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산군, 김종직의 제자인 홍유손을 유배보내다

 

창덕궁 내 카페 (옛날의 빈청, 무오사화 때 추국장소)
창덕궁 내 카페 (옛날의 빈청, 무오사화 때 추국장소)

무오사화가 일어난 지 12일 후인 1498년 8월 10일에 유자광과 윤필상은  김종직을 추종하는 젊은 무리들이 여전히 남아 있는 남원과 함양의 사마소(司馬所)를 혁파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이어서 유자광은 김종직의 제자 홍유손도 잡아들이도록 아뢰었다. 

"남양부(南陽府)의 교생(校生) 홍유손이란 자가 있는데, 시문(詩文)이 능하옵니다. 그러나 그 행동이 심히 괴이하여 나이 젊은 6-7명과 당(黨)을 만들어서 아무개는 정자(程子)고 아무개는 주자(朱子)라 자칭하고 있습니다. 가끔 강가의 인가에 모여 소요건(逍遙巾 청담파들이 산책할 때 쓰던 두건)을 쓰고 무리 지어 술 마시며 비방을 하옵니다. 일찍이 과거를 보러 갔는데 제술은 아니하고, 종일 술에 취해서 희롱의 말을 쓰고 나오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무리들이 오래 도성 안에 있으면 반드시 후생을 그르치고 말 것이니, 청컨대 잡아내서 먼 지방으로 내치시옵소서."

이러자 연산군은 홍유손을 잡아 오도록 전교했다. 
(연산군일기 1498년 8월 10일 2번째 기사)

나흘 후인 8월 14일에 승려 행색을 하고 숨어있던 홍유손이 잡혀 왔다. 
8월 16일에 유자광은 남효온의 시를 근거로 홍유손을 국문하기를 청했다.  

"추강 남효온은 김종직의 당으로 일찍이 시(詩)를 지었습니다. 

‘안생이 죽으니 지음이 없어지고  安生已逝知音少,
홍자(洪子)가 시골에서 부역을 하니 우리 도가 궁하도다.洪子役鄕吾道窮
대유(大猷)는 있지만 추향(趨向)에 고달프니  縱有大猷趨向苦, 
이 심회를 농서공(隴西公)에게나 이야기하리’ 心懷說與隴西公。

이른바 ‘안생’은 안응세이고, ‘홍자’는 홍유손, ‘대유’는 김굉필, ‘농서공’은 이윤종입니다. 이들은 결탁하여 당원(黨援)이 되어 고담(高淡)·궤설(詭設)을 일삼아 선비의 기풍을 손상하고 있습니다. 또 홍유손은 그 동지들을 허여하여 죽림칠현(竹林七賢)이라 이름하였으니, 쇠퇴한 세상에서  미치광이처럼 행동하려 하니 국문하소서” 

이러자 연산군은 "홍유손은 아무개·아무개와 더불어 죽림칠현이라 호칭하고 방랑하여 기탄이 없는 행동을 하므로 국문하도록 하라."고 전교했다. (연산군일기 1498년 8월 16일 1번째 기사)

8월 20일에 혹독한 고문을 당한 홍유손이 공초하였다. 

“지난 임인년(壬寅 성종 13년 1482년) 봄에 조자지(趙自知)의 집에 갔었는데, 남효온·이정은·한경기·우선언·이총이 모여 있었습니다. 
나는 남효온에게 ‘지금 세상이 벼슬하기에 적당하지 아니하니 우리들이 죽림칠현이라 이름하고 방랑한 놀이나 할 뿐이다.’라고 말하니, 남효온이 ‘그러자.’ 하였습니다. 

각기 소요건(逍遼巾)을 준비하고 술과 안주를 싸 가지고 동대문 밖에 모이기를 약속했습니다. 그리하여 성 밑 죽림(竹林) 속에서 두건을 쓴 다음 남효온이 우두머리가 되고 나는 차석이 되어, 왕족인 수천정 이정은·무풍정 이총 ·우선언(우탁의 후손)·조자지·한경기(한명회의 손자)와 칠현(七賢)이 되었습니다. 나중에 왕족인 명양정(明陽正) 이현손·노섭(盧燮 노사신의 손자)· 유방(柳房 유자광의 아들)이 뒤늦게 와서 몇 순배를 마시고, 도소주(屠蘇酒)를 마시는 예법에 따라 젊은 자에서 윗사람까지 노래하고 춤추다가 날이 저물어 파했습니다.” 

이러자 의금부가 남효온(1454∽1492)은 이미 죽었고, 왕족 이총은 먼 지방으로 유배되었으니, 그 나머지 조자지·왕족 이정은과 이현손·한경기·우선언·노섭·유방등을 잡아다가 추국(推鞫)하겠다고 아뢰니 연산군은 그대로 따랐다. (연산군일기 1498년 8월 20일 3번째 기사) 

그런데 8월 23일에 유자광이 상소하여 아들 유방의 일을 호소하니, 연산군은 유방을 석방했다. 다음 날인 8월 24일에 장령 김숙정이 유자광을  아들 유방의 일과 관련하여 탄핵했지만 연산군은 듣지 않았다.
(연산군일기 1498년 8월 24일 1번째 기사)

9월 16일에 연산군은 홍유손을 제주도로 유배 보내 종으로 삼았고, 우선언을 갑산(甲山)으로 유배시켜 종으로 삼았다. (연산군일기 1498년 9월 16일 3번째 기사) 한편 홍유손은 8년간 제주도에서 유배 살다가 1506년 중종반정으로 풀려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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