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어촌방송=김우형 논설위원] 요즘 농어민의 얼어붙은 마음이 좀처럼 풀리지 않고 있다. 한미FTA 개정 협상과 일명 ‘김영란법’ 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는 ‘화병’ 때문이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도 이낙연 국무총리도 김영록 농식품부 장관도,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도 다들 ‘김영란법’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농어민의 고충을 풀어주겠다고 ‘호언장담’해서 한 때나마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농어민들로서는 ’일장춘몽‘의 허무함에 빠지고 말았다. “차라리 말하지나 말 것을...”

지난 27일 국민권익위원회는 전원위원회를 열어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상의 '3·5·10'(식사 3만원·선물 5만원·경조사비 10만원 상한선) 규정에 대한 조정을 내용으로 하는 시행령 개정이 격론 심의 후 표결 끝에 찬성 1명 부족으로 부결됐다.

특히, 농축수산물에 한해 선물 상한액을 기존 5만원에서 10만원으로 상향 조정하는 내용이 수포로 돌아간 것이다. 김 장관은 지난 추석 때, 이 총리는 내년 설 때 혜택 보도록 하겠다고 호언장담했던 내용이다.

이런 정부의 계획은 이번 국민권익위원회의 결정으로 인해 차질을 빚게 됐다. 정부는 3·5·10 조항 개정을 재추진한다는 방침이지만 국민 정서상 재심 부담이 커서 연내 개정은 불투명하다는 관측이다.

이와 관련 청와대는 28일 국민권익위원회의 개정안 부결에 대해 “권익위의 독립적 결정이니 존중한다”고 짧은 입장만 내놨다.

FTA로 인한 피해도 농축수산업계가 가장 크고 ‘김영란법’ 시행으로도 매출 급감 등 가장 타격이 심한 것도 농축수산 농가이다 보니 지난해 9월 시행 전부터 반발이 심했다. 그러나 당시에는 그래도 1년은 시행해봐야 되지 않겠느냐는 여론에 밀려 눈물을 머금고 지금까지 오게 된 상황에서 농어민들에게 그 막대한 피해를 보전하거나 감당할 대안이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이에 따라 촛불혁명으로 이루어진 정권교체와 함께 ‘김영란법’에서 농축수산물의 예외를 주장하며 법 개정을 촉구하는 농축수산업계의 ‘이유있는 주장’에 대해 십분 이해되고 또 공감하게 되는 이유가 여기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처절한 요구에도 불구하고 ‘김영란법’ 시행령 개정은 일단 부결됐다. 대통령, 국무총리 장관 등 이 나라의 최고 정책결정권자들이 모두 수정할 필요가 있다는데도 말이다. 농어민의 존재감이 없어서 일까? 농어업의 가치가 없어서 일까?

이렇게 된 이유는 아마도 ‘김영란법’의 입법 취지가 우리사회를 크게 짓누르고 있어서 일 것이다. 농축산물 예외 취지보다 ‘청렴사회’라는 가치가 더 크다는 이유에서다. 우리나라가 얼마나 부정부패가 만연해 있으면 그렇겠는가 싶다.

국제투명성기구(TI)의 평가에서 한국은 지난해 부패인식지수가 100점 만점에 53점으로 175개국 가운데 52위에 머물렀고, 이는 전년 37위에서 15단계 하락한 것으로 1995년 조사 이래 가장 큰 폭의 하락이었다.

또한, 홍콩에 있는 정치경제위험자문공사(PERC)는 2015년 조사에서 한국이 아시아 선진국 가운데 최악의 부패국가라는 충격적인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가장 최근 발표된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의 2017년 평가에서는 한국이 정부 투명성 평가 항목인 뇌물공여와 부패비리 분야에서는 국가경쟁력 조사 63개국 가운데 전년대비 6단계 하락한 40위에 머물렀다.

이렇게 매년 이어지는 국제사회의 수치스러운 평가를 마주하면서 우리 국민들이 농어민의 생존 못지않게 ‘김영란법’이 추구하는 ‘청렴사회’라는 가치에 대해 얼마나 목말라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와 함께 우리 농축수산업계가 국민에 대한 설득이 부족하지나 않았는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또한 농축산물의 범위, 수입산 포함문제, 가공제품 구분 곤란 등 예외조치 실행에 따른 정밀한 준비 부족과 방심으로 이번 부결 사태를 맞았다는 지적 또한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동안 문재인 정부 들어와서 농어민의 기대감만 잔뜩 높여 놓고, ‘김영란법’이라는 국민 정서법 개정에 너무 쉽게 접근함으로써 국론 분열을 초래하고 농업을 국민으로부터 점차 밀어내는 역효과를 초래하지나 않을지 우려되고 있다.

향후 ‘김영란법’ 개정 문제의 결과는 정부나, 국회나 예단하기 어렵게 됐다. 이번 ‘김영란법’ 시행령 개정 동력으로 우리 농산물 품질 제고와 마케팅 노력를 통해 우리 농축산물을 제돈 내고 더 많이 소비할 수 있도록 농어민 스스로 각고의 노력이 더욱 절실해졌다.

이와 함께 소비자와 국민들 스스로 ‘김영란법’에서 농축수산물에 대한 예외적 조치를 주장할 수 있도록 친국민적 농업 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농축산물 예외보다는 현실적인 전체 한도 조정이 현실적, 합리적 접근 방법일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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