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간들 사직하다

서울의 궁궐들
서울의 궁궐들

중종이 1507년 4월 16일에 유자광을 파직한 후, 대간들은 유자광을 극형에 처하라고 연일 아뢰었다. 4월 22일에 반정공신인 좌의정 박원종이 유자광의 일을 아뢰었다. 

“지금 들으니, 대간·홍문관·승정원·예문관과 태학생에 이르기까지 유자광의 일을 논계(論啓)하여 마지않는다 합니다. 이것은 온 나라의 공론(公論)을 말하는 것이니 들어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단 유자광은 이미 큰 공로가 있으므로 극형에는 처할 수 없으니, 멀리 귀양보내어 공론에 응하소서”

이러자 중종은 "유자광은 누대 조정에 두루 벼슬하였다. 지금 이미 조정에 의논하여 파직한 것도 너무 과한데, 더 죄를 줄 것 없다.”고 하였다.

이 당시에 유자광이 은밀히 박원종에게 편지를 보내어,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옛말이 있다. 어찌하여 감싸주지 않는가?" 하니, 박원종은  회답하기를 "사림(士林)이 그대에게 이(齒)를 간 지 이미 오랜데, 어찌  물러가지 않는가?"라고 회신하였다. (중종실록 1507년 4월 22일 1번째 기사) 이는 반정공신들이 유자광을 버리기로 작정한 것이었다. 
 
이 날 중종은 대간에 명하여 근무를 명하면서 전교하였다. 

"유자광은 여러 대 조정(세조부터 중종까지 5대)의 원훈이니 파직도 너무 심한데 또 어찌 죄를 더하겠는가? 더구나 이미 노쇠하였으니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짐인들 어찌 생각하지 않고서 그러겠는가? 근일 경들이 나의 부덕으로 이렇게까지 수고하니 술을 하사한다."
(중종실록 1507년 4월 22일 2번째 기사)
이러자 대간·승정원·홍문관·예문관이 반복하여 유자광을 죄주기를 청하였다. 하지만 중종은 따르지 않았다. 

예문관 봉교 정충량 등이 차자를 올렸다. 

"인군이 천하에 있어서 두려워해야 할 것은 하늘의 경계요, 생각해야 할 것은 사람의 말입니다. 하늘은 높은 데 있어 말로 하기 어려우므로 변이(變異)를 보여서 경계하고, 사람은 아래에 있어 지혜가 있으므로 시비를 가려 말하는 것이니, 만약 하늘의 경계를 아득한 것이라 하여 소홀히 여기며, 사람의 말을 우연한 것이라 하여 등한히 한다면, 위망(危亡)이 당장 이르러 사직을 보전하지 못할 것입니다. 어찌 두렵지 않겠습니까?

지금 유자광은 흉험한 음적(陰賊)으로 선류(善類)를 배제하고 사직을 위태롭게 하는데 다행히도 하늘이 경계를 보여 정월에 우박을 내리니, 하늘이 전하를 인애(仁愛)하심이 지극한 것입니다. 음이 양을 죽이게 되는 그 뜻을 생각하시어 하늘의 꾸지람에 보답하여야 할 터인데, 전하께서는 도리어 재변이 어찌 유자광이 부른겠느냐고 하시 이는 위로 하늘의 경계를 두려워하지 않은 것이며, 대간·홍문관·승정원·사관(史官)·태학생이 하루 동안에 수십 번 상소를 올려 극론하였지만 윤허하지 않으시니, 이는 아래로 사람의 말을 걱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전하께서는 위로 하늘의 경계를 두려워 않고 아래로 사람들의 말을 걱정 않으시며, 한 노간(老奸)을 감싸 화의 근원을 빚어내시니, 신등은 전하의 마음이 어떠하신지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신등은 실로 보람되게 사관(史官) 자리에 있으면서 위로 천심을 보고 아래로 인사를 살피며 여러 문헌을 참고하니, 나라를 근심하는 마음에서 그대로 보고만 있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바라건대 결단하시어 천심·인심을 순히 하소서."

하지만 중종은 윤허하지 않았다. 
(중종실록 1507년 4월 22일 3번째 기사) 

이러자 홍문관이 또 차자를 올려 유자광을 치죄를 청하였으나, 허락하지 않았다. (중종실록 1507년 4월 22일 4번째 기사)

승정원도 아뢰었다. 

"조정에 사(邪)와 정(正)을 병립시킬 수 없습니다. 유자광의 간악함은 온 조정이 다 말하는데도 임금께서 들어주지 않으시니 이는 공론을 막는 것입니다. 신 등이 근밀(近密)한 곳에 있으면서 조정이 편안하지 못함을 환히 보기 때문에 감히 아룁니다."

하지만 중종은 윤허하지 않았다.
(중종실록 1507년 4월 22일 5번째 기사)

이윽고 홍문관 부제학 이윤 등이 아뢰었다. 

“신 등이 화를 빚어내는 큰 간인(奸人)을 보고 여러 날 논계하였지만, 성상의 마음을 돌리지 못하니 이는 신 등이 용렬한 소치입니다. 사직합니다.” 

이러자 중종은 ‘사직하지 말라.’고 명하였다.
(중종실록 1507년 4월 22일 6번째 기사) 

이어서 대간들은 모두 사직했다. 
(중종실록 1507년 4월 22일 7번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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