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사오적의 변명상소 (3) 

 

을사늑약 강제 체결 1905 (덕수궁 중명전)
을사늑약 강제 체결 1905 (덕수궁 중명전)

 1905년 12월 16일, 을사오적의 상소는 계속된다.  

“우리 8인(人)이 일제히 물러나 나오는데 한규설과 박제순은 폐하의 명을 받들고 도로 들어가서 비밀리에 봉칙(奉勅)하고 잠시 후에 다시 나와 모두 휴게소에 모이니, 일본공사가 어전(御前)회의에서 어떻게 결정되었는가를 물었습니다. 

한규설 : 우리 황상 폐하께서는 협상하여 잘 처리하라는 뜻으로 하교하셨으나, 우리들 8인은 모두 반대하는 뜻으로 복주(覆奏)하였습니다.

일본공사 : 귀국(貴國)은 전제국(專制國)이니 황상 폐하의 대권(大權)으로 협상하여 잘 처리하라는 하교가 있었다면 나는 이 조약이 순조롭게 이루어질 것으로 알지만 여러 대신은 정부의 책임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하여 한결같이 군명(君命)을 어기는 것을 주로 삼으니 어찌된 일입니까? 이러한 대신들은 결코 묘당(廟堂)에 두어서는 안 되며 참정대신(총리)과 외부대신은 더욱 체차(遞差)해야 하겠습니다. 

한규설(몸을 일으키면서 말하기를) : 공사가 이미 이렇게 말한 이상 나는 태연스럽게 이 자리에 참석할 수 없습니다. 

여러 대신(만류하면서 해명하기를) : 공사의 한마디 말을 가지고 참정대신이 자리를 피한다면 그것은 사체(事體)에 있어 매우 온당치 못합니다. 

그래서 한규설이 다시 제자리에 가서 앉았습니다. ”

이런 무례가 어디있나. 일본 공사가 참정대신과 외부대신을 체차하겠다니. 너무 어이가 없다.

상소는 이어진다. 
 
“조금 뒤에 이토 히로부미 대사가 군사령관 하세가와와 함께 급히 도착하였고, 헌병 사령관과 군사령부 부관(副官)이 뒤따라왔습니다. 일본 공사가 대사에게 전후 사연을 자세히 이야기하니 대사가 궁내부 대신 이재극에게 폐하의 접견을 주청한다는 것을 전해 주도록 여러 번이나 계속 요구하였습니다. 

이재극이 돌아와서 ‘짐이 이미 각 대신에게 협상하여 잘 처리할 것을 허락하였고, 또 짐이 지금 목구멍에 탈이 생겨 접견할 수 없으니 모쪼록 잘 협상하라.’는 성지(聖旨)를 전하였습니다. 이재극은  참정대신 이하 각 대신에게도 성지를 널리 퍼뜨렸습니다.”

고종이 대신들에게 협상하여 잘 처리하라는 성지는 무엇을 의미하는 가? 조약 협상 권한을 완전히 위임한 것인가? 이 부분은 나중에 을사늑약 무효 논쟁과 관련하여 두고두고 문제가 되었다.   

상소는 이어진다. 이토가 사회를 보면서 찬반을 묻는 진풍경을 자세히 설명한다. 이토는 참정대신 한규설은 반대, 외부대신은 찬성, 탁지부대신 민영기는 반대라고 정리하였다. 그런데 이완용이 찬성발언을 한 뒤에  대신들은 찬성으로 돌아섰다.  

 이완용의 발언을 읽어보자.  

“이번 일본의 요구는 대세 상 부득이한 것이다. 종전에 우리 외교의 변화가 심했던 탓으로 일본은 두 차례나 큰 전쟁을 치렀다. 일본은 더 이상 동양 평화를 위태롭게 할 수 없어 이번 요구를 제기한 것이다. 일본은 이번에는 반드시 목적을 관철하려고 할 것이다.
  국력이 약한 우리가 일본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을진대 원만히 타협하여 일본의 제의를 수용하고 우리의 요구도 제기하여 관철하는 것이 좋다. 자구(字句) 등은 다소 수정할 여지가 있는 것 같다.”

이토는 벌떡 일어나면서 “조약 중에 고칠 만한 곳은 고치면 되니, 과연 당신은 완전 찬성이요.”라고 크게 만족했다. 

이어서 권중현 · 이근택 · 이지용은 대체로 학부대신과 같은 뜻이라고 말하여 이토는 찬성으로 정리했다. (윤덕한 지음, 이완용 평전, 2012, p 218-219)

이윽고 이토는 궁내부 대신 이재극에게 말했다.  

“이미 삼가 협상하여 잘 처리하라는 폐하의 칙령을 받들었기 때문에 각 대신에게 의견을 물었더니 그들의 논의가 같지는 않지만 그 실제를 따져보면 반대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 가운데서 반대한다고 확실히 말한 사람은 오직 참정대신과 탁지부 대신 뿐입니다. 주무대신에게 성지를 내리시어 속히 조인(調印)하기 바랍니다.” 

이렇게 이토는 대신 8명 중 6명이 조약에 찬성하였다고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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