 마음이 그렇다. 참을 수 있을 만큼 참다가 언젠가 견디지 못하고 내 감정이 터져 버리면 나에게 남는 것이 있을까? 남아 있어야 하는 것들이 존재하기는 할까? 늘 겉모습은 평온한 척 괜찮은 척하지만 나는 언제나 내 마음과 몸이 힘들어 미칠 것 같았다. 이해를 바라지도 않았다. 그저 나를 남보다 먼저 지켜보기를 바라고 있었을 뿐인데 단 한 번도 나를 위한 것은 1도 없었다. 그리고 내가 참으면 모든 것이 잘 될 줄 알았고 그것이 최선인 줄 알았다. 그것은 나의 오만이었다.

그렇다. 사람들은 각각 자신의 무게를 이고 지며 살아간다. 아프지 않은 척 힘들지 않은 척 살아가는 것이지 아프지 않고 힘들지 않은 사람은 하나도 없다. 단지 내 가슴에 놓인 돌덩이를 가장 무겁다고 느끼며 살아가는 것이다. 나의 돌덩이의 무게를 솔직하게 인정하면서 상대 가슴의 무게도 무시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물의 흐름처럼 가슴의 무게를 시간에게도 맡겨도 보고 잠시 내려도 놓고 아주 천천히 흘러가야 할 것이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것은 오래 버티기 힘들다. 내가 무너진 자리에는 태양은 뜨지 않으며, 바람도 꽃도 없을 것이다. 타인의 기억 속에 살아있기를 꿈꾸지 말고 오늘은 내 마음을 꼭 붙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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