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 설 다음날부터 시작된 부부산행
짧은 기간이지만
참으로 많은 것을 배운다

산딸기 열고 까치가 날고
구름이 지나고 바람이 일고...

또 다른, 새로운 즐거움이
항상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둘이서
손을 잡고 산길을 걷는다

이효선 의령 용덕초등학교 교장
이효선 의령 용덕초등학교 교장

[한국농어촌방송/경남=이효선 의령 용덕초등학교 교장] 토요등산! 가는 길이다.

내를 건너서 숲으로

고개를 넘어서 마을로

어제도 가고 오늘도 갈

나의 길 새로운 길

윤동주 시인의 ‘새로운 길’ 시를 주거니 받거니 하며 오르기를 벌써 21회, 설레임으로 토요일을 기다리게 된다.

‘누죽걸산’이란 말이 있다.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는 말이다. 좋으나 싫으나 백년해로 약속을 했기에 같이 산에 가야 건강하게 오래 살듯했다. 우연히 남편과 함께 본 TV에서 70대 아저씨의 산봉우리 타기 이야기를 보았다. 무려 2000여개의 산봉우리를, 하루에 두세개도 올랐단다. 암수술 후 몇 년째 건강키우기를 하는 아저씨가 우리 가슴에 등산 씨앗을 심은 것이다. 우리의 토요등산 건강싹틔우기 프로젝트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첫술에 배 부르랴?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 설날이 2월 12일, 뒷날인 13일 토요일에 오른 월아산 국사봉!

먼저 지난해 이사 온 집 근처부터 가기로 했다. 진주에서는 유명한 월아산이 있다. 월아산 국사봉과 장군대봉. 고민하다 국사봉부터 올랐다. 헉헉거리며 갔지만 이사 오길 잘했지? 아직은 억지OK답과 함께 산행의 첫 출발은 만족스러웠다. 이어지는 새로운 산행은 산청 필봉과 왕산, 사천 와룡산, 창원 적석산. 가는 곳마다 신비로움이 가득했다. 지금껏 무시한 주변의 산들에게 미안하기까지 할 만큼.

문득, 전국 100대 명산이 궁금해졌다. 미리 뽑아 간 리스트를 남편과 하나하나 짚어 보며 토요산행에 대한 기대치도 업그레이드되었다. 당장 100대 명산 중 처음으로 갈 산을 정했다. 황매산! 황씨 아저씨이니 ‘황’자가 들어가는 산이 어떻냐며? 드디어 3월 27일. 산청의 황매산을 갔다. 도시락도 싸고 제법 먹거리도 준비해서 일찌감치 출발했다. 마침 어제 아빠 생신날이라 온 큰아들과 함께 동행하니 신남이 더 했다. 왠일? 반쯤 가니 비가 한 방울씩 떨어진다. 첫 발걸음을 축하라도 하는 듯하여 우리는 더 가벼운 발걸음으로 정상까지 갔다. 비바람과 산안개가 얼굴을 스쳤지만 인증샷까지 완료. 바로 눈아래만 보이는 길따라 내려오는 길은 처음 느끼는 산행의 묘미였다. 다행히 주차장 가까이 정자가 있어 빗소리 들으며 먹는 돼지고기 수육, 김치, 전 등등. 그리고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까지. 가족사랑의 깊이까지 더해주는 맛을 보았으니 우리의 토요등산 각오는 더 해질 수밖에.

아무렴~ 2021년의 4월은 특별했다. 거제 사량도의 칠현산! 내 삶을 튜닝하게 만들었다.

어느듯 4월이라 거제 사량도 칠현산. 용두봉, 망봉, 칠현봉을 걸으며 온몸으로 받은 힐링 테라피는 1년의 피끌임이 되기에 충분했다. 사량도 옥녀봉을 건너편에 두고 우리는 현지인 동료의 안내로 칠현산에 올랐다. 연둣빛 새싹들이 방실방실 연신 재잘거리며 반긴다. 새싹들의 향연에 용두봉도 금새.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어우러진 칠현봉에 발들 딛는 순간, 아! 온몸의 세포가 살아나는 전율이란~

이미 우리는 자연인이 되어 있었다. 눈만 돌리면 연둣빛 새싹. 멀리 시선 던지면 사방이 푸른 남해바다! 고개 들어도 하얀 구름 살짝 걸친 파란 하늘. 이어지는 능선따라 이들을 함께하고 걷는 행운은 참말로 가슴 벅찬 날이었다.

