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년 헤이그 특사 사건 (2)   

을사늑약 일지 (중명전 전시물)
을사늑약 일지 (중명전 전시물)

 1907년 6월 29일에 헤이그 특사들은 러시아 수석대표이며 만국평화회의 의장인 넬리도프 백작을 방문하여 일본의 강압에 의해 을사늑약을 체결 당한 사정을 설명하고 만국평화회의에 참가시켜 줄것을 요청하였다. 

하지만 넬리도프는 회의 참가에 대한 결정권이 형식상 초청국인 네덜란드 정부에 있다고 책임 회피하였다. 넬리도프는 러시아 정부로부터 한국 특사들의 회의장 입장을 거부하라는 훈령을 받은 상태였다. 

이러자 헤이그 특사들은 네덜란드 외무성을 방문해 외무대신 후온데스의 면담을 요청했다. 하지만 후온데스는 ‘각국 정부가 이미 을사조약을 승인하였고, 을사조약에 의해 외교권이 일본에게 위임되어 2년간이나 외국과 단교되어 한국은 독자적인 외교권 행사를 할 수 없으므로 회의 참가 자격이 없다. 또한 만국평화회의는 그런 정치적 문제를 다루는 장소가 아니다.’라는 이유로 면담을 거절했다. 

이후 특사들은 영국· 프랑스· 독일 · 청국의 대표들을 개별적으로 방문하여 협력을 요청했지만 모두 문전박대를 당했다.  

이들이 유일하게 만난 이는 미국 대표였다. 특사들은 미국 대표를 만나 아래와 같이 호소하였다.  

“1905년 11월 17일 일본이 체결한 을사조약은 황제의 동의가 없었고, 무력을 행사하였을 뿐만 아니라 국가의 법률과 관습을 무시해서 행동한 사실 등 국제법을 위반한 것이다. 우리 일행은 이처럼 억울한 사정을 호소하기 위해서 황제의 특사로 파견되었는데도 일본에 의해 회의 참석이 어려우니 호의적 배려가 있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미국 대표는 안타까움을 표시했지만 도와주지는 못했다.    

만국평화회의에 참가하는 것이 무산되자, 특사들은 만국 평화회의 44개국 대표들이 묵고 있는 숙소를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공고사와 명함을 돌리면서 일본의 불법행위와 한국의 실정을 알리는 데 주력했다. 

특사들의 이런 행동에 일본 측은 비상이 걸렸다. 일본 대표는 특사의 활동을 일본 외무성에 보고했고, 7월 2일에 일본 외무대신은 이토 통감에게 전보를 보냈다. 전문을 읽어보자 

“ (4) 제목 : 헤이그 도착 한국인 3명이 평화회의 각국 위원에게 보낸 문서에 관한 건  

내전(來電) 제122호 
발신 일본 외무대신 
수신 이토 통감 

윌리엄 스테트가 이곳에서 발행한 『쿠리어 드 라 컨퍼런스』는 오늘 신문지상에 한국 전 부총리외 2명을 6월 27일자로 평화회의 위원에 보냈다는 서면을 실었음. 

서면에는 우선 그 한국인을 평화회의 위원으로 한국 황제께서 파견한 자라는 것을 기재함. 

이어서 일본이 한국 황제의 뜻을 배반하고, 병력으로 한국의 법규 관례를 유린하고 동시에 한국의 외교권을 탈취한 결과 자신들이 한국 황제가 파견한 위원임에도 불구하고 평화회의에 참여할 수 없음은 유감이라는 점, 본 서면에서 일본의 비행(非行) 개략을 기록한 문서를 첨부한 점, 외국 위원들이 더욱 상세한 사항을 알기를 바라거나 한국 황제로부터 부여된 전권을 확인하기를 원한다면 그 요점에 대해 대답하겠다고 말하며, 자신들이 평화회의에 참여하여 일본의 행위를 폭로할 수 있도록 협력해줄 것을 요구하였음.

이상 3명은 전 부총리 이상설, 전 고등법원 예심판사 이준 및 전 러시아 주재 공사관 서기관 이위종이라고 함. 또 그 서면에 첨부된 내용문서는 아직 입수하지 못했음.”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주한일본공사관 &통감부 문서, 통감부 문서 5권, 1. 해아밀사건 및 한일협약체결)

전보를 받은 통감 이토는 화가 치밀어 즉시 고종에게 달려가 항의하였다. 대한제국은 그야말로 폭풍 전야였다.  
                             
이토 : 폐하는 어찌하여 헤이그에 밀사를 파견할 수 있습니까? 
고종 : 그들은 내가 파견하지 않았소.
이토 : 폐하의 신임장을 가지고 있는데도 말입니까? 
고종 : 아마 위조 했을 것이요

이러자 이토는 일본에 전보를 보내 ‘헤이그 밀사는 황제의 공식 사절이 아니다.’라고 알렸다. (이상각 지음, 이경 고종황제, 추수밭, 2008, p 307)

일본 외무성은 헤이그 일본 대표 츠즈키 케이로쿠에게 특사들이 휴대한 고종 신임장과 친서가 위조임을 알렸고, 츠즈키는 각국 대표와 언론에 이를 선전하였다. 

이렇게 일본은 헤이그와 도쿄 그리고 서울 사이의 3각 통신망을 구축하여 헤이그 특사의 동향을 파악하고 활동을 방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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