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묘
종묘

1899325일에 주한프랑스공사 드 플랑시가 델카세 프랑스 외무부 장관에게 공문을 보냈다.

지난 1월 이래로 대한제국의 군주는 만일 국가의 이익에 대해 고심하고 있는 군주라면 마땅히 선택할 개혁과 혁신의 길을 아직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는 예전과 마찬가지로 의심과 주저함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군주가 임명하는 대신들은 관직을 수행하기가 무섭게 사임하며 이 짧은 기간 동안 여덟 개 부처 책임자들 사이에 일어난 변화를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입니다.”

플랑시는 대한제국의 개혁에 대하여 회의적이다. 고종의 의심과 주저함 잦은 인사에 우려를 표한다. 외교관과 관련있는 외부대신을 살펴보자. ‘조선왕조실록을 찾아보면, 1897112일부터 1898415일까지 6개월 동안에 외부대신이 4명이나 교체되었다. 외부대신 임기가 평균 1.5개월인 셈이다.

1897112일에 조병식이 외부대신이 되었다. 1898131일에는 이도재가 외부대신이 되었고, 216일에 민종묵이 외부대신 서리가 된 이후 33일에 외부대신이 되었다. 324일에는 조병직이 외부대신 서리가 된 후 415일에 외부대신이 되었다.

플랑시 프랑스 공사의 보고는 이어진다.

가장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은 그 어느 때보다 사례금이 높아진 관직 매매입니다. 실제로 아무리 낮은 관직이라 해도 이를 청하는 자는 4,000피아스트르를 지불해야 한다고 최근 언론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가장 인기를 끄는 자리는 지방 수령인데 그 이유는 국왕의 금고에 바친 선불금을 관민들에게 조속히 환급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이러한 소문이 점점 확산되어 의정부 참정 심상훈은 내부대신에게 이 같은 관행이 대한제국의 명성에 먹칠을 한다는 사실을 알릴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이 같은 생각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서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는데 심상훈도 내부대신이 궁에서 내린 명령을 집행하는 인물일 뿐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대신들은 참정의 의견에 동조하거나 아니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런데 대한제국의 황제는 내각의 태도가 자신의 권위를 위협한다고 판단하여 내부대신에게 10년 유배형을 내린 한편, 심상훈은 폐하가 사건을 알지 못한 모든 책임을 물어 15년 유배에 처해졌습니다. 다른 대신들의 경우 파면에 처해졌습니다. 이 같은 느닷없는 조치로 인해 박제순 외부대신도 파면당했는데, 그는 모든 외교관들이 높이 평가하고 있던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후임으로 이도재가 임시서리로 임명되었습니다. 제가 이미 장관님께 보고 드린 것처럼 이도재는 러시아 공사 스페이어(Speyer)씨와 다툰 바 있습니다.”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한국근대사 자료집성 19권 프랑스 외무부 문서 9 대한제국 ·1899~1901 > 대한제국의 대외 정책과 주재 외국인 1899~1901 2> 3독립협회 현황과 관직 매매)

1899324일의 고종실록에는 민병한은 10년간 황주군 철도에, 심상훈은 15년간 지도군 고군산에 유배시켰다.”고 적혀 있다.

황현의 매천야록에는 “1899년에 민병한은 철도(鐵島), 심상훈은 지도(智島)로 유배하였다. 민병한은 내부 서리로 있을 때 내비(內批 벼슬아치를 임명할 때 소정의 절차를 거치지 않고 임금의 특명으로 임명하는 일)를 받아 군수 100여 명을 제수하였는데, 심상훈은 그 일을 시행하지 못하도록 간청하였다. 민병한은 고종 앞에서 심상훈과 싸우며 서로 상투를 쥐고 주먹으로 구타하자, 고종은 조정의 법도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모두 유배를 명하였다.”고 적혀 있다.

이렇게 고종은 군수 100명을 전보시키라고 내부서리 민병한에게 지시했는데, 1899315일에 심상훈이 이의를 제기하였고 이에 못마땅한 고종이 321일에 두 사람을 유배 보내고 토의에 참가한 신하들도 파면한 것이다.

이 날 고종은 외부 대신 박제순, 의정부 찬정 조병직, 탁지부 대신 민영기, 의정부 참찬 이용직을 파면하였다.

이어서 고종은 신기선을 의정부 의정(議政) 서리, 민종묵을 내부 대신 서리, 이도재을 외부 대신 서리, 군부 협판 주석면을 군부대신 서리로 임명하였다.

대한제국의 개혁에 대한 의구심과 매관매직 그리고 전제군주 고종의 잦은 인사. 이것이 주한 프랑스 외교관이 본 대한제국 2년 차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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