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회는 사직하고, 유자광은 파직 당하다

세계유산 창덕궁 
세계유산 창덕궁 

1476년 3월 10일에 사헌부 대사헌 윤계겸· 집의 이형원· 장령 이숙문 등이 사직을 청했으나 성종은 들어주지 아니하였다.

이 날 좌의정 한명회가 다시 장문의 사직 상소를 올렸다. 그런데 성종은 사직 상소를 돌려주도록 하였다.

3월 11일에 대사헌 윤계겸 등이 한명회의 파면을 청하였으나 성종은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이로부터 13일이 지난 3월 24일에 반송사(伴送使 중국의 사신을 호송하던 조선의 사신)의 종사관 이숙감이 와서 복명(復命)하니, 성종은 명하여 유자광을 불러서 유자광이 아뢴 한명회의 사건에 대하여 이숙감에게 질문하였다. 

이숙감이 아뢰었다. 

"날짜는 잊어버렸습니다만, 신이 한명회의 집에 가니 한명회가 이르기를, ‘대왕대비께서 정사를 되돌리시려는 때에 전하께서 나에게 간청하도록 명하셨는데, 내가 노산군의 일을 가지고 지리(支離)하게 계달(啓達)하여 지극히 황공스러워 대죄(待罪)할 뿐이다.’고 하였습니다. 

신이 이 말을 들은 뒤에 유자광을 그 집에서 보고 이를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한명회의 집에서 사인(舍人)이 오는 것을 보지는 못하였습니다."

이러자 이숙감이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유자광이 성난 목소리로 꾸짖으면서 말하였다. 

"너의 말한 바는 전일과 어찌 다른가? 그 두 사인(舍人)이 마침 이르렀다는 말을 네가 분명히 나에게 말하였는데, 지금 어찌하여 이를 숨기는가? 네가 만약 말하지 아니하였다면 내가 어찌 감히 허구(虛構) · 날조(捏造)하여 계달(啓達)하였겠는가?"

유자광이 큰 소리를 치고 나서 이숙감이 말하였다. 

"영공(令公 유자광을 말함)! 사람을 위협 공갈하지 마시오. 천위(天威)의 용안(龍顔)이 지척도 되지 못하는데, 어찌 영공(令公)처럼 큰 소리를 치고 거짓으로 꾸며서 대답하겠소?"

이러자 유자광이 심히 분노하였으나, 단지 실없이 웃었을 뿐이다. 

마침내 성종은 "경 등은 물러가라."고 전교하면서, 사헌부에 전지(傳旨)를 내려서 국문(鞫問)하도록 하여, 말이 하나로 귀결(歸結)한 다음에 아뢰게 하였다. (성종실록 1476년 3월 24일 2번째 기사)

3월 29일에 좌의정 한명회가 다시 사임을 청하니 성종은 받아들였다. 

4월 11일에 사헌부(司憲府)에서 이숙감을 형신하길 아뢰었다.

"이숙감이 한명회의 말을 듣고서 유자광의 집에 이르렀다가 유자광과 더불어 말한 것이 매우 명백한데도, 유자광과 말하지 않았다고 하면서 면질(面質)할 때에도 굳이 숨기고 복종하지 않으니, 청컨대 형신(刑訊)하여 실정을 얻게 하소서."

이러자 성종은 명하여 의금부에 옮기게 하였다.(성종실록 1476년 4월 11일 7번째 기사) 

사헌부는 유자광을 옹호하고 있다. 

4월 26일에 성종은 경연(經筵)에서 유자광의 처벌에 대해 논의하였다. 

경연을 마치자 성종이 영사(領事)를 돌아보고 물었다.

"유자광의 일은 어찌할 것인가? 이숙감이 이미 형문(刑問)에 불복(不服)하였으니, 유자광도 또한 형문하여야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원훈(元勳)을 형문하는 것은 진실로 불가한데, 만약 형문하지 아니한다면 국가 기강이 서지 못할 것이니, 어찌하는 것이 가하겠는가?"

정인지가 대답하였다. 

"전자에 신(臣)이 의논을 올리기를, ‘유자광과 이숙감은 모두 파직(罷職)시켜야 마땅합니다.’고 하였습니다."

성종은 "죄명(罪名)이 아직 정해지지 아니하였는데 어찌할 것인가?"라고 말하였다. 

다음날인 4월 27일에 의금부에서 아뢰었다. 

"유자광이 처음 공초(供招)에 이르기를, ‘한명회가 대간(臺諫)이 탄핵한 일과, 사인(舍人)으로 하여금 대간(臺諫) 등에게 말하게 한 등의 말을 이숙감에게 들었다.’고 했는데 사인(舍人) 배맹후와 이칙에게 물었더니 두 사람 모두 ‘한명회의 집에서 이숙감을 보지 못하였다.’고 말하자, 유자광이 말을 바꾸어, ‘그 때에 다른 사람은 보지 못하였고, 다만 이숙감만 보았기 때문에 이숙감에게 들었다고 헤아렸을 뿐이다.’ 하였습니다. 

이에 유자광을 다시 공초(供招)하였는데, 스스로 이치에 어긋남을 알고 술이 취해 살피지 못하였다고 한 것은 매우 곧지 못합니다. 청컨대 고신(拷訊)하게 하소서."

이러자 성종은 유자광과 이숙감을 파직(罷職)하라 명하였다.(성종실록 1476년 4월 27일 2번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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