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숙자 문학박사
정숙자 문학박사

[한국농어촌방송/경남=정숙자 문학박사] 가을 닮은 하늘은 잔잔한 호수와 같고 그 색은 청아한 에메랄드빛을 닮아있다. 그래서인지 내 마음은 넉넉해지고 풍요로워진다. 잔잔한 바람도 콧잔등의 땀을 건드려주고 걷는 걸음마다 치맛자락이 나풀거린다. 10대 소녀의 단발머리가 생각나도록 짙은 녹색은 마지막 그들의 향기를 뿜어내고 있다. 여름 동안은 더위에 지치고 사는 것에 지쳐서 후각도 시력도 챙기지 못하다가 이 가을에 조금씩 그 기능을 회복하고 있는 것 같다. 자연이 볼 때는 간사한 인간이라고 야단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어쩌랴! 인간이 가지는 특권의 이기적인 마음인 것을.

그래서 나는 가을을 핑계 삼아 나쁜 년이 되어 보기로 한다. 가을의 풍경에 젖어서 타인들도 나의 나쁜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그냥 쉬이 넘어갈 것 같아서 말이다.

언젠가 살면서 사람들은 내 손에 쥔 떡을 한 입 밖에 먹지 못했는데 갈취당하는 일을 겪을 때가 있다. 처음에는 너무 당혹스러워서 놀라고 두 번째는 나의 부주의에 소심해지다가 결국에는 상대의 당당함에 치욕스럽기까지 하다. 오히려 상대가 미안한 얼굴이라도 한다면, 설사 그 얼굴이 가식이더라도 덜 억울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다른 손에 옮겨간 떡은 알지 못할 것이다. 자신이 그 손에서 버려질 때까지 떡으로서의 가치가 하늘을 찌르고 있을 것이라고 오해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자신을 잡고 있는 손이 영원히 자신의 것이라고 떡은 자만할 것이다.

그러면 떡을 빼앗긴 우리는 낚아채간 손을 용서하지 말아야 하는지 그 떡을 이해해야 하는지 갈림길에 서게 될 것이다. 내 생각에는 떡은 내가 버리면 될 것이다. 어차피 떠난 떡을 다시 되찾는다고 해도 이미 제맛을 상실하고 급기야 이상한 냄새까지 날지도 모르고 떡으로서의 가치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면 허락도 없이 내 떡을 갈취한 그 손은 용서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극단적인 생각에 도달하게 되면 적극적인 방법으로는 손목을 잘라 버리는 것이고 소극적으로는 그 손목에 병균이 침투해서 서서히 손의 기능을 상실하게 바라는 것이다. 세상이 미쳐 날뛰기를 거듭하더니 손목에 생긴 병균도 그 뻔뻔함에 세력을 잃어가기도 한다. 하지만 이 세상이 그나마 땅 위에서 당당하게 설 수 있는 것에는 정의가 있기 때문이라고 나는 강하게 믿고 싶어진다.

오늘도 갈망한다. 그 손목을 작살 낼 위대한 병균이 다시 생겨주기를 바란다. 가을아 미안해, 이 좋은 바람 부는 날 나는 나쁜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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