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 톺아보기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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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톺아보기 (26)
  • 김세곤 칼럼니스트
  • 승인 2021.06.04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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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8년 11월 26일 오후 1시에 고종은 경운궁 돈례문(남문) 군막에 친히 납시었다. 이 자리에는 각부 대신 및 외국 공사·영사와 그 부인들이 좌우에 정렬하였다.

오후 2시 30분이 되자 내부대신서리가 만민공동회측 대표를 불렀다. 200명의 대표는 그를 따라 고종이 친림한 탑전으로 들어갔다. 대표들을 면담한 고종은 만민들의 요구 사항을 다 들어주겠다고 친히 하교하였다.

이어서 고종은 농상공부대신 권재형을 통하여 칙어를 전달했다. 고종은 칙어에서 ①군신 상하가 신의(信義)를 지키며, ②현명하고 능력있는 이를 전국 안에서 구하고, ③아름다운 진언을 초야의 백성들에게서 캐어 쓰며, ④오늘 새벽까지의 일은 유죄·무죄와 경중을 헤아리지 않고 모두 씻어버리고, ⑤민회와 보부상의 양민이 모두 짐의 적자이므로 서로 돕고 친해서 돌아가 각기 그 생업을 편안히 하라고 강조하였다.

이윽고 만민공동회 회원들은 다음 5개 조항을 결의하여 고종에게 아뢰었다.

① 독립협회를 복설할 것.

② 대신들을 잘 선택하여 임명할 것.

③ 소위 보부상은 이제 태생적 폐단이 적지 않으니, 비록 칙령으로 혁파했으나 다시 명목을 바꾸어 폐단을 답습할 염려가 있으므로 영구히 혁파할 것.

④ 법령의 규정을 실시하고 전일 헌의 6조와 조칙 5조를 반드시 실시할 것.

⑤ 조병식·유기환·이기동·김정근·민종묵·홍종우·길영수·박유진 등을 처벌할 것.

고종은 권재형의 상주(上奏)를 통하여 만민공동회의 5개 조항의 요구 조건을 듣고, 만민공동회 회원 중 3인을 다시 선출하여 직접 면대해서 상주하도록 명령하였다. 만민공동회는 고영근·윤치호·이상재를 총대위원으로 선출하여 다시 면대해서 상주하였다. 고영근 등은 ① 5흉의 재판, ② 만민이 신임하는 대신의 임명, ③ 헌의 6조의 실시를 주청하고 물러 나왔다.

이에 고종은 법부대신 한규설을 통하여 칙유하기를, ①복설하는 독립협회는 국내의 문명 진보를 토론하는 데 한정하고 정부의 정책 시행에 대한 용훼는 불허하며, ②8신 중 5신은 법에 따라 유배하라는 조칙을 이미 내렸으니 그 부처에서 조만간 거행토록 하겠고, ③홍종우 등 3신은 상민(商民)의 두령이니 어찌 용서하지 않을 수 있겠으며, ④보부상 혁파는 조칙을 이미 반포했거니와 농상공부로 하여금 다시 상의해서 민폐가 없도록 조치할 것이요, ⑤헌의 6조는 차례로 실시하여 국민에게 신의를 보일 터이니, 국민들은 그리 알라고 하였다.

만민공동회는 ①칙유하신 가운데 3신은 폐하의 의사가 그러하시니 이것은 황제의 처분에 따르겠으며, ② 5신은 반드시 재판하여 법률에 따라 처형케 해달라고 응답하였다.

고종은 탁지부대신을 통하여 5신은 마땅히 재판을 받도록 하겠다고 답하였다.

이러자 만민공동회 회원들은 기쁨에 넘쳐 만세를 세 번 부르고 물러 나와 해산하였다.

고종은 이날 오후 4시에 보부상 대표 200명을 불러서 역시 권재형을 통하여 칙어를 전달했다. 이에 대해 보부상들은 홍종우·길영수·박유진 등을 총대위원으로 선정하여 다음과 같은 3개 조건을 청원하였다.

① 정부 대신들이 신 등의 진의를 오인하여 상무소를 혁파하였으니, 상무소를 복설하여 생업을 편안케 해 줄 것.

② 만민공동회는 그 이름은 다를지라도 독립협회와 일체이니 함께 혁파할 것

③ 조병식 등 8인은 무죄임을 밝히어 모두 석방할 것

황제는 알아서 처분할 것이니 그리 알고 물러가라고 하였다. 이에 보부상들도 만세를 삼창하고 물러갔다.

이날 고종의 친유는 성공적으로 끝났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독립협회와 황국협회 양쪽의 주장을 모두 수용한 점이 곧 논란이 되었다.

11월 29일에 고종은 중추원 의관 50명을 선정 지명하였다.

이 때 지명된 중추원 의관은 계파별로 보면, 독립협회 및 만민공동회 계열이 17명, 황국협회 계열이 16명, 황제파 계열이 17명이었다. 즉 고종과 황국협회 등 수구파가 33석으로 3분의 2석을 차지한 것이었다.

이는 중추원을 고종의 자문기관으로 개편하려는 의도였다.

12월 6일에 독립협회장 고영근이 상소하였다. 고종이 약속한 보부상 해산과 조병식등 5흉의 처벌이 이행되지 않는데 대한 항의였다. (고종실록 1898년 12월 6일)

 

< 참고문헌 >

o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41 열강의 이권침탈과 독립협회, 탐구당, 2003

덕수궁 중화문
사진 덕수궁 중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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