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창 너머의 생활은
온전히 나의 것이 아니다
하지만 긍정적 상상에 의지하면서
버텨내는 것이리라

정숙자 문학박사
정숙자 문학박사

[한국농어촌방송/경남=정숙자 문학박사] 앞마당에는 잔디가 융단처럼 펼쳐져 있고 뒷마당 한 모서리에는 온갖 종류의 야채들이 줄을 서서 푸르고 싱싱함을 뽐내고 있다. 야채들을 손수 가꾸어서 밥상 앞에 정갈하게 씻어둔다. 따뜻하게 지어진 잡곡밥과 된장찌개로 맛있는 식사를 하고 냉장고에 넣어둔 시원한 보이차 한 잔을 들고 밖으로 나가 달을 보며 마신다. 누구나 한번쯤 꿈꾸는 전원생활의 풍경이다. 물론 약간의 오차는 있지만 나는 그렇게 봄을 지냈고 여름을 지내고 있다.

상추와 로메인도 심었고, 고추, 방울토마토, 오이, 참외, 수박 등 모종을 사서 심었더니 잘 자라 주었다. 제법 오이도 잘 열어서 오이냉국이며 무침을 해 먹고 남는 오이들은 친구들을 불러 나누어 주기도 한다. 벗들이 오는 날이면 고기를 사서 바베큐를 하고, 고추도 따고 상추와 온갖 야채들을 씻어 신선한 즐거움을 보탠다. 정원에 있는 오래된 복숭아나무는 세월을 아랑곳하지 않는다. 제 몸은 돌보지 않고 많은 열매를 달고 있다. 복숭아를 따주는 작업을 해야 하는데 어느 것을 따야 하는지 몰라 그냥 그대로 두었다. 아니 나의 욕심으로 열매를 따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나무는 힘에 겨워 축 늘어져 있다. 6월의 햇빛에 복숭아는 벌써 볼이 발갛게 익었다. 언제 따서 먹어야 하는지 몰라 요즘은 아침마다 복숭아나무 옆에 선다. 어제와 다르게 더 붉어진 복숭아 하나를 따서 깨끗이 씻어 먹어보니 맛있다. 이제 따서 먹어도 되는가 싶다.

전원생활이 주는 상상이나 희망은 여유로움일 것이다. 그래서 누구나 한번쯤 꿈꾸는 것이다. 앞마당의 잔디가 융단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봄부터 풀을 뽑기 시작했고, 제철마다 피는 소담한 꽃을 보기 위해서 수십번 꽃집을 들러 화분을 사서 날랐다. 이제 자리를 잡은 꽃들은 항상 옆에 풀을 동반하고 자란다. 풀을 뽑아낸 자리에서 꽃들이 배시시 웃는다. 수 없이 반복되는 일상이다. 전원주택을 짓고 생활하는 사람들에게는 여유로움 따위는 없다. 봄부터 시작되는 풀과의 전쟁은 겨울이 되어서야 끝이 난다. 풀을 뽑고 돌아서면 그 자리에 또 풀이 나서 자란다. 일주일만 살피지 않아도 집 주위는 이미 풀이 장악하여 주인인 듯 행세를 하며 사람들의 흔적까지 묻어버린다. 물론 풀을 외면하고 살 수만 있다면 여유는 있을 것이다. 나는 그렇지 못한 성격이라 오늘도 풀을 뽑는다. 풀을 뽑고 난 정원은 잘 차려입은 정장 같은 느낌이 난다. 나는 이 작은 즐거움으로 내일 또 그다음 날에도 풀을 뽑고 있을 것이다.

유리창 너머의 생활은 온전히 나의 것이 아니다. 나의 시선이 향하는 곳이 전부가 되고, 창문 유리 너머의 세상에 나의 상상과 생각이 더해져 좋은 점만 보려고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부정에 휩싸여 나의 감정이 바닥을 뚫고 세상 밖으로 밀려나는 것 보다는 긍정적 상상에 의지하면서 당분간은 버텨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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