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여, 내 안부인사가 없어도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해 주오
그대여, 가을의 쓸쓸함에 지지 않기를
늘 평온하기를 바란다

정숙자 문학박사
정숙자 문학박사

[한국농어촌방송/경남=정숙자 문학박사] 가을이라고 말하기 어색할 만큼 기온이 갑자기 떨어졌다. 유리창 너머의 온도와 실내의 기온이 크게 다른지 성에가 생겼다. 그래서 나는 더욱 춥다고 느끼고 있는지 모르겠다. 아침을 지나자 조금씩 햇살의 기운이 느껴진다. 내가 사는 곳에는 벼가 아직 인간의 손으로 들어가지 않고 자연의 품에 머물러 있다. 황금색을 지나 약간의 검은 기운이 올라와 있다.

나뭇가지들도 서둘러 겨울 준비를 하느라 자신의 잎들을 떨어뜨리고 있다. 한적함을 넘어 삭막함마저 살짝 엿보인다. 휘날리는 잎들이 차 유리를 스치고 지나치자 나는 그대의 안부가 갑자기 궁금해진다. 잊고 산 것은 아니지만 굳이 속내를 드러낼 만큼 간절함은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느닷없이 오늘 그대의 안녕이 궁금하고 그간에 소홀한 부분이 미안해지는 것은 가을 탓인지, 아니면 가을을 핑계 삼아 나의 인간관계의 게으름을 숨기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 그대는 안녕하신가?” 카톡에 몇 글자를 넣었다. 한참동안 답이 없다. “그래! 나도 무심하게 살았는데 너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이 간사한 나의 마음이 서운함을 드러낸다. 이런 마음이 생기면 안 되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타이르고 있는 나는 참 이기적인 인간이다. 현실에서도 마음속 생각에서도. 아직 인간의 탈을 쓰고 있을 뿐 참된 인간은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나의 이런 생각이 들 무렵 그대에게서 답이 도착했다. “잘 지내고 있었고, 여러 가지 일들이 많았다”는 내용이었다. 그래, 나의 이기적인 인간관계를 그대는 늘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오듯이 그대는 단 한 번도 인연의 선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 것에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대는 늘 나의 소통의 부족함을 채우고 있었고 게으름을 기다림으로 엮어내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대를 위해서 하는 것이라고는 간혹 안부를 묻고 있을 뿐이다.

그대와 나의 인연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어 이렇게 전개되고 있는 것인지 모르지만, 아마 그대가 전생에 나를 참 많이 힘들게 했을 것이라는 막연한 추측이 생긴다. 이 위로마저 없다면 나는 그대 앞에서 염치없는 사람일 뿐이다.

이 가을에 낙엽이 다 지고, 노란빛마저 없어지면 나는 다시 그대가 그리워질지 모른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은 감성을 가진 그대여, 달빛은 조금씩 크기를 달리하고 있지만 나의 달빛은 늘 그대를 비추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나의 안부 인사가 없어도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해 주기를 바란다. 물론 나는 지치고 힘든 나날을 보내고 또다시 그런 시간이 지속되지만 당장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고 갱년기라는 자루 속에 쑤셔 넣고 있다. 그대여, 가을의 쓸쓸함에 지지 않기를 바라고, 늘 평온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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