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역사 2부 – 무오사화 116회 김종직, 도연명 술주시에 화답하는 시를 짓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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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역사 2부 – 무오사화 116회 김종직, 도연명 술주시에 화답하는 시를 짓다 (1)
  • 한국농어촌방송 기자
  • 승인 2021.03.08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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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손(1464∽1498)의 스승 김종직(1431∽1492)은 도연명(365∽427)의 술주시를 읽고 ‘도연명의 술주시에 화답하는 시(「화도연명술주시[和陶淵明述酒]」)’를 지었다. 그런데 김종직은 시를 지으면서 서문을 썼다.

서문은 「연산군일기」 1498년 7월 17일 4번째 기사에 나온다.

“나는 젊어서 술주시(述酒詩)를 읽고 그 뜻을 알지 못했는데, 뒤에 도연명의 시에 화답한 탕동간(湯東磵)의 주소(註疏 본문에 해석을 붙인 것)를 보고서야 소상히 영릉(零陵)을 애도하는 시임을 알게 되었다. 아아, 탕공(湯公)이 아니었다면 유유(劉裕)의 찬시(纂弑)한 죄와 도연명의 충분(忠憤) 어린 뜻이 거의 숨겨질 뻔하였도다.

그 은어(隱語)를 쓰기 좋아한 것은 바로 도연명의 생각에, 당시는 유유가 한창 날뛰는지라 그의 힘이 용납될 수가 없는 형편이니, 그는 다만 몸이나 깨끗하게 할 뿐이요, 언어(言語) 가운데 그런 일을 드러내서 멸족(滅族)의 화를 자초해서는 안 된다고 여겼던 때문이나, 지금의 나(김종직을 말함)는 그렇지 않다.

나는 천년 뒤에 태어났으니 어찌 유유가 두려울소냐. 그러므로 유유의 흉역(凶逆)을 모조리 폭로하여 탕공의 주소(注疏) 끝에 붙이노니, 후세의 난신적자(亂臣賊子)가 나의 시를 보고 두려워 할 줄을 알게 된다면 이 또한 외람되이 『춘추(春秋)』의 일필(一筆)에 견준다하리라.” 하였는데, 그 시(詩)는 없어졌다.”

김종직이 도연명의 「술주」시를 이해하는 데 있어 도움을 준 사람은 송나라 때의 학자인 동간(東澗) 탕한(湯漢)이다. 그는 이 탕동간의 주소(注疏 해석)를 보고 나서야 이 시가 영릉(零陵)을 애도한 시라는 것을 알았단다. 영릉(零陵)은 동진(東晋 317-420)의 공제(恭帝)를 가리킨다. 그는 유유(劉裕 363~422)에게 선위의 형식으로 왕위를 빼앗기고 끝내 목숨까지 빼앗긴 비운의 군주였다.

남조 송(宋)나라의 태조(太祖)가 된 유유는 공제(恭帝) 원희(元熙) 원년(元年 419년)에 공제를 폐하여 영릉왕으로 삼았다가 그 다음 해에는 공제를 시해하고 제위(帝位)를 찬탈하여 국호를 송(宋)으로 했다.

이어서 김종직은 이 시를 지은 이유는 두 가지라고 밝힌다. 첫째, 유유(劉裕)가 왕위를 찬탈하고 동진(東晋)의 공제(恭帝)을 죽인 죄와 도연명이 공제의 죽음을 애도한 뜻을 드러내기 위해서이고, 둘째 유유의 흉역한 행위를 고발하여 후세의 난신적자(亂臣賊子)들이 이 시를 보고 두려워하게 하기 위함이라면서 공자가 지은 역사서 『춘추』를 언급한다.

그런데 「연산군일기」에는 김종직의 시(詩)는 없어졌다고 적혀 있다.

다행히도 한국고전번역원의 ‘한국고전 종합DB’의 점필재집(시집 제 11권)에는 ‘도연명의 술주시에 화답하다[和陶淵明述酒]’시가 수록되어 있다.

그러면 김종직의 시를 읽어보자.

솥에도 오히려 귀가 있는데 鼎鐺猶有耳

사람이 어찌 듣지를 못하리오 人胡不自聞

임금과 신하는 존비가 달라서 君臣殊尊卑

하늘과 땅의 자리가 나누어졌네 乾坤位攸分

간악한 이름은 반역을 한 때문이라 奸名斯不軌

멸족되어 후손이 끊어져 버리고 赤族無來雲

당시에 사마씨는 남으로 건너갔으니 當時馬南渡

중원에는 무덤만 남았을 뿐이었네 神州餘丘墳

천심은 아직 떠나지 않았기에 天心尙未厭

마치 새벽이 두 번 온 듯했는데 有若日再晨

처중이 맨처음 난을 일으키었고 處仲首作孼

이리 새끼는 길들일 수 없었으며 狼子非人馴

악명을 남긴 어리석은 사나이는 蚩蚩遺臭夫

자식에게 그 몸을 죽게 하였네 斅兒戕厥身

네 올빼미가 무슨 공이 있으랴 四梟者何功

하늘의 보답을 참으로 자상했도다 天報諒殷懃

온화하였던 안제와 공제는 婉婉安與恭

바로 이 유씨들의 임금이었는데 乃是劉氏君

푸른 하늘을 속을 수 있다고 여겨 蒼天謂可欺

높이 요순의 훈풍을 끌어댔으나 高把堯舜薰

선위를 받는게 끝내는 역적이였네 受禪卒反賊

사씨는 글을 교묘하게 꾸미어 史氏巧其文

사령이 응했다고 핑계를 대서 諉以四靈應

태산에 봉선하고 분음에 제사하니 宗岱且祠汾

거짓 천명을 만들 수는 있으나 僞命雖能造

세상의 혼란은 의당 분분하였지 世亂當紛紛

천리란 본디 순환하길 좋아하기에 好還理則然

소가 마침내 천친을 멸하였도다 劭也蔑天親

술주시에는 은어가 하도많으니 述酒多隱辭

팽택에게 비할 자가 없겠구려 彭澤無比倫

시는 중국 역사와 은유가 가득하여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다음 회부터 한 구절 한 구절씩 음미해보자.

밀양시 추원재 (김종직 생가) (사진=김세곤)
밀양시 추원재 (김종직 생가) (사진=김세곤)
추원재 안내판(사진=김세곤)
추원재 안내판(사진=김세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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