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 염근공신(廉勤公信)을  칙유하다. 

덕수궁  즉조당, 석어당 전경
덕수궁 즉조당, 석어당 전경

1904년 2월에 러일전쟁이 일어났다. 예상을 뒤엎고 일본은 러시아를 이기고 있었다. 5월 21일에 고종은 관리들과 백성들에게 칙유(勅諭)하였다.  

"짐(朕)이 생각하건대 나라를 다스리는 도리는 백성들을 근본으로 삼는 것이다. 관청을 세우고 직무를 나누며, 어진 사람을 선발하고 유능한 사람을 임용하는 것은 오직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기 위해서일 뿐이다. 

... 온 나라의 백성들이 편안히 살 수 있게 하는 도리는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청렴과 근면, 공정과 신의에 있을 뿐이다.   청렴하게 백성들을 다스리면 백성들이 재산을 산처럼 늘리고, 근면하게 백성들을 다스리면 백성들이 생업에 힘쓰며, 공정하게 백성들을 다스리면 반드시 백성들의 억울한 사정이 풀리지 않는 것이 없게 되고, 신의로 백성들을 다스리면 백성들이 법령을 어기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반드시 아는 법이다. 

... 짐이 왕위에 오른 40여 년 동안 비록 덕이 없어서 선대 임금들의  크나큰 도리를 빛나게 하지는 못했지만, 언제나 한 가지 생각은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기 위한 방도에 두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러나 안으로는 부(部)와 부(府)의 여러 신하들이 예전대로 안일하게 지내면서 백성들을 구원하는 길로 나를 바로 이끌어 주지 못하였고, 밖으로는 지방 관리들이 탐욕에 젖어 나에게 백성들의 정상을 알리지 않았을 뿐 아니라 도리어 잔학하게 침해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근심과 고통을 호소할 수 없게 하였다. 

그리하여 왕왕 백성들이 생계를 잃고 앙상하게 여위어 어느 순간에 죽음의 구렁텅이에 빠질지 모르게 되고, 심지어 곤궁을 못이겨 도적이 되어 가지고 백주(白晝)에 항간에 달려들어 노략질을 제멋대로 해대는데, 농사를 망쳐 기근이 든 해이면 횡포하기가 더욱 심하였다. 

... 짐이 우선 자신을 반성하고 자책하고서 그에 기초하여 청렴과 근면, 공정과 신의로써 백성들을 편안하게 만드는 데 대한 내용으로 8자의 글을 직접 써서 내려보내니, 이것을 가지고 경계하고 힘써라.

아! 여러 신하들은 이것을 걸어 놓고 해와 달처럼 밝히고, 이것을 받들어 쇠와 돌처럼 굳게 지킬 것이다. 청렴한 지조를 지켜 이익을 보면 의리를 생각하며, 직무에 근면하여 성의를 다하며, 마음을 공정하게 가짐으로써 한쪽에 편중하는 일을 없애며, 명령에서 신의를 지켜 법과 기강의 날을 세울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고질적인 병통을 없애고, 도적이 사라지게 하며, 의식(衣食)을 넉넉하게 하고, 예의의 기풍을 일으켜 세워, 백성들이 부부간의 안락을 누리게 하라. 만일 감히 어기는 경우에는 나라의 떳떳한 법이 있을 것이다. 백성들도 각기 자기의 본분을 생각하고 농사와 상업에 힘씀으로써 생계를 넉넉하게 만들고, 학업에 힘씀으로써 어진 마음을 회복하고, 충성과 공경, 효성과 우애를 다하라. 아버지는 아들을 권면하고, 형은 아우를 권면하고, 벗은 벗을 권면하고, 이웃은 이웃을 권면하여, 모두 안락의 경지에 이르도록 도모하면서 죄에 빠지는 일이 없도록 하라.  아! 모든 관리들과 전체 백성들은 한마음 한뜻으로 짐의 지극한 뜻을 본받고, 나라와 더불어 밝은 세상을 같이 이룩하여 태평성세의 복을 길이 누려야 하기 때문에 칙유한다."

이어서 고종은 조령(詔令)을 내렸다. 

"옛날 우리 영묘(英廟) 때에 영조 임금이 직접 쓴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니 근본이 든든해야 나라가 편안하다.〔民惟邦本本固邦寧〕’는 내용의 여덟 글자를 각 관청의 벽에다 걸었는데, 지금까지도 그 훌륭한 글이 해와 달처럼 빛을 뿌리고 있다.

짐이 지금 이처럼 신하들과 백성들에게 칙유(勅諭)하면서 ‘청렴과 근면, 공경과 신의로써 백성들을 편안하게 만들라〔廉勤公信以安斯民〕’는 여덟 글자를 직접 써서 내려보낸 것도 선대를 잇는 뜻에서 출발한 것이다.

정부에서는 서울과 지방의 각 관청들에 신칙(申飭)하여 이 글을 새겨 청사(廳舍)의 벽에 걸어 놓고 늘 보며 조심하면서 그대로 지켜나가 어김이 없도록 하라." (고종실록 1904년 5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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