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사 김일손의 상소 26개 조목 중 16번째는 “선비를 기용하는 데는 먼저 수령으로 시험 삼아 쓰고, 권선징악의 법을 밝히소서”이다.

“예전에 처음 벼슬에 나아가는 선비를 반드시 먼저 수령으로 부임시킨 것은 모든 어려운 것을 두루 경험해 보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신은 초야(草野)에 있을 때 제 딴에는 백성의 일을 갖추어 안다고 여겨왔으나, 본도(本道 충청도)에 부임해 와서 보니, 지난날 미처 알지 못한 바가 역시 많은데, 하물며 부귀한 가문에서 벼슬길에 나간 자들이야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신은 원하옵건대, 대소 관료를 반드시 먼저 수령으로 시험 삼아 임용하고, 승문록(承文錄)에 구애됨이 없이 백성의 일을 두루 알게 한 뒤에 쓰도록 하소서.

한나라의 황패(黃霸)는 고을[郡]을 잘 다스려 재상(宰相)이 되었고, 송(宋)나라의 전약수(錢若水)는 원옥(冤獄)을 잘 다스려 통판(通判)으로서 일약 참정(參政)에 승진되었으니, 옛날에는 다 그러하였습니다.

우리 조선에 임수창(林壽昌)이 밀양(密陽) 고을을 다스리는 데 공적이 있어, 선왕께서 일찍이 부제학(副提學)을 임명하고자 하여 옥서가 있는 문서로 표창하였고, 덕망으로 잘 다스린 손창(孫昌)에게는 건너뛰어 품계를 올려주었고, 신담(申澹)은 백성들이 생사당을 지어주었으니, 이런 사람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염능오인(廉能 청렴하고 재능있는 사람을 우대함)의 법은 폐하고 십고승자(十考陞資 10가지를 고려하여 높은 품계에 오름)의 법을 세웠으나, 어진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이 함께 침체되었습니다. 선왕께서 한 번 감사에게 명령하여 근무성적 평정 외에 별도로 승진 또는 파면하기도 하였습니다. 전하께서 이런 것으로써 법을 삼아 청렴하고 공평하여 백성에게 혜택을 준 자가 있거든 비록 낮은 벼슬에 있더라도 발탁하고, 탐욕이 많아서 법을 범하는 자는 비록 작은 것이라도 용서하지 않으신다면, 관리들이 분발하기를 다툴 것이며, 백성들은 그 혜택을 입을 것입니다. 이것이 선왕의 법을 따르는 것입니다.”

승진에 있어 청렴과 능력을 강조한 김일손. 혜안이 놀랍다.

상소 17번째 조목은 “금령(禁令)을 완화하고 외관(外官)을 넉넉하게 대우하소서”이다.

“우리 조선의 법이 엄하긴 하나, 법을 준행하는 관리가 없으므로 그 법이 행하여지지 않고 있습니다. 행하지 못하는 것은 금령이 너무 엄하여 실정에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비록 마음먹고 받들어 시행하고자 하는 자도 한 번 법을 어기게 되면 꼭 하간(河間) 여자의 음행과 같아서 다시는 멈출 수가 없습니다.”

하간(河間) 여자의 음행은 당나라의 유종원(柳宗元 773∼819)이 지은 《하간전(河間傳)》에, "하간 땅에 사는 계집이 당초에는 정조를 지켰으나, 일가 계집의 꼬임에 빠져서 한 번 실행(失行)한 후에는 다시 개과하지 못하고, 점점 심하여 몸을 망쳤다."는 사실에서 나왔다. 여자가 한 번 몸을 망치면 백번 천번도 망친다는 의미이다.

상소는 이어진다.

“수령(守令)의 사사 노비는 그 수를 넉넉하게 하여줌이 마땅합니다. 옛날 군대가 전쟁에 나갔을 때 그들의 처가 몸소 북채를 잡고 북을 쳐서 패전을 면하게 한 예가 있습니다. 지금 중국에서는 장수와 사졸이 비록 멀리 떨어진 지역에 가더라도 처를 데리고 갑니다. 남녀가 동거하는 것은 사람의 큰 욕정이니, 능히 금하지 못할 것입니다. 상질이 모진 병졸들이 장수를 가볍게 여겨 명령을 따르지 않는다면 끼치는 해가 매우 클 것입니다. 신은 원하옵건대, 3년 뒤에 장관(將官)이 사처(私妻)를 데리고 가는 것을 금하지 마소서.

중국 북위(北魏 B.C 386∼534)는 녹봉을 주지 않으므로 탐학(貪虐)한조사(朝士)들이 많았습니다. 지금 만호(萬戶)는 전함을 타고 바람과 물결 위에서 변방을 지키니, 그 직책은 가장 고되나 아무 수입이 없어서 처자를 부양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난폭한 자가 궁핍한 처지에 맞닥뜨리면 어찌 막 된 짓을 하지 않겠습니까. 신이 생각컨대, 별시(別侍)는 갑사(甲士)보다 높은데 녹(祿)만 있고 보포(保布)는 없으며, 갑사(甲士)는 별시(別侍)보다 재능이 못하나 녹도 받고 보포도 받으니, 어찌 한쪽만 우대하십니까. 사람을 박해하면서 군포를 빼앗고 또한 후한 녹봉도 먹으니, 여러 부류 가운데 가장 넉넉한 자는 갑사(甲士)입니다. 갑사 6품 이상은 퇴직후 녹봉을 조금 받는 자리로 돌리고 그 재원에서 취하여 만호(萬戶)의 녹(祿)에 표준하여 주고, 그 남는 것을 미루어 갑사의 재주 있는 자에게 주면, 국비의 결손이 없고, 만호(萬戶)가 청렴해 질 여지가 있을 것입니다."

이화장 (성종이 김일손에게 살도록 빌려준 집인데 김일손은 1495년 충청도사를 한 후에 반납했음) (사진=김세곤)
이화장 (성종이 김일손에게 살도록 빌려준 집인데 김일손은 1495년 충청도사를 한 후에 반납했음) (사진=김세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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