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사오적의 변명 상소 (2) 

고종의 길 (덕수궁에서 러시아 공사관 가는 길)  
고종의 길 (덕수궁에서 러시아 공사관 가는 길)  

 이완용 등은 1905년 12월 16일의 변명상소에서 ‘조약 체결의 전말’에 대하여 자세히 기술하였다.  (고종실록 1905년 12월 16일)
   
11월 16일에 손탁호텔에서 이토와 대화, 11월 17일 오전 일본 공사관에서 일본공사와 연석회의, 그리고 오후에 중명전에서 고종과 대신들의 회의를 자세히 적었다. 여기에서 고종과 대신들의 회의 내용을 살펴보자. 

“고종 : 우선 늦추는 것이 좋겠다. 

이완용 : 우리 여덟 사람이 막아내는 것이 과연 쉬운 일이겠습니까? 그러나 지금 일본대사가 폐하를 뵐 것을 굳이 청하는데 만약 폐하의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다면 국사(國事)를 위하여 진실로 천만다행일 것이지만, 만일 너그러운 도량으로 할 수 없이 허락하게 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런 부분에 대하여 미리 대책을 강구해야 할 것입니다. 

(이때 고종이 하교하신 것은 없었으며 여러 대신도 입을 다물고 말이 없었다) 

이완용 : 신이 미리 대책을 강구하려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만일 할 수 없이 허용하게 된다면 이 약관(約款) 가운데도 첨삭하거나 개정할 만한 매우 중대한 사항이 있으니, 가장 제 때에 잘 헤아려야 할 것입니다.  

고종 : 이토 대사도 말하기를 이번 약관에 대해서 만일 문구를 첨삭하거나 고치려고 하면 응당 협상하는 길이 있을 것이지만, 완전히 거절하려고 하면 이웃 나라 간의 좋은 관계를 아마 보존할 수 없을 것이라고 하였다. 이것을 가지고 미루어 보면, 그 약관의 문구를 변통하는 것은 바랄 수도 있을 듯하니 학부대신의 말이 매우 타당하다. 

권중현 : 지금 학부대신이 말한 것은 꼭 허락해 주겠다는 말이 아니라 한 번 질문할 말을 만들어서 여지를 준비하는 데 불과할 뿐입니다. 

고종 : 이런 것은 모두 의사(議事)의 규례이니 구애될 것이 없다. 

(이때 여러 대신이 아뢴 것이 모두 권중현이 아뢴 것과 비슷하였다)

고종 : 그렇다면  조약 초고(草稿)는 어디 있으며 그 가운데서 어느 것을 고치겠는가? 

(이때 이하영이 품속에서 일본대사가 준 조약문을 찾아내어 연석(筵席)에 내놓았다) 

이완용 : 신의 어리석은 소견으로는 이 조약 제3조 통감의 아래에 외교라는 두 글자를 명백히 말하지 않았는데, 이것이 훗날 끝없는 우환거리가 될 것이라고 봅니다. 또 외교권을 도로 찾는 것은 우리나라에 실지 힘의 유무(有無)와 조만(早晩)에 달렸다고 하였는데 지금 그 기간을 억지로 정할 수 없지만 모호하게 하고 지나갈 수는 없는 것입니다.  

고종 : 그렇다. 짐도 고쳐야 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첫머리의 글 가운데서 「전연 자행(全然自行)」이라는 구절은 지워버려야 할 것이다. 

권중현 : 신이 외부에서 얻어 본 일본 황제의 친서 부본에는 우리 황실의 안녕과 존엄에 조금도 손상을 주지 말라는 말이 있었는데 이번 약관은 나라의 체통에 크게 관련 되지만 여기에 대하여 한마디 언급도 없습니다. 신의 생각에는 이것도 응당 따로 한 조목을 만들어야 하리라고 봅니다. 

고종 : 과연 옳다. 농상공부 대신의 말이 참으로 좋다. 

회의가 거의 끝날 무렵에 여덟 사람이 똑같이 아뢰었다. 

‘이상 아뢴 것은 실로 미리 대책을 강구하는 준비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러나 신들이 물러나가 일본대사를 만나서, 안 된다는 한마디 말로 물리쳐야겠습니다.’ 

고종 : 그렇기는 하지만 조금 전에 이미 짐의 뜻을 말하였으니 잘 조처하는 것이 좋겠다.”


여덟 대신들이 “일본대사를 만나서 안 된다는 한마디 말로 물리치겠다.”고 강한 의지를 표명했지만, 고종이 “그렇기는 하지만 조금 전에 이미 짐의 뜻을 말하였으니 잘 조처하는 것이 좋겠다.”라고 하교한 것은 무슨 의미인가? 이는 ‘거절이 아닌 협상을 잘하라.’는 의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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