그때만큼은 자연과 동화된 우리도 하나의 자연이었다. 남편은 약초공부 좀 했다고 주변의 잎새를 보며 제법 이름을 댄다. 단풍잎 모양의 단풍취, 다래순, 두릅, 취나물, 산초잎 등 건강밥상에 오를 봄나물들로 배낭 가득 채우고 하산했다. 부둣가의 새콤달콤 군소무침, 도다리회, 멍게, 해삼, 해물 가득한 라면까지. 4월의 그곳은 튜닝하기에 충분한 삶의 수채화였다.

하동 구재봉, 남해 금산·설흘산·망운산, 비 온 날의 김시민 장군 트래킹 코스. 산청 황매산 철쭉, 대전 계족산, 고성 거류산 ···.

“야야, 맨날 보는 신랑 뭐가 좋다고 등산도 같이 가냐?” 둘이 다니다 보면 늘 마음이 맞기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거류산에서 탈이 생겼다. 배도 고프고, 어지럽고. 그런데 남편은 쉬지도 않고 가버렸다. 헉헉거리며 걸었다. 모퉁이를 돌아가니 서 있는데 그만 화를 내고 말았다. 좋은 쉼터를 찾느라 빨리 왔다며, 미안해하며 내 이마의 땀을 닦아준다. 나도 씨익 웃으며 손을 잡아주니 나를 껴안아 준다. 땀 냄새나는 나를 예쁘다고 안아 줄이는 이 사람밖에 없을 듯하다.

통일부에서 주관하는 ‘2021 통일 걷기대회’에 남편이 혼자 참가했다. 12박 13일 동안 하루에 27㎞를 걸으며 통일을 염원하는 행사이다. 그동안 토요일마다 같이 산행하며 단련한 체력을 믿고 참가한 남편이었다. 걱정하는 나에게 통일부장관도 걷고, 하루도 안 보면 눈에 가시가 돋히는 ‘나는 자연인이다’ 프로그램 진행자인 윤택이 홍보대사로 참가했다며. 그리고 강철부대 김민수까지 함께한다고 걱정말라고 안심시켰다. 무사히 행사를 마치고 돌아와서는 “니가 없어서 허전하고 심심했어. 다음엔 혼자 가지 않을 거다.” 발에 생긴 물집을 만지작거리며 남편이 던지는 말에 어깨가 으쓱해졌다.

7월 4일. 장맛비로 일요일 고성 연화산. 짙은 녹음이 참 좋다. 누구나 그렇듯, 우리도 뒤돌아보면 참 열심히도 살아온 것 같다. 늘 이렇게 자연이 옆에서 우리를 응원해 주었을 텐데. 그 소리가 참말로 정답게 들린다. 인생 2막에는 초록 잔디 앞뜰에 그림같은 소나무 한 그루 턱 버티고 있는 전원생활이 보상되지 않을까? 꿈꾸며 나는 자연인이기를 소망했는데. 그런 생각도 리셋했다. 멀게만 느껴졌던 자연이 오롯이 내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욕심으로 가득찬 머릿속이 이렇게 가벼워질 수가!

자연은 많은 것을 준다. 아낌없이 준다. 누구에게나 준다. 내가 원하면, 아니 나의 발길이 머물면 그곳은 나의 자연이다. 턱 하니 내 앞에 서 있을 자연이 기다려진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산은 올라 봐야 산이 얼마나 예쁘고 사랑스러운지를 알게 된다. 우리가 가는 길은 늘 새로운 길이다.

산딸기 열고 까치가 날고, 구름이 지나고 바람이 일고...

오늘은 어제보다 또 다른, 새로운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둘이서 손을 잡고 산길을 걷고 있다. 우리 부부의 2021년 매주 토요일 건강싹틔우기 프로젝트! 금강산, 백두산 갈 때까지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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