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 이토 히로부미와 독대하다 (5) 

고종은 외교권 이양은 매우 중대한 일인만큼 대신들의 의견을 묻고 백성들의 뜻도 살펴야겠다고 하면서 우회적으로 거절하였다.
 
이에 이토는 정부 대신들의 의견을 묻는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전제 군주국가의 국왕이 백성들의 뜻을 살피겠다는 것은 인민을 선동하여 일본에 저항하려는 저의로 볼 수밖에 없다고 항의했다.

이토 : 귀국은 전하의 친재로 모든 것을 결정하는 군주전제국이 아닙니까? 그리고 인민의 의향 운운이라 했지만 필시 이는 인민을 선동하여 일본의 제안에 반항을 시도하려는 생각이시라 추측됩니다. 
요사이 유생 무리를 선동해서 상소하게 하여 비밀리에 반대운동을 시키고 있다는 것은 일찍이 우리 군대가 탐지한 바입니다.   

이토의 항의에 고종은 자세를 낮춘다. 

고종 : 아니! 아니 결코 그런 뜻이 아니다. 결코 민론을 듣겠다는 뜻이 아니다. 우리나라에 중추원이라는 것이 있다. 중대한 일은 일단 그 의견을 듣는 제도이다. 그러므로 짐의 정부에 자순함과 동시에 중추원에도 역시 자순하려는 뜻에 지나지 않는다.  

고종은 민의를 듣는 것이 아닌 중추원의 의견을 듣는 것이라고 꼬리를 내린다. (그런데 고종은 15일에 이토와 면담한 후 외교권 이양 문제를 중추원의 의견을 듣지 않았다. 중추원과 상의한 기록이 없다.) 
 
이토 : 폐하께서 내각 신료에게 자순하여 정부의 의론(議論)을 하시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폐하는 책임을 정부에 돌리고 정부는 또 그 책임을 폐하에 돌려 군신이 서로 그 책임을 회피하여 쓸데없이 그 결정을 미루는 모양새는 귀국을 위해 손해가 될 뿐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고종와 이토는 우회적인 거절과 노골적인 강압이 몇 번이나 반복되었다.  

면담은 어느덧 4시간째로 접어들었다. 마침내 고종은 외부대신끼리 실무 협의 후에 그 결과를 정부에 제의하고, 정부가 의견을 결정한 후에 짐이 재가하겠다고 이토에게 말했다. 

이토는 협상을 신속히 끝내주라고 독촉하자, 고종은 속히 그 조치를 취하겠다고 답하고 장장 4시간에 걸친 단독회담이 끝났다.  


11월 16일 오후 3시에 일본 공사관은 고종과 이토의 단독회담을 ‘이토 대사의 한국 외교권 일본 위임 필요성 진주(陳奏) 건’이라는 제목으로 일본 외무성에 전보(電報)했다.   

“이토 대사는 어제 좌우 측근을 물리치고 약 3시간 반 이상에 걸쳐 대화가 있었다. 고종 황제는 먼저 일·러 교전이래 일본이 한국에 대하여 취한 조치로  한국이 처한 곤란한 상황을 부연하고 애소적(哀訴的) 말을 하여 대사의 사명 조건을 완화할 것을 극력 애쓰는 듯하였다. 
 
대사는 이와 같은 정실적인 얘기에 말려 들어가는 것을 피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 ‘종래 한국의 지위와 현재의 추세에 대해 논급하고 나아가서 동양의 평화를 항구히 유지하려면 한국의 외교는 일본 정부가 대신 함이 부득이하다는 상황을 말하고 또 그와 같이 대외관계를 우리나라가 인수하는 것은 일·한(日·韓) 양국의 관계를 한층 공고하게 할뿐 아니라 오직 동양의 화란(禍亂)을 근절하고 한국 황실의 안녕과 존엄을 견지하여 국민일반의 행복을 증진하려는 선의적인 조치임을 의심치 않는다.’는 취지를 상세히 말했다. 

이에 고종 폐하는 이미 대세가 그러한 터에 감히 이를 절대로 거절하는 것이 다만 형식을 두고  몇번이고 형식보존설(形式保存說)을 애소(哀訴)하여 그 곤란한 상황을 변명하자, 대사는 외교에는 형식, 내용의 구별이 있는 것이 없다. 따라서 형식을 남기고 내용을 규정하는 것 같은 일은 불가능에 속하고 또 일본 정부는 이것을 확정안으로 제출한 이상 이미 촌호(寸毫)도 변개(變改)의 여지가 없음을 말해 이를 거부하고 조약안을 황제께 보였다. 또 이로써 당국 대신으로 하여금 우리 대표 간에 빨리 협정시키시는 것이 한국을 위하여 오히려 기회를 얻는 것이라고 진언(奏言)하자, 황제는 마침내 대사의 뜻을 번복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여하튼 외부대신에 명하여 협의의 길을 강구하겠다는 뜻을 승낙하셨다.

또한 이토 대사는 오늘 오후 각 대신, 기타 중요한 원로대신을 숙소  (손탁호텔)로 초청하여 조약 내용에 관하여 설명을 할 작정이다. 당국의 사태로서 비밀누설은 결국 면할 수 없는 바입니다. 이번의 우리 제안과 같은 것도 이미 궁중과 각 대신이 알게 된 이상은 외국 사신 중 이를 탐지하여 본국 정부에 전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므로 일본 정부에서도 상응한 조치를 하시기 바랍니다.”

결국 고종은 이토로부터 어느 하나도 양보를 얻어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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