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 톺아보기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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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톺아보기 (27) 
  • 김세곤 칼럼니스트
  • 승인 2021.06.08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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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98년 12월 1일(음력 10월 8일)에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는 김덕구의 장례를 만민장(萬民葬)으로 거행했다. 김덕구는 11월 21일에 마포에서 보부상과 맨주먹으로 투쟁하다가 죽은 신기료장수(구두 수선공)였다. 

만민공동회 회원들은 수만 명이 모여 김덕구의 초빈처인 숭례문 밖 쌍용정에서 입관한 다음, 장례식장인 숭례문 밖 연지(蓮池)로 운구하였다. 

장례식은 오후 1시부터 성대하게 거행되었다. 시민들과 외국인들이 구름같이 모여서 만민장 광경을 지켜보았다. 

 김덕구 만민장은 대성공을 거두었다. 구경한 시민들은 지지세력이 되었고, 황국협회의 일부 회원들까지도 만민공동회 편에 섰다. 

그러나 수구파들은 집요했다. 고종은 12월 2일에 의정부 참정 박정양, 외부대신 민영환, 법부대신 한규설, 농상공부대신 권재형 등을 해임하였다. 12월4일에 고종은 개혁파 민영환을 의정부 참정, 박정양을 농상공부대신으로 임명하고, 수구파 심상훈을 군부대신, 민영기를 탁지부대신, 김명규를 학부대신, 이윤용을 법부대신과 내부대신 서리로 임명했다. (고종실록 1898년 12월 4일) 수구파를 다시 기용한 것이다. 

탄핵 대상인 심상훈, 민영기등이 대신에 임명된 것과 10일 동안이나 고종의 이행조치가 없자. 만민공동회는 12월 6일에 종로에서 만민공동회를 재개하였다. 이 날 시민들은 고영근을 소두로 하여 ①헌의 6조의 실시, ②5흉의 재판과 처벌, ③보부상 혁파의 즉각 실행을 요구하는 상소를 올렸다. 

고영근 등은 12월 8일에도 2차 상소를 올려 고종이 친히 약속한 국정개혁의 조속한 실행을 촉구하였으나, 고종은 "이렇게 시끄럽게 구는 것인가? 다 알았으니 물러들 가라."고 비답하였다. 

12월 9일에 전 참서관(前 參書官) 안태원이 상소를 올려 민회가 ‘임금의 마음을 미혹시키고 아래로는 백성들의 마음을 현란하게 해서 다른 나라의 민주와 공화의 제도를 채용하여 우리나라의 군주 전제법을 완전히 고치려고 한다’고 모략했다.    

12월 10일에는 의관 이남규와 이복헌 등이 민회를 규탄하는 상소를 올렸다. 이날 찬정 최익현도 당장 시행해야 할 12개 조항을 상소했는데 7번째 조항에 ‘민당을 혁파하여 변란의 발판을 막으라’는 주장이 들어 있었다. 12월 11일에 경무사 이근호가 7일간 감봉당했다. 백성들이 모이는 것을 제대로 금칙(禁飭)하지 못했다는 이유였다. 

12월 15일에 고영근 등은 만민공동회를 계속하면서 다시 상소를 올렸다.

"신 등은 비답을 받을 때마다 모두들 기뻐하며 나랏일이 이제부터 펴질 것이며 백성들의 생업이 이제부터 안착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밤낮으로 기대하였으나 아직 실시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 아! 저 민영기, 심상훈, 김명규 세 신하는 폐하의 총명을 가리고 백성들에게 해독을 퍼뜨려서 여러 사람의 의논이 승복하지 않고 규탄하였으며 폐하가 환히 살피고 쫓아버렸는데 어찌 다시 이 중요한 임무를 맡길 수 있겠습니까? 

이같이 간사하고 음흉한 무리들은 영원히 깨끗한 조정의 반열에 나란히 세울 수 없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폐하는 결단성 있게 단안을 내려 빨리 이 무리들을 쫓아버리고 다시 슬기 있고 착한 사람을 선발하여야 모든 정령이 비로소 실시될 수 있을 것입니다.


... 보부상(褓負商)의 폐단에 대해서는 신 등이 이미 전에 올린 글에서 상세히 진달한 바 있습니다만, 아직도 이들은 뭉쳐서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 민간에서는 이들 때문에 소란이 나고 도로는 이로 말미암아 막히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 뿌리를 뽑아버리는 일을 서두르지 않는다면 앞으로 그것이 점점 늘어나고 퍼지는 화를 면하지 못할 것입니다. 삼가 바라건대 폐하는 빨리 당해 관청의 신하에게 명하여 엄격히 단속하여 나쁜 버릇을 되풀이하는 일이 없도록 하소서.”

이에 고종이 비답하였다. 

"여러 차례에 걸쳐 비답을 내렸는데도 이와같이 시끄럽게 구는가? 사체(事體)를 헤아려 볼 때 매우 무엄하다. 다시는 시끄럽게 굴지 말라. 알았으니 물러들 가라."
(고종실록 1898년 12월 15일)   

이날 고종은 만민공동회에 대한 무마책으로서 독립협회 회장 윤치호를 한성부판윤, 김영준을 경무사로 임명하였다.
 
고종은 참으로 이중적이다. 오락가락이다. 

 

사진 덕수궁 함녕전 (고종의 침전)
사진 덕수궁 함녕전 (고종의 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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