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 황제 강제 퇴위 (1) 

1897년 대한제국 탄생
1897년 대한제국 탄생

1907년 7월 2일에 고종 황제가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밀사를 파견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고종의 운명도 마지막을 향해 치닫기 시작했다. 이토 히로부미는 이 기회에 고종을 폐위시키기로 작정했다.  

7월 3일에 이토는 고종을 알현했다. 그 자리에서 이토는 일본에 대항하려면 공공연한 방법으로 하라고 말하면서 헤이그에 밀사를 파견한 것은 일본에 대한 선전포고라고 협박했다. 이러자 고종은 밀사를 파견한 적이 없다고 잡아뗐다. 경운궁에서 나오자마자 이토는 이완용과 송병준을 불러 고종을 폐위시키라고 지시하였다.
  
이날 밤 총리대신 이완용은 고종을 알현하고 ‘황실을 보존하고 국가를 유지하기 위하여 퇴위가 불가피함’을 전언했다. 이러자 고종은 이완용의 행동이 신하의 도리가 아님을 지적하고 크게 역정을 내었다. 

사흘 후인 7월 6일에 어전회의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농상공부대신 송병준은 고종이 일본 천황에게 가서 사과하든지 아니면 대한문 앞에서 하세가와 주차군사령관에게 사죄하라고 2시간 동안이나 핍박했다. 이토의 지시에 따라 고종 폐위에 앞장선 것이다. 이러자 고종은 크게 진노했다. 

7월 7일에 이토는 일본 정부에 한국의 상황을 보고하면서 ‘고종 폐위에 관련 처리요강’을 훈시해 달라고 전보를 보냈다. 일본 정부는 7월 12일에 메이지 천황의 재가를 받아 다음과 같이 회신했다. 

“일본 정부는 현재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한국 내정에 관한 전권을 장악할 것을 희망함. 그 실행에 대해서는 현지의 상황을 참작할 필요가 있으므로 이를 통감에 일임할 것. ... 본 건은 극히 중요한 문제이므로 외무대신이 한국에 가서 직접 통감에게 설명할 것임. 외무대신은 15일에 출발할 예정임.”

이런 와중에 이완용과 송병준이 서로 앞장서서 고종 폐위를 추진하고 있었다. 한편 일본 정부는 7월 18일에 외상 하야시 다다스가 서울에 도착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다급해진 이완용은 7월 16일에 입궐하여 고종에게 (1) 을사조약에 옥새를 찍을 것 (2) 황제가 일본에 가서 일본 황제에게 사과할 것 (3) 양위할 것을 상주했다. 하지만 고종은 완강히 거부했다. 

17일에도 이완용과 송병준은 고종에게 노골적으로 양위를 요구했다. 이러자 고종은 대역죄인 박영효를 궁내부대신으로 임명했다. 고종은 이토 히로부미와도 친한 박영효가 나서서 자기를 보호해주리라 굳게 믿었다. 

7월 18일 오후 5시에 고종은 이토를 불러, 자기는 헤이그 밀사 파견과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재차 해명했다. 하지만 이토는 그들이 개인 차원에서 행동했다 하여도 한국인이니 임금이 책임져야 한다고 물러서지 않았다. 이어서 고종은 양위와 관련하여 이토에게 물었다. 이토는 일본 천황의 신하가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라고 시치미를 뗐다. 

7월 18일 오후 8시쯤에 일본 외상 하야시가 서울에 도착하여 고종을 알현하고 입국 인사를 하였다.

밤늦게 이완용과 송병준 등은 고종을 알현하고 어전회의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송병준은 가장 강경하고 불손한 행동으로 고종에게 양위를 강요했다. 고종은 단연코 거절하면서 궁내부대신 박영효를 불러오라고 했다. 하지만 박영효는 병을 칭하며 오지 않았다.
 
이날 밤 상황은 험악했다. 고종은 여차하면 대신들을 살육하려고 시위대 근위병을 궁중으로 불렀고, 대신들은 권총을 품에 숨기고 들어갔다. 법부대신 조중응은 궁중과 외부의 연락이 가능한 전화선들을 모두 절단했다. 

 황현은 『매천야록』에 이때 상황을 적었다.  

“이완용 등은 황태자에게 양위하라고 하였으나, 고종은 윤허하지 않았다. 이때 이완용은 칼을 빼어들고 ‘폐하께서는 지금이 어떤 세상이라고 생각하고 계십니까?’라고 고함 질렀다. 
 이때 폐하를 모시고 있는 무감(武監)과 액정서에 딸린 아전들이 많았는데, 그들은 이완용의 행위를 보고 흥분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그들은 모두 칼을 빼어들고 고종의 말 한마디만 기다리며 이완용을 갈기갈기 찢어 죽이려고 하였다. 
그러나 고종은 참담한 표정으로 묵묵히 앉아 있다가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이완용을 흘겨보며 “그렇다면 선위를 하는 것이 좋겠다.”라고 말하자 이완용 등은 물러나갔다.(황현 지음 ·임형택 외 옮김, 역주 매천야록 하, 2005, p 405-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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