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사오적의 변명상소 (4) 

대한제국 역사 전시 (서울시 정동)
대한제국 역사 전시 (서울시 정동)

1905년 12월 16일에 이완용 등은 상소를 이어갔다. 

“이때 한규설이 의자에 앉아서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우는 모양을 지으니 이토 대사가 ‘어찌 울려고 합니까?’라고 말하였습니다. 

한참 있다가 이재극이 돌아와서 고종의 칙령을 전하였습니다.  

협상 문제에 관계된다면 지리하고 번거롭게 할 필요가 없다. 또 법부대신 이하영은 약관 중에 첨삭할 곳은 일본 대사, 공사와 교섭해서 바르게 되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 

각 대신 중 오직 한규설과 박제순이 가만히 있었고 나머지 대신들은 모두 자구(字句)를 첨삭하는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규설은 머리에 갓도 쓰지 않고 지밀(至密)한 곳으로 뛰어들었다가 발각되어 곧 되돌아 들어왔습니다. 

그때 양편에 분분하던 의견이 조금 진정되어 이토 대사가 직접 붓을 들고 신들이 말하는 대로 조약 초고를 개정하고 곧 폐하께 바쳐서 보고하도록 하여 모두 통촉을 받아 결국 조인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이 자리에서의 사실은 단지 이것뿐입니다.”

이렇게 이완용 등은 조약 체결과정을 상세하게 밝혔다. 자기변명이었다. 

 


“그런즉 신들이 때 어찌 감히 스스로 변명할 바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탄핵하는 사람들이 이 조약의 이면을 따지지 않고 그날 밤의 사정도 모르면서 대뜸 신 등 5인(人)을 ‘나라를 팔아먹은 역적’이요, ‘나라를 그르친 역적’이라고 하는데 이는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만일 이 조약에 대한 죄를 정부에 돌린다면 8인 모두 책임이 있는 것이지 어찌 꼭 5인만이 그 죄를 져야 한단 말입니까?

한규설로 말하면 수석 대신이었습니다. (...) 그의 본심을 따져보면 다만 죄를 면하기 위해 스스로 도모한 것에 불과합니다. (...) 또 반대한다고 말한 대신들도 처음에는 반대한다고 말하였지만 끝내는 개정하는 일에 진력(盡力)하였으니, 신들과 별로 경중의 구별이 없습니다.

그런데 무슨 연유로 걸핏하면 5인만을 들어 실제가 없는 죄명을 씌어 신들로 하여금 천지간에 몸 둘 곳이 없게 하는 것입니까? 

(...) 그리고 탄핵하는 글로 말하면 반드시 증거를 확실하게 쥐고서야 바야흐로 등철(登徹)할 수 있는데 저 무리들이 잡은 증거가 있습니까? 사실을 날조하여 남에게 죽을죄를 씌운 자는 의당 반좌율(反坐律)이 있는 것이 실로 조종(祖宗)의 옛 법입니다.”

이완용 등 5인은 자신들만 역적이 된 것이 억울하다고 주장한다. 사실 날조라는 것이다. 
     
상소는 마무리 단계이다.  

“무릇 위 일들은 폐하께서 환히 알기 때문에 관대히 용서하고 신들에게 죄를 더 주지 않았고, 파면시켜 줄 것을 아뢸 때에는 사임하지 말라고 권했고, 스스로 인책할 때에는 인책하지 말라고 칙유하셨습니다.” 


그랬다. 고종은 참정대신 한규설을 면직시켰지만, 법부대신 이하영과 농상공부대신 권중현의 사직 상소는 반려했다. 11월 22일에 고종은 외부대신 박제순에게 임시로 의정부 의정대신의 사무 서리(署理)러 임명하였고, 11월 28일에는 의정부 참정대신으로 승진시켰다. 
12월 8일에 고종은 학부대신 이완용에게 의정부 의정 대신 서리를 명하였고, 12월 13일에는 외부대신 사무 서리로 임명했다. 이게 고종의 이중성이다. 문책해야 할 을사조약 책임자를 중용하다니. 

상소는 이렇게 끝난다.  

“이는 진실로 신들의 몸이 진토가 되어도 기어이 보답하여야 할 기회이건만 저 무리들은 폐하께서 어떤 뜻을 지니고 있는지도 모르고 날로 더욱 떠들어대면서 치안에 해를 주고, 정령(政令)이 지체된다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으니 이것은 진실로 무슨 심보입니까?

삼가 바라건대, 폐하께서는 나라의 체통을 깊이 진념하시고 속히 법사(法司)의 신하에게 엄한 명을 내리시어 이런 혼란스런 무리들이 무리지어 일어나 터무니없는 말로 죄를 만들면, 모두 형률을 적용하여 징계함으로써 신들이 실제로 범한 죄가 없음을 밝혀 주신다면 얼마나 다행이겠습니까?”

이완용 등은 기고만장하다. 고종의 비호를 믿고 그들을 탄핵한 이들을 우습게 보고 있다. 

이에 고종이 비답하였다. 

"나라를 위해서 정성을 다하고 국사에 마음을 다하는 것은 신하라면 누군들 그렇게 하지 않겠는가마는, 혹 부득이한 상황으로 해서 그렇게 하지 못할 수도 있는데 여론이 당사자에게 책임을 돌리고 또한 해명을 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지금처럼 위태로운 때에는 오직 다같이 힘을 합쳐서 해나가야 될 것이니 그렇게 한다면 위태로움을 안정으로 돌려놓을 수도 있을 것이다. 경들은 각기 한층 더 노력함으로써 속히 타개할 계책을 도모하라."

고종은 참으로 어이가 없다. 을사오적을 비호하다니. 이게 고종의 이중성이었다.    

저작권자 © 한국농어촌방송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