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이기 때문에
묻어두고 또는 지워내고 살았을 그 엄마에게
가을 산처럼, 햇빛 잘 드는 창가에서
이제 내 시간을 드리고 싶다

정숙자 문학박사
정숙자 문학박사

[한국농어촌방송/경남=정숙자 문학박사] 엄마의 시간과 인생을 빌어서 나의 과거와 현재가 있고, 그리고 미래가 있을 것이다. 붉게 물든 가을의 끝자락에 선 엄마의 시간도 기울기 시작했다. 여전히 엄마는 여자이고 싶어,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집을 나선다. 지금 엄마의 얼굴은 꽃보다 고운 단풍처럼 빨갛게 물들어 있다.

나는 엄마가 되어서도 내 엄마를 몰랐다. 여전히 나의 엄마였고, 엄마이기를 원했던 것 같다. 한동안 아니 오랫동안 나는 엄마가 여자라는 사실을 몰랐다. 내 나이가 오십이 훨씬 넘어서고서야 엄마도 여자이구나, 여자이기를 원했구나 하고 생각하는 못된 딸이었다. 내가 그 생각을 하기까지 엄마의 고통이 있었고 죽을 고비를 넘어야 하는 큰 아픔이 있었다. 암 투병으로 방사능 치료를 받으면서 엄마의 머리카락은 순식간에 빠져서 남아있는 머리카락이 얼마 되지 않아, 나는 엄마에게 삭발을 하자고 말씀드렸다. 엄마는 한동안 머뭇거렸다. 그때도 나는 엄마의 마음을 모르고 있었고, 위로한답시고 머리카락은 곧 자랄 것이라는 말만 되풀이하였다. 아마 그때는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고 무심히 지내다가 어느 날 나는 알게 되었다. 나의 엄마도 여전히 여자이고 싶다는 것을.

엄마도 젊은 날이 있었고, 꿈꾸고 희망하는 것들이 있었을 것이다. 누구의 아내가 되고 또 누군가들의 엄마가 되면서 하나씩 가슴에 묻어두고 또는 지워내고 살았을 것이다. 현재 내가 그렇게 사는 것처럼 말이다. 큰 강이 막아서 건너지 못하고 포기했을 것이고, 높은 산이 막아서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도 엄마는 자신의 몫이라고 생각하고 기꺼이 살아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엄마를 닮지 못했는지, 큰 강도 높은 산도 힘들고 지쳐서 포기하고 싶어진다. 살아 갈 날이 두렵게 다가서는 것은 아직도 진정한 엄마가 되지 못해서 일 것이다. 언제쯤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싶다.

엄마의 시간으로 내가 살았으니 이제 나의 시간을 엄마에게 드리고 싶다. 가을 산처럼 엄마의 가슴을 울렁거리게 하고 싶고, 햇빛 잘 드는 창가에 자리를 잡아 엄마와 두런두런 긴 이야기를 나누면서 석양도 바라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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