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에 비친 가을 하늘을 보면서
아름답다고 이야기할 수 있듯이
나의 삶 속에 비친 내가
아름답고 행복하기를 간절하게 바라며

정숙자 문학박사
정숙자 문학박사

[한국농어촌방송/경남=정숙자 문학박사] 나는 가을이 오고 있음을, 그리고 도착했음을, 그리고 내 곁에 머물러 있음을 느끼는 포인트가 있다. 아마 그것은 내가 전원이라는 곳으로 들어와 살기 시작한 때부터 알기 시작한 것 같다. 그 전에는 단풍이 들고 날씨가 추워지며, 모두가 가을이라고 부르고 있으면 느꼈던 그 가을을 지금은 오롯이 나 개인적인 감정으로 느끼고 있는 것이다.

가을이 시작되고부터 우리 집 앞 호수는 온통 은빛 물결이다. 반짝이는 다이아몬드 같기도 하고, 가을 하늘 모습 그 자체이기도 하다. 한참을 멍하게 바라보다가 혹 다이아몬드가 물에 빠져 있지 않을까 하고 한 걸음 한 걸음 호수 쪽으로 발을 내딛어본다. 도착해서 보니 물 그대로다. 더러는 억새가 그 은빛 물결을 숨겨주기도 하고, 또는 붉게 물든 나뭇잎 몇 개가 호수 위를 휘젓고 있다. 그 낙엽도 나 같은 생각으로 호수 안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호수 근처까지 내려왔으니 물멍(물을 바라보며 멍하게 있는 것을 의미하는 신조어)이란 걸 하고 싶어진다. 한참 동안 아무 생각 없이 호수를 바라본다. 은빛 호수가 하늘을 날고 있다. 호수에 살고있는 붕어 아니면 배스가 수면 위를 날아서 헤엄치고 있는 것일 것이다. 나의 잔잔한 생각에 호수의 주인들이 물결을 일으키고 있다. 물론 그 잔잔함이 지속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온갖 상념들을 호수 안에 집어넣고 호수의 물빛을 흐리고 있음을 호수의 주인들은 미리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한동안 멍하니 서 있다가 발걸음을 돌려 미련한 인간이 사는 나의 집으로 돌아온다. 나는 인간세상에서도 또는 자연세상에서도 제대로 하는 것이 없다. 늘 조급함으로 몸은 파김치가 되고 마음은 공허함으로 가득 차 있다. 내가 가진 모든 것들에게 미련을 붙어서 내려놓지도 못하고, 그저 인간이 되고 싶을 뿐인데 이것마저도 어렵다.

호수에 비친 가을 하늘을 보면서 아름답다고 이야기할 수 있듯이 나의 삶 속에 비친 내가 아름답고 행복하기를 간절하게 바라며 내일도 그 다음 날도 물멍을 하면서 상념들을 하나씩 비워내는 연습을 해 보고자 한다. 그러면 복잡한 생각들이 나를 따라 함께 길을 나서겠지만 하루에 하루를 더해 계속하다 보면 조금 편안해지는 날이 있지 않을까 한다. 오늘은 물멍하기 참으로 좋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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