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위종의 연설, ‘대한제국을 위한 호소’ (3)   

헤이그 특사, 그 후 (중명전 게시)
헤이그 특사, 그 후 (중명전 게시)

1907년 7월 8일 저녁 이위종은 헤이그 국제협회에서 각국 기자들을 상대로 연설을 계속했다.   

“우리들은 일본이 부패한 관리들에게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고, 만민에게는 정의를 구현하며, 행정 당국에게는 솔직한 조언을 해주리라 믿었습니다. 우리는 일본이 이 기회를 활용해 한국인에게 필요한 개혁을 잘 이끌어 줄 것으로 믿었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게 되자 태도를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일본은 놀랍게도 야만적이고 이기적인 본성을 드러냈습니다. 

일본이 제일 먼저 요구한 것은 이른바 ‘황무지(荒蕪地) 개척권’이었습니다. 그때까지 개간되지 않은 전국의 많은 땅을 황무지라 하여 50년간 일본인에게 무상 대여하라는 것입니다. 그런 후에 그 땅들을 자기들이 비용을 들여 경제가치가 있는 땅으로 바꾸어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이 제안이 너그럽고 합리적인 제안으로 들리십니까?  그들이 황무지라고 주장하는 땅은 우리가 잠시 사용하지 않는 땅일 뿐이지 버려진 땅이 아닙니다. 일본은 겉으로는 우리를 돕기 위한 제안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우리나라 땅의 절반 이상을 공짜로 삼키겠다는 야욕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일본의 이러한 계락은 우리 국민의 거국적인 반대에 부딪쳐 실행에 옮기지 못했으며, 이로 인해 우리 국민들 사이에는 일본에 대한 반발 심리가 크게 일었습니다.

황무지 개척 계획이 실패하자 일본은 을사조약을 체결하려 했습니다. 1905년 11월 초에 이토 히로부미가 일본 천황의 특명전권대사로 서울에 왔습니다. 그는 11월 15일에 일본의 기마병과 보명 그리고 포병을 총동원하여 왕궁을 포위한 후 고종 황제를 알현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이토는 을사조약을 승인하라고 황제에게 제시하였습니다.
 
그 내용은 4개 조항입니다.  

첫째, 한국의 모든 외교권을 일본에 이양한다. 둘째, 한국 정부는 일본과 통하지 않고는 외국과 어떤 조약도 체결하지 않는다. 셋째, 서울에 일본의 통감부를 설치한다. 넷째, 일본이 필요하다고 인정할 경우 한국의 관공서에 일본인을 임명한다.   

이토 히로부미의 강요에도 불구하고 황제 폐하와 대신들은 이를 완강히 거부했습니다. 황제 폐하는 ‘차라리 죽을지언정 그 조약에 동의할 수 없다’고 선언했습니다. 

이후 황제 폐하와 대신들과 이토 히로부미 간의 담판은 17일 자정까지 이어졌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일본의 위협이 점점 더 강해졌습니다. 
‘조약을 조인하시오, 그렇지 않으면 당신들에게 큰 파국이 닥칠 것이요!’ 

일본 군인들이 다가와 발을 쾅쾅 굴러대는 공포속에서, 대신들의 심정은  어찌 상상이라도 하겠습니까? 대신들의 마음은 점점 약해져 갔습니다. 

일본군들은 가장 거세게 반대하던 한규설 총리대신을 강제로 밀실로 처넣고 죽기겠다고 위협했습니다. 한규설은 끝까지 저항했지만 나머지 대신들은 일본의 무력에 굴복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무력을 사용하여 우리 정부가 원치 않는 조약을 그들 뜻대로 얻어냈습니다. 하지만 일본 정부와 언론은 전 세계에 한국과 일본 간의 조약이 원만하고 우호적으로 체결되었다고 선전했습니다. 

입으로는 우의와 형제애를 말하면서 손으로는 그 형제의 주머니를 훔치는 일본은 대낮의 강도보다도 더 비열하고 야수적입니다.  

강제로 조약이 체결되었다는 소식에 우리 국민들은 저항하였습니다. 그러나 무도한 일본군은 총과 칼로 우리 국민들을 무자비하게 진압했습니다. 

1905년 11월 17일에 일본은 오로지 무력으로 한국인의 모든 것을 빼앗아갔습니다. 일본은 한국 정부의 모든 기관을 접수하고 곧 그 기관들을 통하여 오로지 일본의 재정적인 이득만을 취했습니다. 

일본인은 지난 3년 동안 공식적, 비공식적으로 한국인을 착취 · 강탈 · 학대했습니다. 이 피해는 우리 한국인이 가장 나쁜 구(舊) 정권(고종 정권을 말함- 필자 주)에게 50년 동안 당했던 것보다 훨씬 심했습니다.”(이승우 지음, 시베리아의 별, 이위종, 2019, p 159-161, 342-345)

이위종은 한국인이 1905년 이후 3년간 일본에게 당했던 고통이 지난 50년간 가장 나쁜 고종 정권에게 당했던 고통보다 더 크다고 연설했다.   

거꾸로 뒤집어 보면, 이위종은 국민에게 엄청난 고통을 많이 준 가장 나쁜 정권이 바로 자신들을 특사로 임명한 고종 정권이라고 성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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