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사늑약 체결

                                                이토와 정부 대신들 (중명전에 전시) 
                                                이토와 정부 대신들 (중명전에 전시) 

1905년 11월 17일 (금) 오후 4시경 시작된 어전회의는 7시가 넘어서 끝났다. 고종은 참정대신(총리) 한규설과 외부대신 박제순을 다시 불러 특별지시를 하였다. 

잠시 후 대신들이 모두 휴게소에 모였다. 이때 하야시 일본 공사가 한규설에게 어전(御前) 회의 결과를 물었다. 한규설이 대답하기를, ‘폐하께서는 협상하여 잘 처리하라는 뜻으로 지시하셨으나, 우리 8인은 모두 반대하는 뜻으로 거듭 말하였습니다.’라고 태연히 대답하였다. 

이는 중대한 협상을 앞두고 스스로 협상전략을 상대방에게 완전히 노출시킨 꼴이다. 일본은 회유와 협박까지 하는 마당에 이렇게 협상전략을  노출했으니 참 어이가 없다.  

한규설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하야시 공사가 그를 질책하고 나섰다. 
“귀국(貴國)은 전제국가이니 폐하가 협상하여 잘 처리하라는 하교가 있었다면 조약을 순조롭게 진행하여야지, 여러 대신이 모두 폐하의 명을 어기니 어찌된 일입니까? 이러한 대신들은 결코 조정에 두어서는 안 되며 특히 참정대신과 외부대신은 그만두게 해야 하겠습니다.” 

그러자 한규설이 몸을 일으키면서, “공사가 이렇게 말하니 나는 이 자리에 참석할 수 없습니다.” 하였다. 

이에 여러 대신들이 만류하면서 “공사의 한마디 말을 가지고 자리를 피한다면 그것은 사리와 체면에 매우 온당치 못합니다.” 하였다. 그러자 한규설은 다시 제자리에 가서 앉았다. 

그런데 대신들이 협상 체결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하자, 하야시는 매우 다급하였다. 그는 이토 히로부미에게 긴급 연락하였다. 

오후 8시쯤에 이토 히로부미가 조선 주둔군 사령관 하세가와 요시미치와 일본군 헌병 사령관 그리고 군사령부 부관들을 거느리고 황급히 수옥헌(지금의 중명전)으로 들어왔다. 

이미 수옥헌 안팎은 중무장한 일본군이 이중 삼중으로 겹겹이 포위하여 공포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었다. 
이토는 하야시로부터 사태의 경과를 자세히 들은 다음 궁내부대신 이재극을 통해 고종에게 알현을 여러 번 요청하였다. 고종과 직접 담판하려는 것이었다.
 
이윽고 궁내부대신 이재극이 돌아와서 “짐(朕)이 이미 각 대신에게 협상하여 잘 처리할 것을 허락하였고, 또 짐이 지금 목구멍에 탈이 생겨 접견할 수 없으니 모쪼록 잘 협상하라.”는 성지(聖旨)를 전하였다. 이재극은 또 참정대신 이하 각 대신에게 고종의 지시를 알렸다. 

그런데 “짐이 이미 각 대신에게 협상하여 잘 처리하도록 허락하였다.” 는 어명은 고종이 조약 체결 권한을 대신들에게 위임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매우 위험한 발언이었다.   

고종의 말이 전해지자 이토는 곧 참정대신 한규설에게 토의를 시작하자고 요청하고 회의를 주재했다.  

이토는 먼저 참정대신에게 말했다. 

“각 대신들은 어전회의의 경과만 말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참정대신은 무엇이라고 아뢰었습니까.” 

한규설 : 나는 다만 반대한다고만 상주(上奏)하였습니다. 
이토 :  무엇 때문에 반대한다고 말하였는지 설명하여야 하겠습니다.
한규설 : 설명할 것도 없이 반대일 뿐입니다.  

다음으로 이토는 외부 대신에게 물으니 박제순이 대답하였다. 

“이것은 명령이 아니라 바로 교섭이니 찬성과 반대가 없을 수 없습니다. 내가 현재 외부대신의 직임을 맡고 있으면서 외교권이 넘어가는 것을 어찌 감히 찬성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이토 : 이미 협상하여 잘 처리하라는 폐하의 명령이 있었으니 어찌 칙령(勅令)이 아니겠습니까? 외부대신은 찬성하는 편입니다. 

다음으로 이토는 민영기에게 물었다. 

민영기 : 나는 반대입니다. 
이토 :  절대 반대입니까?
민영기 : 그렇습니다. 
이토 : 그렇다면 탁지부 대신은 반대입니다.   

다음으로 법무대신 이하영에게 물었다. 

이하영 : 지금의 세계 대세와 동양의 형편 그리고 대사가 이번에 온 의도를 모르는 바가 아닙니다. 우리나라가 외교를 잘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귀국이 이처럼 요구하는 것이니 이는 바로 우리나라가 받아들여야 할 문제입니다. 그러나 이미 지난해에 이루어진 의정서(議定書)와 협정서(協定書)가 있는데 이제 또 외교권을 넘기라고 합니까? 우리나라의 체통에 관계되는 중대한 문제이니 승낙할 수 없습니다.  

이토 : 그렇지만 이미 대세와 형편을 안다고 하니, 이 또한 찬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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